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두 가지 '용서받지 못할 罪'
시오노 나나미의 한 역사소설에 ‘페카토 모르탈레(peccato mortale)’란 말이 나온다. 이탈리아 말로 ‘용서받지 못할 죄’라는 뜻이다. 어원은 큰 죄(죽을죄)라는 라틴어 ‘페카툼 모르탈레(peccatum mortale)’라고 한다. 중세 천주교에서는 종교적으로 용서받지 못할 죄목을 만들고 그 죄목에 걸리면 죽을죄인이라는 명목으로 처형했다.

흥미로운 것은 당초 종교적 교리에 따른 용서받지 못할 죄가 국가 경영과 연결되면서 정치와 경제에서 참으로 의미심장한 용서받지 못할 죄로 탄생된 점이다. 이승에서만이 아니라 저승에 가서까지도 공직자들과 기업가들에게 용서받지 못할 죄가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 용서받지 못할 죄가 무엇인가.

하나는 공직자가 국가 예산을 낭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업가들이 이윤을 남기지 못하는 것이란다. 많은 사람이 ‘공직자의 예산 낭비와 기업가의 무능이 비난받을 수는 있지만 과연 어떻게 용서받지 못할 정도로 큰 죄인가’하고 의아해할 것이다.

5세기 서로마제국 몰락 후 훈족의 침략을 피해 갯벌로 피난해 세운 나라로 인류 역사상 최고의 번영을 누린 베네치아 공화국의 전통에서 탄생한 이 두 가지 페카토 모르탈레는 오늘날에도 진리임이 분명하다.

공직자가 국가 예산을 낭비하는 경우 그 정도에 따라 처벌받으면 되지 어떻게 용서받지 못하는 죄가 된다는 것인가. 논리는 간단하다. 예산이 흥청망청 낭비되면 국가가 망한다는 것이다. 국가 예산의 낭비와 방만 운영은 국가를 파멸에 이르게 하니 이 죄만큼 용서받지 못하는 죄가 어디에 있을까. 그래서 공직자가 국가 예산을 낭비하는 것이 페카토 모르탈레인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공직자는 어떠한가. 선심용 공약을 빌미로 흥청망청 예산을 낭비하는 대통령, 낭비인 줄도 모르고 각종 명분으로 예산 늘리기에 열중하는 장관들, 우선순위나 불요불급을 따지지 않는 실무자들, 사계절 내내 요란한 행사와 호화판 건물 짓기에 여념이 없는 지방자치단체장들, 지역구와 이익집단 요구에 따라 낭비적 사업 챙기기에 혈안인 여의도 선량님들 모두 예산 낭비가 용서받지 못할 죄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선망의 대상이던 남미 국가들이 예산 낭비로 거덜 난 것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과 같이 지도자와 공직자들이 예산 낭비를 계속하면 또 다른 국가 위기를 피할 수 없다.

기업가들이 이윤을 남기지 못하는 것은 왜 용서받지 못하는 죄일까. 만약 한 나라의 기업가들이 아무도 이윤을 창출하지 못하고 손실만 본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소득도 일자리도 없고 세금 징수도 불가하다. 경제는 쇠락하고 나라는 망할 것이다. 참으로 페카토 모르탈레가 아닌가.

이윤은 기업가가 생산한 제품의 수입이 그 제품의 생산에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자원 소유자에게 지급하는 비용보다 높을 때 창출된다. 물론 그 반대일 경우 손실이 발생한다. 이윤이 발생하는 것은 생산 과정에 투입된 가치보다 생산으로 얻어지는 가치가 더 높아 사회 전체적으로 가치가 추가적으로 창출됨을 의미한다. 수많은 투자 기회 중에서 비용보다 수입이 큰 쪽으로 투자가 이뤄지면 이윤이 발생하고 경제가 번창하는 반면 자원이 비효율적으로 사용돼 손실이 발생하는 투자가 계속 이뤄지면 경제의 쇠퇴는 불문가지다. 따라서 손실을 발생시키는 기업가는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짓는 것이다.

베네치아 공화국의 번창, 네덜란드와 영국의 부상, 라인강과 한강의 기적, 미국의 패권, 이 모두는 기업가들이 열정적으로 이윤을 추구한 노력의 결과다. 1997년 외환위기는 기본적으로 외화를 빌려 투자한 기업가들이 원리금을 갚을 만큼 충분한 이윤을 창출하지 못해 발생한 ‘용서받지 못할 죄’의 결과가 국가적 재앙으로 나타난 것이다.

최근 기업가들의 이윤 추구를 제약하는 온갖 발상이 정부 정책의 구석구석에 배어 있어 걱정이 앞선다.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짓지 않으려고 이윤 추구에 고군분투하는 기업가들을 온갖 정치논리로 괴롭히지 않는 것이 예산 낭비 공직자들이 용서받지 못할 죄에서 그나마 사함을 받는 길이다. 공직자들이여, 자기 담당 예산의 최소 10%를 절약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