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트진로 5년 만에 선전포고
맥주사업 부진 등 실적 악화 원인
'처음처럼'보다 낮춰 1위 굳히기
롯데주류 등 "도수 인하 검토중"
8일 하이트진로에 따르면 오는 16일부터 참이슬후레쉬의 도수는 17.8도에서 17.2도로 0.6도 내려간다. 2위 브랜드인 처음처럼(17.5도)보다 낮은 도수다.
참이슬후레쉬의 도수 인하는 소주사업의 수익성 개선을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하이트진로의 영업이익은 3년째 하락, 지난해에는 1000억원 밑으로 떨어졌다. 하이트진로는 2000년 이후 영업이익이 1000억원 밑으로 떨어지는 등 실적이 악화할 때마다 소주 도수를 내려왔다. 소주 도수를 1도 낮추면 원재료인 주정(에틸알코올)을 덜 써도 돼 병당 6~10원의 원가 절감 효과가 있다.
시장 선두 브랜드가 도수 인하에 나선 만큼 롯데주류의 처음처럼 등 다른 소주 브랜드도 도수 인하를 검토하는 등 도수 경쟁이 예고되고 있다. 하이트진로의 참이슬은 연매출 1조원의 소주 시장 1위 브랜드다. 시장 점유율은 약 50%로 2위인 롯데주류의 처음처럼(18%대)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있다.
참이슬은 알코올 도수 20.1도의 참이슬 클래식, 17.8도의 참이슬 후레쉬, 영남지역 전용인 참이슬 16.9 등 세 종류가 있다. 이 중 참이슬 후레쉬가 판매량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주력 제품이다. 하이트진로가 참이슬 후레쉬 도수를 17.8도에서 17.2도로 낮추기로 함에 따라 경쟁업체들도 도수 인하를 검토하고 있다. 2014년을 끝으로 5년간 잠잠했던 소주업계의 ‘순한 소주 경쟁’이 다시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도수 인하로 두 마리 토끼 잡는다.
하이트진로가 참이슬 후레쉬 도수를 내리는 건 점유율 확대와 수익성 개선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것이다. 지난해 하이트진로의 영업이익은 872억원으로 전년 대비 42% 하락했다. 실적 악화는 4년 연속 적자를 내고 있는 맥주 사업 탓이다. 그래서 소주 사업 강화를 돌파구로 삼고 있다.
매각을 추진 중이던 마산맥주공장을 지난달 소주 생산설비로 대체한 게 대표적이다. 경기 이천, 충북 청주, 전북 익산에 이어 경남 마산까지 소주 사업 거점이 됐다. 올해부터 소주 생산량이 연 102만kL에서 117만kL로 늘었다.
원가 절감 효과도 크다. 원재료인 주정이 덜 쓰여 병당 6~10원의 생산비를 아낄 수 있다. 소주 회사는 매년 매출의 20% 정도를 주정 구입에 쓴다. 하이트진로는 연간 약 18억 병의 소주를 팔고 있어 도수 인하로 100억원가량의 이익 개선 효과를 볼 것으로 기대된다.
소주 시장에서 1위 자리를 공고히 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참이슬 소비자들이 2위 브랜드인 ‘처음처럼’으로 이탈하는 사례가 늘면서 주조 방식과 맛, 패키지의 새 단장이 절실했다는 것. 하이트진로는 “브랜드를 전면 리뉴얼하면서 대나무숯으로 네 번 더 정제해 최적화된 깨끗한 맛과 도수를 찾았다”며 “젊은 층의 저도주 선호에 맞춰 도수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소주 업체의 도수 경쟁은 1998년 참이슬이 23도로 도수를 내리며 시작됐다. 20여 년 동안 이어진 ‘소주 25도’의 공식을 깨뜨린 것. 이후 1999년 22도 뉴그린, 2004년 21도 참이슬, 2006년 20도 처음처럼, 2007년 19.5도 처음처럼, 2012년 19도 참이슬 등이 출시됐다.
◆“주정 오른다” 사전 대비 효과도
하이트진로는 지금까지 11차례 소주 도수를 내렸다. 2000년 이후 실적이 나빠질 때마다 도수 인하를 단행했다. 회사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소주 도수를 내린 2001년과 2004년, 2014년은 모두 영업이익이 1000억원 이하로 추락한 해다. 참이슬 클래식 도수를 21도에서 20.1도로 낮추고, 저도주인 참이슬 후레쉬를 출시한 2006년도 전년 대비 영업이익이 반토막 난 때다.
올해 주정 가격이 오를 것에 대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주정 가격은 대한주정판매가 결정해 모든 소주 회사에 같은 가격으로 공급된다. 주정 판매 단가는 지난 10여 년 동안 2006년과 2007년 2008년 2012년 등 총 네 차례 인상됐다.
정희진 흥국증권 애널리스트는 “주정 가격은 6년 전 약 5.6% 인상된 뒤 동결돼왔다”며 “환율과 국제 곡물 가격 변화에 민감한 만큼 올해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국내 소주 시장은 하이트진로와 롯데주류, 무학 등 3사가 약 80%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