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그린 재킷을 꿈꾸던 ‘돌아온 황제’ 타이거 우즈(43·미국)가 아니었다. 커리어 그랜드슬램(통산 4대 메이저대회 석권)을 노리던 로리 매킬로이(29·북아일랜드)도, 두 번째 마스터스 챔프를 원하던 조던 스피스(25·미국)도 낙점받지 못했다. ‘마스터스의 신(神)’이 선택한 그린 재킷의 주인공은 수없는 ‘안티팬’의 따가운 시선 속에서도 자신의 골프를 고집해온 ‘외톨이 챔프’ 패트릭 리드(28·미국)였다. 골프채널은 그가 그린 재킷을 손에 쥐자 “외로운 늑대처럼 주변과 자주 충돌하던 리드가 마스터스 챔프가 됐다. 골프팬들이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이라고 썼다.

‘외로운 늑대’에서 ‘메이저 황제’로

리드는 9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GC(파72·7435야드)에서 열린 제82회 마스터스 골프토너먼트 4라운드에서 버디 4개와 보기 3개로 1언더파 71타를 쳤다. 최종 합계 15언더파 273타를 기록한 리드는 14언더파 274타를 적어낸 리키 파울러(30·미국)를 1타 차로 따돌리고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2016년 8월 바클레이스 대회 이후 1년8개월 만의 우승이자,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통산 6승째다. 우승 상금 198만달러(약 21억1000만원)도 그의 몫이 됐다.

리드는 우승 공백이 이어지던 지난 1년8개월 동안 메이저 우승 퍼즐을 한 조각씩 채워나갔다. 지난해 8월 PGA챔피언십에서 공동 2위를 하며 자신감을 충전한 그는 이후 ‘톱10’에 다섯 번 이름을 올리려 샷감을 가다듬었다.

리드는 스윙의 정석과는 거리가 있는 자신만의 스윙을 구사해 별종이라는 소리도 많이 듣는다. 드라이버 평균 비거리(299.4야드)가 길지도, 티샷 정확도(52.83%·193위)가 높지도 않다. 아이언이 정교한 편도 아니다. 그의 그린 적중률은 64.55%로 투어 전체에서 136위에 불과하다. 마스터스의 빠른 그린을 ‘유린’할 만큼 정밀한 퍼팅 기술을 갖춘 것도 아니다. 하지만 경기에 몰입하는 강한 승부사 기질과 집중력이 그를 마스터스 챔프에 올려놨다는 게 골프계의 평이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다섯 번이나 3홀 연속 버디쇼를 연출했다. 한 번 분위기가 달아오르면 무섭게 타수를 줄이는 고도의 집중력을 방증하고 있다.

그는 마스터스 우승 확정 후 18번홀 그린에서 아내 저스틴을 끌어안고 메이저 첫 승의 감격을 나눴다. 저스틴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남편의 골프백을 멨다. 저스틴은 리드가 긴장할 때마다 “긴장은 곧 당신이 준비됐음을 의미한다”고 용기를 줬다.

‘우즈 키즈’ 차세대 황제 전쟁 예고

이번 대회는 우즈 키즈들이 대거 상위권을 점령했다. 2위 파울러는 물론 13언더파로 3위에 오른 2015년 마스터스 챔프 조던 스피스(25), 4위 욘람(24·11언더파), 5위 캐머런 스미스(25·9언더파)도 모두 우즈에게서 영감을 받은 세대다.

스피스는 4라운드 16번홀(파3)에서 한때 14언더파까지 타수를 끌어올려 리드와 공동 선두를 달리기도 했다. 이날 하루에만 8타를 줄였다. 4라운드를 5언더파로 시작한 스피스가 우승했다면 62년 만에 마스터스 사상 최다 타수(9타) 역전승이 나올 뻔했다. 종전 기록은 1956년 잭 버크가 켄 벤추리에게 8타 뒤져 있다가 막판 뒤집기에 성공한 것이다.

이날 리드와 함께 챔피언조로 나선 매킬로이도 9언더파 공동 5위에 머물면서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을 다음 기회로 미뤘다. 매킬로이는 US오픈과 브리티시오픈, PGA 챔피언십을 제패했지만 마스터스 그린 재킷이 없어 커리어 그랜드슬램 퍼즐을 완성하지 못했다. 전날 버디 5개, 이글 1개를 뽑아내준 퍼팅이 이날따라 난조를 보인 탓에 2타를 잃고 뒷걸음칠쳤다.

한국 선수로는 유일하게 출전한 김시우(23·CJ대한통운)가 합계 1언더파 공동 24위에 올라 가능성을 확인했다. 김시우는 마스터스에 처음 출전한 지난해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마스터스 징크스 재연

‘마스터스 징크스’는 이번에도 난공불락으로 남았다. 한 선수가 나흘 내내 60타대 스코어를 내는 일이다. 챔피언 리드는 3라운드까지 유일하게 60타대 스코어(69-66-67)를 써냈지만 마지막날 71타를 치는 바람에 징크스를 넘어서지 못했다.

파5를 정복해야 마스터스를 제패할 수 있다는 가설도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 리드는 4라운드 동안 파5 홀에서 13타를 줄였다. 3라운드에선 파5홀 두 곳에서 이글 두 방을 연속 터뜨려 타수를 저축했다.

최근 열린 열 개 메이저 대회 중 아홉 개에서 생애 첫 메이저 우승자를 배출해 남자 골프계는 절대강자 없는 ‘춘추전국’시대를 이어가게 됐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