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의 삼성전자에 대한 ‘작업환경 보고서’ 공개 논란과 관련, 산업 발전을 주업무로 하고 있는 산업통상자원부는 고용부와 미묘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드러내놓고 반대할 순 없지만 보고서를 공개해야 한다는 고용부 논리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는 기류가 강하다.

삼성이 9일 작업환경보고서 내용이 국가 핵심기술에 해당하는지 확인해달라고 정부에 유권해석을 요청한 것과 관련해 산업부는 표면적으로는 “전문가들이 심의할 사안”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김종주 산업기술시장과장은 “국가 핵심기술에 관해선 산업기술보호위원회 전문위원회를 별도로 두고 있으며 여기서 전문가들이 판단한다”며 “정보 공개의 적절성 여부 등을 직접 판단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산업기술보호위원회 전문위원회는 국가 산업기술 보호에 관한 행정부 최고의 의사결정 기구다. 이번 삼성전자 이슈는 총 12개로 나뉜 전문위원회 내 반도체 분과에서 다룰 예정이다. 분과 위원은 14~15명으로, 대부분 반도체 관련 교수로 구성돼 있다. 박영삼 전자부품과장은 “반도체는 이미 국가 핵심기술 분야로 지정돼 있기 때문에 삼성전자가 요청한 세부 기술이 여기에 해당하는지만 따지게 될 것”이라며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가급적 빨리 전문위 회의 일정을 잡으려 한다”고 설명했다.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르면 기업은 자사 기술이 국가 핵심기술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판정을 산업부 장관에게 요청할 수 있다. 국가에서 차지하는 기술적, 경제적 가치가 높거나 해외 유출 때 국민경제 발전에 중대한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으면 국가 핵심기술로 판정한다. 국가 핵심기술로 확인되면 보고서 공개로 중요한 영업비밀이 유출될 우려가 있다는 삼성전자 측 주장에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 내부에선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삼성전자 기술이 해외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는 만큼 기술정보 공개에 신중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작업환경 보고서가 반도체 생산공정에 관한 기밀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외부로 유출되면 파장이 클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삼성전자 사례는 국가 핵심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다른 기업에도 선례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어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