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극심한 불황을 겪고 있는 해운 및 조선산업의 회생 프로그램을 본격 가동하기 시작했다. 향후 3년간 총 8조원을 투입해 선박 200척 발주를 지원하기로 했다. 세계 14위 규모인 현대상선을 10위권 선사로 키운다는 복안이다. 또 5조5000억원 규모의 공공 발주를 통해 조선사가 회생할 시간을 벌어주기로 했다.
8兆 투입해 선박 200척 발주… 해운·조선 재건 시동
◆국적선사 적취율 45%로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은 5일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5차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해운회사들이 겪고 있는 ‘돈 가뭄’을 해소하기 위해 35%에 불과한 국적선사 적취율(국내 화주가 국내 선사에 화물을 맡기는 비율)을 조기에 45%로 높이기로 했다. 이를 위해 민간 기업이 원유 유연탄 천연가스 등 전략화물을 운송할 때 국적선사를 우선 이용하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할 방침이다. 윤현수 해운정책과장은 “미국을 비롯한 해운 선진국은 화물 몰아주기로 국적선사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는 7월 설립되는 한국해양진흥공사 등을 활용해 향후 3년간 200척 이상의 신조선 발주를 지원할 계획이다. 중소 선사의 벌크선 140여 척을 포함해서다. 투입 금액은 공적자금 3조원, 민간금융 및 선사 자부담 5조원 등 총 8조원 규모다.

1조원짜리 ‘선주·화주·조선 상생펀드’ 설립도 추진하기로 했다. 화물주와 조선사가 선박 건조의 공동 투자자로 참여하고 수익을 공유하는 펀드다. 화물주에게는 통관시간을 줄여주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할 계획이다. 산업은행이 대주주인 현대상선은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유럽 노선에 2만2000TEU(1TEU=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급 12척을 집중 투입해 세계 10위권의 원양 선사로 발돋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대우조선 새 주인 찾겠다”

정부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만 선박 가격 하락, 경쟁국 추격 등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조선산업에도 지원책을 내놨다. 업황 회복이 예상되는 2022년까지 5조5000억원 규모의 관공선을 발주하기로 했다. 군함 등 최소 40척 규모다. 조선사 간 경쟁 구도와 사업 재편을 동시에 추진할 방침이다. 각 사의 규모와 특성에 맞게 경쟁력 있는 사업을 하도록 유도하고 출혈경쟁을 자제하도록 유도하겠다는 의미다.

시장 여건과 경영 정상화 추이 등을 고려해 대우조선 매각도 검토한다. 최남호 산업통상자원부 시스템산업정책관은 “대우조선은 공적자금이 제일 많이 들어갔는데 자구계획 이행률이 낮다”며 “일단 군살을 제거하고 지속 가능한 구조로 바꾼 다음 주인 찾기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퇴직자 재취업 지원과 조선업에 대한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 연장 등 구조조정에 따른 지원도 계속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현재 10만 명 선인 조선업 고용 인원이 2022년 12만 명으로 회복될 것이란 게 정부의 기대다.

다만 이 같은 정부의 대규모 지원이 무역 마찰을 유발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덴마크 정부가 지난 2월 ‘한·덴마크 해운회담’에서 해양진흥공사 설립을 놓고 해수부에 경고한 게 대표적 사례다. 김인현 한국해법학회 회장은 “정부 주도 지원책에는 한계가 있다”며 “조선·해운사들이 자발적으로 민간 비상기금을 마련하는 등 자구책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수영/박상용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