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4월5일 오후 4시15분

미국의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4일 현대자동차그룹에 10억달러(약 1조500억원)어치의 주식 보유 사실을 공개하기 전날인 3일 외국인투자자들이 현대모비스기아차 주식을 대거 사들였다. 이 중 현대글로비스에 비해 합병 조건이 상대적으로 불리하다고 평가받은 현대모비스를 집중 매수했다. 국내 기관투자가와는 정반대 움직임이었다. 일부 외국인투자자가 엘리엇의 행보를 미리 안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마켓인사이트] '엘리엇, 현대차그룹 1兆 보유' 外人은 알았나
◆외국인, 모비스·기아차 매집

지난 3일 현대모비스 주가는 전일 대비 1만1000원(4.5%) 상승한 25만5500원으로 마감했다. 지난달 28일 장 마감 후 현대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한 뒤 가장 큰 폭의 상승세다.

이날 현대모비스의 상승세를 견인한 것은 외국인이었다. 외국인은 현대모비스 주식을 362억원(14만3383주)어치 순매수했다. 지난해 5월8일 857억원(35만7538주) 후 최대 규모다. 국내 기관투자가가 순매도에 나선 것과는 대조적인 행보였다.

기아차에도 같은 날 외국인의 매수세가 집중됐다. 3일 외국인은 기아차 주식을 76억원(24만1246주)어치 순매수했다. 지난달 5일(114억원·34만4397주) 후 최대 순매수 규모다. 반면 외국인은 현대글로비스를 2만9000주 순매도했다.

시장에선 엘리엇에 동조해 움직이는 외국인투자자가 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현대차가 내놓은 지배구조 개편의 최대 수혜주는 현대글로비스란 시장 평가가 많은 상황에서 외국인의 매수세가 오히려 모비스와 기아차로 유입됐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엘리엇이 현대차그룹 주식 매집에 투입한 1조원 중 절반가량이 현대모비스에 들어간 것으로 안다”며 “과거 삼성물산 사례에서 보듯 우호세력 확보를 위해 외국인투자자와 공조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기관투자가와 정반대 행보

엘리엇은 삼성에 대한 1차 공격 시점인 2015년 삼성물산 지분을 집중 매입한 뒤 우호세력을 결집해 표대결에 나섰다. 간발의 차이로 패했지만 장기적으론 배당 확대, 자사주 매입 소각 등을 이끌어내 실익을 챙겼다.

당시에도 기관과 개인의 매수세는 제일모직으로 쏠렸지만, 엘리엇은 달랐다. 엘리엇은 그해 5월26일 제일모직이 삼성물산과의 합병을 발표한 다음 날인 27일 삼성물산에 합병 반대의사를 공식 통보한 데 이어 6월4일 ‘경영참가’를 목적으로 삼성물산 주식 1112만5927주(지분 7.12%)를 장내 매수해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했다. 엘리엇은 그해 7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본격적인 우군 확보 전쟁에 뛰어들었다.

엘리엇이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 포문을 열면서 지배구조 최상단에 있는 현대모비스를 공략한 것도 삼성물산 투자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엘리엇은 외국인투자자 사이에 어항 속 메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엘리엇이 보유한 지분은 전체로 볼 때는 크지 않지만 48%(현대모비스 기준)에 달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동조할 경우 큰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엘리엇의 현대차그룹 투자가 알려진 이날 외국인은 현대차를 278억원(9만9000주)어치 순매수해 외국인 순매수 종목 2위를 차지했다. 현대모비스와 기아차는 각각 229억원(14만 주), 122억원(40만 주)어치의 외국인 순매수가 몰렸다.

하수정/최만수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