평창 패럴림픽 픽토그램 디자인한 함영훈 스튜디오 니모닉 대표
지난달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 대회’ 기간에 강원 평창과 강릉 일원에는 경기종목을 안내하는 픽토그램이 곳곳에 내걸렸다. 짙은 하늘색 바탕에 간결한 하얀 그림이 그려진 안내판을 보면 다소 생소한 종목이더라도 경기가 어떻게 치러질지 머릿속에 그려진다.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 대회 기간에 선수들과 관계자, 방문객의 호평을 받은 경기종목 픽토그램은 함영훈 스튜디오 니모닉 대표(사진)의 작품이다. 함 대표는 국내 픽토그램 디자인 분야의 1인자로 꼽힌다. 그가 만든 픽토그램은 서울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신세계백화점 본관, KT 광화문 신사옥,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등의 각종 시설물 기호가 그의 작품이다.

“남녀노소, 국경과 인종,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 누구나 즉각 이해할 수 있는 공통 언어라는 게 픽토그램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평창 패럴림픽 픽토그램 디자인한 함영훈 스튜디오 니모닉 대표
경기 용인에 있는 작업실에서 만난 함 대표는 “픽토그램은 그림(픽토)과 전보(텔레그램)의 합성어로, 쉽게 말하면 그림 문자”라며 “화장실 남녀 표시도 픽토그램”이라고 설명했다.

함 대표는 원래 평창올림픽 디자인 자문위원으로 외부 업체가 제작해 온 픽토그램을 검토하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이 업체가 만든 시안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승인을 통과하지 못해 뒤늦게 작업을 넘겨받았다.

“평창올림픽 글씨체와 ‘ㅍ’ ‘ㅊ’으로 이뤄진 로고를 구성하는 조형 요소를 분석한 뒤 각 종목의 픽토그램을 구상했습니다. 특히 이번 올림픽과 패럴림픽이 한글 디자인을 적극 활용한 점을 고려해 스키와 봅슬레이, 컬링 등 종목을 나타내는 픽토그램에 한글 형태를 많이 집어넣었습니다.”

그의 픽토그램은 모두 그 공간에 쓰이는 서체의 조형성을 분석한 바탕 위에 만들어진다.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와 신세계백화점 등에 들어간 픽토그램도 각 기업의 전용 서체를 분석, 제작했다.

홍익대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한 함 대표가 처음 픽토그램을 접한 건 대학 3학년 수업 때였다. 단순한 그림문자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매력에 빠졌다. 픽토그램으로 그린 그림일기를 인터넷에 올렸는데, 입소문이 나면서 ‘픽토그램 스타’가 됐다. 대학 졸업 후 8년 정도 네오위즈, 엔씨소프트, 네이버 등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다 2013년 직접 회사를 차렸다.

그는 상업용 픽토그램 디자인뿐 아니라 픽토그램을 응용한 순수 미술 작업도 하고 있다. 그가 픽토그램처럼 사람을 단순화해 제작한 스테인리스 조형 작품이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 설치돼 있다. 함 대표는 “한국에선 아직 픽토그램 디자이너란 직업이 생소하지만, 독일과 일본에서 중요성을 인정받는 추세”라며 “후배 픽토그램 디자이너가 많이 나올 수 있도록 길을 잘 닦고 싶다”고 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