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외환시장 개입 없이도 환율정책 수행은 가능하다


[시론]외환시장 개입 없이도 환율정책 수행은 가능하다 … 이종윤 외대 명예교수

















이종윤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미국이 한국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하도록 압박을 가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외환시장 개입'이란 정책당국이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매수함으로써 달러에 대한 수요를 높여 인위적으로 자국 통화의 가치를 평가절하 하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경제에서 환율의 중요성은 그간 환율 변화가 한국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쳐온 점을 살펴볼 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1995년 9월 플라자합의로 달러화 대비 엔화 가치가 40~50% 절상되자, 엔화 대비 원화 가치도 40~50% 평가절하 효과를 발휘함으로써 한국제품의 수출이 급증했다.

1995년 4월 미·일 정부의 합의에 의해 엔화가치가 급속히 떨어졌다. 1995년 1달러 79엔에서 1997년 1달러 120엔대까지 하락했고, 한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급속히 증대되면서 한국경제가 국가부도 사태로까지 갔다.

결국 한국 경제는 대량 도산과 대량 실업을 감수해야 하는 IMF관리체제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2012년 말부터 2015년에 걸쳐 엔화가 달러 대비 50%정도까지 평가 절하되어 갔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원화가치를 그대로 방치했다. 그 결과, 경상수지 흑자구조에는 큰 변화가 없었음에도 엔저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석유화학, 조선 및 해운 등 주요 산업들이 부실화되어 갔고 실업률도 급증했다

이상의 경험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환율변화는 한국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환율 변화에 대한 정책적 영향력의 상실은 한국경제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절대 환율변화를 방관할 수는 없다. 다만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점은 환율의 결정과정에 정책당국이 직접적인 개입을 함으로써 환율조작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쓸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른 정책목적과 연결하여 간접적으로 외환시장에 영향을 미친다면 직접적인 공격의 화살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몇 가지 간접적인 방법을 제시해 보기로 하자.

일본은 2012년 말, 아베정권의 등장과 더불어 일본경제의 경기 회복을 목적으로 '아베노믹스(아베 총리의 경제정책)'를 제시했다. 그 핵심 정책은 일본 은행이 일본국채 대량 매입의 방법으로 통화량을 살포함으로써 엔화가치를 하락시켜 결과적으로 엔저를 유도하는 것이다. 통화량 증가만으로는 한계를 느끼자 이번에는 이자율을 마이너스 수준까지 인하시켜 일본이 보유한 외화를 유출시킴으로써 엔저를 유도하고 있다. 요컨대, 불황극복 정책을 통해 통화량 증발과 이자율 인하를 유도하고 결과적으로 엔화가치를 하락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국경제에서 외화수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으로서 한국기업의 해외투자, 해외기업 인수합병(M&A), 그리고 해외관광정책 등을 들 수 있다. 한국은 무역수지에 관한 한 구조적 흑자국이 되었다. 수입한 원자재와 에너지 등 저부가 가치재를 가공, 고부가 가치화하여 수출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때문에 수출수요가 축소되면 그것에 연동해서 수입수요도 축소되므로 한국경제의 무역수지는 구조적 흑자구조가 됐다.

한편, 산업구조 고도화를 위한 기술도입 및 해외기술집약적 기업의 M&A, 그리고 관광산업부문에서의 적자로 인해 '무역 외 부문'에서는 적자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 해외투자의 경우, 한국의 비교열위 산업을 발전도상국으로 유도하고 그 산업에 투입되는 기자재와 원자재를 한국에서 수출함으로써 그들 발전도상국과의 긴밀도를 강화시키는 투자를 크게 장려할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의 입장에서 외화수요를 필요로 하는 부문으로서는 선진기술 도입, 그 일환으로서 해외 선진기업의 M&A, 그리고 비교열위 산업의 도상국 투자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부문의 정책적 목적 달성과 외화수요를 연동시킴으로써 자연스럽게 원화가치 하락을 유도할 수 있다.

선진 경제로 진입하는 단계에 도달한 한국경제로서는 과거와는 다르게 다양한 정책목표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러한 정책목표의 수행과정 속에 적절히 환율정책을 수행하면 큰 무리 없이 환율개입이라는 불명예를 야기하지 않고도 환율정책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이종윤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