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전체를 스키장으로 조성한 니가타현의 롯데 아라이 리조트에선 5월까지 봄 스키를 즐길 수 있다.
산 전체를 스키장으로 조성한 니가타현의 롯데 아라이 리조트에선 5월까지 봄 스키를 즐길 수 있다.
반팔 차림의 보더가 스노보드를 허리춤에 끼고 오케나시산 정상을 향해 걸어 올라온다. 사위는 눈부신 설원. 그러나 어디에도 추운 기색은 없다. 날씨는 화창하다. 눈부신 햇살이 넘친다. 이웃한 묘코산의 그림 같은 풍경도 손에 잡힐 듯하다. 멀리 하얀 장막처럼 펼쳐진 북알프스 산군도 시원하다. 일본 니가타현 롯데 아라이 리조트 스키장에서 마주친 풍경이다. 바야흐로 봄 스키의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안전하게 소풍하듯이 타는 봄 스키

한국에서는 생소하지만 일본에서는 봄 스키가 겨울 스키만큼 인기가 있다. 스키어들은 춘래불사춘(봄이 왔지만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을 외치며 꽃 피는 봄날에도 스키를 타러 산으로 간다. 이처럼 봄 스키가 가능한 것은 어마어마한 적설량 때문이다. 세계적인 호설지대인 일본은 겨우내 눈이 내린다. 스키장이 있는 곳들은 보통 5m 이상 눈이 쌓여 있다. 이 눈이 늦은 봄까지 서서히 녹으면서 스키어들에게 마지막까지 스키를 즐길 수 있게 해준다.

 ♣♣스키장을 바라보며 사케나 위스키를 마실 수 있는 롯데 아라이 리조트 라이브 바.
♣♣스키장을 바라보며 사케나 위스키를 마실 수 있는 롯데 아라이 리조트 라이브 바.
봄날의 스키는 겨울 스키와는 완전히 다르다. 우선 겨울처럼 뽀송뽀송한 파우더 눈은 없다. 솜털처럼 가벼운 눈 위에서 붕붕 뜨는 기분을 느끼며 스키를 타는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설질을 제외하면 봄 스키의 장점은 아주 많다. 우선 안전하다. 일본의 겨울 산은 무서울 때가 있다. 폭풍설이 몰아치면 한치 앞도 보기 어렵다. 슬로프 안에서도 길을 잃을 정도다. 또 너무 많은 눈은 파우더 스키에 적응하지 못한 스키어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하지만 봄날은 다르다. 시야가 확실히 트이면서 어디를 가도 안전하다. 반팔로 스키를 탈 정도로 날씨도 화창하다. 그래서 많은 스키어들은 스키장이 아닌 산으로 소풍 가듯 스키를 타러 간다.

봄 스키는 일본 전역에서 즐길 수 있다. 다만, 스키장의 높이가 충분히 보장된 곳이라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곳은 하쿠바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이 개최되었던 하쿠바는 거친 스키장으로 유명하다. 정상부가 드넓은 대사면이라 겨울철에는 스키장에서 길을 잃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한, 눈보라가 심하면 리프트 운행을 멈추기도 한다. 하지만 봄이 되면 하쿠바는 순한 양이 된다. 정상부는 4월에도 슬로프가 촉촉하다. 특히 스키장을 감싸고 있는 북알프스 파노라마가 압권이다. 3000m를 넘나드는 눈부시게 하얀 산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산 전체를 스키장으로 사용하는 롯데 아라이

최근 롯데그룹이 니가타현 묘코시에 개장한 롯데 아라이 리조트(이하 롯데 아라이)도 봄 스키를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이곳은 눈이 많이 내리는 일본에서도 최고의 호설지대로 꼽힌다. 롯데 아라이의 연평균 적설량은 11m에 육박한다. 내리는 눈의 합이 아니라 쌓여 있는 눈의 높이가 그렇다는 것이다. 2월 중순부터 갑자기 기온이 높아져 일본 대부분의 스키장이 ‘눈 부족’에 아우성을 치고 있는 올해에도 이곳은 8m의 적설량을 기록했다. 이 눈은 따사로운 봄 햇살에 천천히 녹으면서 5월 중순까지 스키어들의 놀이터가 된다. 롯데 아라이는 스키장 표고차가 1100m에 이른다. 호텔이 있는 베이스가 340m, 가장 높은 오케나시산 정상은 1429m다. 이처럼 표고차가 많이 나다 보니 날씨도 정상과 베이스가 다르다. 베이스에 비가 와도 정상에는 눈이 내리는 경우가 많다. 정상에는 4월에도 가끔씩 폭설이 내려 녹은 눈을 보충해준다. 이런 연유로 5월까지도 스키를 탈 수 있다.

