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최불암이 오는 18일 개막하는 연극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에서 자신의 역할을 설명하고 있다.
배우 최불암이 오는 18일 개막하는 연극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에서 자신의 역할을 설명하고 있다.
“수천만 개의 별이 지상에 내려와 있는데 왜 그걸 몰라. 그러니까 부서지지. 그러니까 뛰어내리지.”

한 줄의 대사도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대사의 무게보다 더 묵직한 감정을 몇 번씩 꾹꾹 눌러 담고 가다듬었다. 그래도 마음에 썩 들지 않는지 연출가 안경모와 열띤 토론도 벌였다. 날갯짓을 해야 하는 장면에선 팔을 재차 펄럭이며 고민에 빠져들었다. 내년이면 연기 인생 60주년을 맞는 배우 최불암(78) 얘기다.

지난 6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연습실에서 만난 최불암에게선 비장함마저 감돌았다. 그는 25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선다. 오는 18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를 공연한다. 그의 비장한 모습은 60년 연기 인생을 관통해 온 치열한 고뇌에 가까워 보였다. 최불암은 이날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연기에 완벽은 없어. 사람 자체를 끊임없이 이해하고 분석해야 하는 거잖아. 일생 부족했지.”

◆“연극, 고단해도 사는 것 같다”

예술의전당 기획 공연인 이 작품은 연극 ‘하나코’ ‘해무’ 등으로 고난 속 인간의 모습을 섬세하게 다뤄온 김민정 작가의 창작극이다. 최불암이 맡은 역할은 다른 별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한 노인이다. 그는 지구에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눈물과 아픔을 어루만지며, 별처럼 따뜻하고 빛나는 삶의 가치를 전한다.

대중들에겐 그의 TV 드라마 속 모습이 익숙하지만 최불암과 연극의 인연은 꽤 깊다. 데뷔작이 1959년 연극 ‘햄릿’이었다. 25년 전 올랐던 마지막 무대는 ‘어느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지난 1월엔 극단 예술지기의 ‘시유어겐’ 예술감독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연기에선 한참 동안 한발 뒤로 물러나 있었다. 연극뿐만 아니라 드라마,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14년 드라마 ‘기분 좋은 날’ 출연이 마지막이었다.

“후배들이 나를 보면 예우해 주는데 고맙긴 해도 좋진 않았어. 같은 동료로 지내고 싶었는데 나이 차가 많이 나다 보니 소통도 쉽지 않았지. 후배들을 편하게 해주고 길도 열어주고 싶었어.”

그가 연극 무대에 다시 오르게 된 이유는 뭘까. “다른 별에서 온 여행자의 시선에서 이 별을 바라본다는 설정이 마음에 들었어. 다들 개인주의와 출세욕, 물욕에만 빠져있잖아. 인간적 가치의 상실과 진정한 삶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역할이더라고.”

연습이 녹록지 않지만 즐겁다고 했다. “사는 것 같아. 몸은 고단하지만 사람들과 호흡하면서 가족과 같은 마음으로 하고 있어. 드라마는 특별한 훈련 없이 대사 읽는 정도인데 연극은 반복해서 연습하고 관객들과 가까이서 소통도 하잖아.”

◆“바람에 몸을 맡기면 되는 거요”

이번 공연이 끝나고 그가 또 연극 무대에 서는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까. 최불암은 “이제 나이가 찼다”며 “소리를 내는 것도 그렇고 머리 회전도 잘 안돼서…. 아쉽지만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뭐”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국 예술계의 큰 어른답게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는 “개인의 지나친 욕망을 견제하는데 문화와 예술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며 “곡식이든 꽃이든 물꼬도 트고 정성들여 경작도 해야 자라는 법이니 약한 문화 기반을 잘 조성해 나갔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최불암이 이번 무대, 나아가 60년이란 긴 연기 인생을 통해 대중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 작품의 대사 몇 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건 어렵지 않아. 믿음만 있으면 되지. 두 팔을 벌리고 바람에 몸을 맡기면 되는 거요.”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