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의 이용자 정보 유출 사태가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회사 설립 후 최대 위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케임브리지애널리티카(CA)의 이용자 정보 도용 건이 공개된 뒤 페이스북 주가는 16% 이상 하락했다.

페이스북은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캠프와 연관된 영국 데이터분석업체 CA가 최대 8700만 명의 이용자 정보를 개별 동의 없이 수집해 활용한 것으로 추산된다고 4일(현지시간) 발표했다. 당초 추정치(5000만 명)를 훨씬 웃도는 규모다. 페이스북은 CA 외 제3자 앱(응용프로그램)이나 해커에 의한 개인정보 수집으로 범위를 넓히면 20억 명 페이스북 가입자 모두가 정보 유출 피해를 봤을 가능성도 있다고 인정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콘퍼런스콜에서 “페이스북에 있는 대다수 사람의 공식 프로필이 악의적 의도로 파헤쳐졌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페이스북은 이용자 검색 기능을 삭제하는 등 개인정보 보호 조치에 나섰지만 이용자와 투자자들의 소송이 늘어나는 등 파장이 거세다.
페이스북 "정보유출 피해 최대 8700만명"… 미국인 4명 중 1명 털렸다
◆정보 보호에 허점 많았다 인정

페이스북이 데이터 유출 가능성이 있는 이용자 수를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소셜미디어의 정치적 악용 가능성은 기정사실이 되고 있다. 페이스북 측은 “(CA에 정보를 넘긴) 알렉산드르 코건 케임브리지대 심리학과 교수의 성격 퀴즈 앱을 다운로드받은 이용자 약 27만 명의 친구 이용자 모두를 합산해보니 8700만 명에 달했다”고 밝혔다. 이 중 7060만 명이 미국 내 이용자다. “미국 전체 인구 4명 중 1명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라고 워싱턴포스트 등은 지적했다. 이들 정보는 CA에 전달돼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유리한 전략을 세우는 데 사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황이다.

저커버그 CEO는 실수를 인정했다. 해커가 도난당한 정보들이 떠도는 ‘다크 웹’에서 이메일 주소와 전화번호를 수집한 뒤 페이스북 검색 기능을 통해 이름과 프로필 정보를 찾을 수 있었던 점도 시인했다. 페이스북 계정 복구 시스템도 악용됐다. 해커들은 계정을 잃어버린 사용자인 것처럼 가장해 이용자 정보를 수집했다. 페이스북은 해당 기능을 삭제했다.

앞서 페이스북이 스마트폰의 통화 기록과 문자 내역을 수집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페이스북은 무단으로 수집한 정보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페이스북이 이용자의 전화번호, 이름, 통화 시간, 문자기록 등을 수집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로 드러났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페이스북은 이날 3년 만에 관련 약관을 수정하면서 “이용자 정보를 절대 판매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시했다. 페이스북이 인수한 인스타그램, 와츠앱 내 정보와 스마트폰 통화 및 문자 송·수신 내역 등 수집에 대해서도 명확히 알리겠다고 밝혔다. 제3자 앱의 페이스북 게시물 열람 권한도 제한한다.

회사가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주고받는 링크나 이미지를 살펴본다는 것도 사실로 확인됐다. 페이스북은 인공지능(AI) 자동화 시스템을 통해 인종 차별적이거나 반인륜적인 내용을 추적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사생활 침해, 이용자 계약 위반, 과실, 사기, 불공정 경쟁, 증권사기 등 혐의로 제기된 소송은 최소 18건에 달한다.

◆저커버그 사임 요구설까지

저커버그는 오는 10~11일 미국 상·하원 청문회에 출석해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해 증언할 예정이다.

일각에선 페이스북 이사회가 저커버그의 사임을 요구했다는 설까지 나왔다. 저커버그는 페이스북 CEO이자 이사회 의장이다. 그는 “삶은 실수에서 배우고 전진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이해하는 과정”이라며 자신이 위기 상황에서 페이스북을 이끌어야 할 적임자라고 말해 사퇴 가능성을 일축했다.

하지만 영국 의회가 저커버그 본인이 직접 청문회에 출석해 소명에 나설 것을 재차 요구하고,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가 페이스북과 CA 조사에 착수하는 등 각국 당국의 압박이 커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방송통신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달 30일부터 페이스북·카카오·네이버 등 국내 주요 인터넷 기업의 개인정보 보호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

추가영/김주완 기자 gyc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