롯데 아라이가 특별한 또 다른 이유는 산 전체를 스키장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스키장은 슬로프를 중심으로 스키장을 설계한다. 그러나 롯데 아라이는 예외다. 슬로프는 거들 뿐, 슬로프 밖 자연 그대로에서 스키를 탈 수 있게 스키장을 설계했다. 스키장 정상부는 슬로프로 조성한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고 대부분 자연 상태 그대로 스키를 탈 수 있게 했다. 이처럼 와일드하면서 ‘날 것 그대로’인 스키장은 일본에서는 롯데 아라이가 거의 유일하다.

일본 본섬의 북쪽 도후쿠 지방은 상대적으로 위도가 높아 봄 스키를 즐길 만한 곳이 많다. 대표적인 곳이 하치만타이 국정공원이다. 이와테와 아키타, 아오모리 등 3개 현에 걸쳐 있는 하치만타이에는 앗피, 다자와코 같은 이름난 스키장이 있다. 이들 스키장은 보통 4월 말까지는 기본으로 운영한다. 중간에 눈이 내려주면 5월 중순까지도 시즌을 연장한다.

산에서 스키 타는 백컨트리도 인기

좀 더 적극적인 스키어들은 스키장이 아닌 산에서 스키를 타는 백컨트리 스키를 즐긴다. 스키장은 리프트가 정상까지 스키어를 실어 나른다. 하지만 산에는 리프트가 없다. 그래서 스키를 신고 걸어서 간다. 스키에 부츠를 고정시켜주는 바인딩의 뒤꿈치가 들리도록 만들어진 특별한 스키를 신고 걸어가듯이 산을 오른다. 짧게는 2시간, 길게는 반나절 동안 등산하듯이 산을 올라간 뒤 한 번의 질주로 끝을 맺는다. 스키를 신고 올라가는 것이 조금 고되지만 대자연 속에서 봄바람을 가르며 활강하는 재미는 상상 이상이다. 하치만타이에는 이처럼 백컨트리 스키를 즐기는 명소가 많다. 아오모리현에 있는 하코다산은 백컨트리 스키 전용 스키장으로 인기가 높다.

야마가타현에 있는 갓산은 아예 봄에 개장하는 스키장으로 유명하다. 이 스키장은 대부분의 스키장이 폐장을 준비하는 4월에 개장해 6월까지 영업을 한다. 겨울에는 날씨가 나빠 문을 닫고 있다가 봄에 개장하는 것이다. 이곳도 적설량이 워낙 많은 곳이라 웬만한 날씨에도 슬로프가 끄떡없다. 특히 우물을 파놓은 것처럼 굴곡진 곳에서 스키를 타는 모굴스키에서는 최고의 신세계로 알려져 있다. 봄스키는 겨울에 비하면 훨씬 안전하다. 탁 트인 시야가 주는 상쾌함도 특별하다. 다만, 스키장이 아닌 산에서 스키를 타는 백컨트리 스키를 하려면 특별한 장비가 필요하다. 또한, 스키장을 벗어날 때는 반드시 가이드와 동행해야 한다. 백컨트리 스키 가이드 투어는 보통 7000~1만엔 정도 한다. 장비 대여도 할 수 있다. 일본에서 즐기는 봄스키와 백컨트리 스키에 대한 정보는 일본스키닷컴에서 얻을 수 있다.

'5성급 스키장' 롯데 아라이 리조트

롯데 아라이는 세계적인 전자업체 소니(SONY)가 조성한 스키장이다. 그러나 일본의 버블경제가 꺼지면서 재정난에 빠진 소니가 스키장 운영에서 손을 떼면서 10년 동안 방치돼왔다. 이 스키장을 롯데가 인수해 2017년 12월 재개장했다. 롯데는 ‘5성급 스키장’을 표방했던 소니의 운영방침을 고스란히 넘겨받아 오스트리아풍 럭셔리 리조트로 재탄생시켰다.

롯데 아라이는 스키장 베이스를 중심으로 4~5층 높이의 건물들이 빙 둘러쳐져 있다. 왼쪽이 호텔, 오른쪽이 롯지 구역이다. 특히 호텔보다 한 등급 위인 롯지 구역은 눈이 호강한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투어를 다녀도 좋을 만큼 고급스럽다.

롯데 아라이는 레스토랑과 카페가 12개나 된다. 뷔페, 일식, 이탈리안, 라이브 바, 와인 셀러, 베이커리 등 있어 원하는 스타일에 맞춰 이용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일본 서점 혁신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쓰타야 서점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온 라이브러리 카페는 롯지의 상징적인 공간이다. 여기에 스파와 온천, 수영장 등도 여느 스키 리조트와는 격조가 다르다.

니가타=글 사진 김산환 여행작가 mountainfir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