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이치카와 다쿠지의 소설을 각색한 동명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일본 이치카와 다쿠지의 소설을 각색한 동명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웹툰 원작(주호민 작)의 판타지 영화 ‘신과 함께: 죄와벌’이 관객 1441만 명을 모아 ‘명량’(1761만 명)에 이어 역대 2위 흥행 기록을 세웠다. 1000만 명 이상을 모은 한국 영화 14편 중 창작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하지 않은 영화로는 ‘왕의 남자’(연극 원작) 이후 두 번째다.

소설이나 웹툰, 만화 등 다른 장르 이야기를 각색하거나 리메이크한 영화들이 대거 쏟아지고 있다. 각색물이나 리메이크한 한국 영화는 분기별로 1~3편 정도 나왔지만 올 1분기에는 6편 선보였다.

소설·웹툰·만화 각색… 리메이크 영화 쏟아진다
◆1분기 개봉작 많아

지난 1월 개봉한 김상경·김희애 주연의 스릴러 ‘사라진 밤’은 스페인 영화 ‘더 바디’를 리메이크했다. 강동원 주연으로 2월 개봉한 스릴러 ‘골든 슬럼버’는 일본 소설이 원작이다. 상영 중인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는 ‘농촌만화의 걸작’으로 불리는 일본 이가라시 다이스케 작가의 동명 만화를 영화화했다. 소지섭과 손예진이 주연해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멜로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일본에서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이치카와 다쿠지의 소설을, 멜로 ‘치즈인더트랩’은 국내 웹툰 작가 순끼의 동명 만화를 각각 옮겼다. 장동건이 주연한 스릴러 ‘7년의 밤’은 정유정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소설 《82년생 김지영》과 홍콩 영화 ‘독전’ 등도 한국 영화로 제작돼 조만간 선보일 전망이다.

◆원작의 명성에 기댄 제작

각색물이나 리메이크 영화가 많이 나오는 것은 흥행성이 입증된 원작을 영화화하면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모험보다 안정을 택하는 전략이다. ‘신과 함께’ ‘7년의 밤’ ‘지금 만나러 갑니다’ 등 대부분의 원작은 이미 대중적으로 성공했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제작한 김재중 무비락 대표는 “이 시대 상황에 필요한 가족 이야기라는 데 끌렸다”며 “결혼과 자녀를 갖는 게 돈 문제를 뛰어넘어 가치 있는 일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고 제작 배경을 말했다.

심영섭 영화평론가는 “특히 웹툰이 많이 영화화되는 이유는 발상이 대담하고 흥미롭기 때문”이라며 “오리지널 시나리오에서 부족한 부분을 웹툰이 메워주고 있다”고 했다.

◆시나리오 작가들 이탈이 원인

파괴력 있는 창작 시나리오가 줄어든 것도 원인이다.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요즘 영화화할 만한 시나리오를 찾기 어렵다”며 “내년엔 기대작이 줄어들 것 같다”고 털어놨다.

원인을 찾아 들어가면 시나리오계의 처우가 열악해 유능한 작가들이 감독으로 전향하거나 방송계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란 설명도 가능하다. 박정우, 이해영, 김대우, 박훈정 등 유명 감독들은 원래 시나리오 작가 출신이다. 영화 ‘7급 공무원’의 각본을 쓴 천성일 작가는 방송계로 이동해 드라마 ‘추노’ ‘더 패키지’ 등을 썼다. 방송 대본 작가 수입이 시나리오 고료보다 훨씬 많아서다. 영화 각본 고료는 1억원 안팎에 불과하지만 웬만한 드라마 대본 고료는 20부작 기준 5억원 이상 받는다.

남상욱 시나리오작가조합 사무국장은 “흥행에 성공해도 작가들은 인센티브를 거의 못 받는다”며 “2차 저작권 권리도 빼앗겨 추가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표준계약서에는 시나리오 원작으로 소설이나 뮤지컬 등 다른 장르로 제작할 때 2차 저작권을 작가에게 보장하고 있다. 남 국장은 “하지만 표준계약서는 현장에서 잘 적용되지 않는다”며 “제작사나 투자배급사가 2차 저작권을 모두 갖는 계약을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