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일양약품 사장이 “두 개의 신약을 개발한 경험을 살려 세번째 신약 개발도 성공하겠다”고 말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김동연 일양약품 사장이 “두 개의 신약을 개발한 경험을 살려 세번째 신약 개발도 성공하겠다”고 말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김동연 일양약품 사장(68)은 한국 신약 개발 역사를 이끌어온 사람 중 한 명이다. 1976년 일양약품 중앙연구소에 입사해 신약 연구만 올해로 42년째다. 그는 올해로 11년째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제약업계 장수 전문경영인이다. 일양약품이 개발한 의약품 중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제품이 없을 정도다. 지난 1월 일양약품 창업주 정형식 명예회장이 타계한 이후 회사의 연구개발(R&D)을 꿰뚫는 유일한 사람으로 꼽히기도 했다.

김 사장은 지금까지 나온 국산 신약 29개 중 2개를 배출했다. 국산 신약 14호 ‘놀텍(역류성 식도염 치료제)’과 18호 ‘슈펙트(백혈병 치료제)’다. 신약 개발에 성공할 확률이 1%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성과다. 놀텍은 올해 매출 350억원, 슈펙트는 1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연매출 100억원 이상 국산 신약이 3개밖에 없는 상황에서 차근차근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는 평가다. 김 사장은 “올해는 놀텍을 중남미로 수출하고 슈펙트는 중국 임상을 시작해 해외 진출국가를 확대하려고 한다”며 “두 신약의 성과를 토대로 세 번째 신약인 항바이러스제 연구에도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1000번 실패 끝에 식도염 치료제 개발


일양약품은 역류성 식도염 치료제 놀텍으로 올해 본격적으로 중남미 시장 공략에 나선다. 캄보디아, 에콰도르에 이어 지난달 멕시코로 수출했고 주변국으로 시장을 확대할 계획이다. 김 사장은 “멕시코 1위 제약사인 치노인과 독점 판매계약을 통해 발매 첫해 300만달러의 수출 주문을 받았다”며 “남미 주변국과 동남아시아 러시아 터키 중동 등으로의 계약도 체결돼 수출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놀텍이 해외 시장에서 빛을 보기까지는 30년이 걸렸다. 김 사장은 서울올림픽이 열리기 직전이던 1987년 일라프라졸 성분의 놀텍 개발에 들어갔다고 회고했다. “한국에 물질특허제도가 도입됐던 게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에는 국내 제약사들이 해외 의약품을 불법 복제해서 팔던 시절이었죠. 신약을 개발하지 않으면 한국 기업들이 다 죽는다는 위기의식이 퍼지면서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도 이때 생겼습니다.”

김 사장은 2013년부터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는 1980년대 후반부터 국내 제약사들이 신약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지속적인 연구가 어려운 척박한 환경 때문에 성공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조합 초기 때부터 신약 개발에 뜻을 모은 사람 중 아직까지 현직에 남아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최근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이종욱 대웅제약 고문이 유일하죠. 제약사들이 신약 개발에 실패하면 먼저 사람을 바꾸고 새로운 사람이 와서 포기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김 사장은 연매출 3000억원도 안 되는 중견 제약사인 일양약품이 대형 제약사들도 성공하지 못한 신약을 2개나 보유할 수 있었던 비결로 ‘끈기’를 꼽았다. “일양약품은 창업주부터 약사 출신인 정도언 회장까지 신약 개발 과정이 얼마나 험난한지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후보물질 1만 개에서 효과가 있는 물질 1개가 나올까 말까한데 1000개에서 1개가 나왔다고 하면 희망적이라고 독려하고 계속 끌고 왔기 때문에 끝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죠.”

일양약품은 항궤양제로 H2 수용체를 연구하던 중 독성이 발견돼 번번이 실패했다. 이후 프로톤펌프 저해제(PPI)로 방향을 바꿨다. PPI 제제가 항궤양 시장의 주류를 형성해갈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9년간 1149번째 시도 끝에 1996년 독성시험을 통과한 후보물질 일라프라졸 합성에 성공했다. 놀텍의 프로젝트명인 IY81149는 1980년도에 개발한 1149번째 합성물질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해외 기술 수출이 무산되고 다시 되돌아오는 과정에서 국내 임상에 13년이 더 걸렸다. 2009년 제품 출시까지 30년이 걸린 셈이다. 김 사장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은 만큼 놀텍은 시판 중인 PPI 제제 중 가장 강력한 위산 분비 억제력으로 탁월한 효능을 입증하고 있다”며 “놀텍을 블록버스터 신약으로 국내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고 해외에서도 가치를 인정받겠다”고 말했다.

백혈병 치료제로 중국 시장 공략

일양약품은 2027년 놀텍의 물질특허기간이 도래하기 전까지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구축하겠다는 전략이다. 두 번째 신약인 백혈병 치료제 슈펙트는 내년 중국 시장 출시가 목표다. 슈펙트는 지난달 20일 중국 보건당국(CFDA)의 임상 3상 승인(IND)을 받았다. 임상시험은 일양약품과 중국 합작사인 양저우일양제약, 글로벌 임상시험수탁(CRO) 업체인 IQVIA가 주관한다. 베이징대 인민병원을 주축으로 총 24개 중국 대형 의료 기관에서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 약 200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할 계획이다. 김 사장은 “중국은 매년 1만2000명 이상의 백혈병 신규 환자가 발생하는 거대 시장”이라며 “중국에서 놀텍이 성공적으로 안착한 만큼 슈펙트도 빠르게 자리잡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슈펙트는 만성골수성 백혈병 치료제 분야에서 세계 네 번째, 아시아 첫 번째 신약이다. 기존 약물보다 20% 이상 가격이 저렴하다. 글로벌 제약사와 경쟁하기 위해 가격을 낮춘 것이다. 김 사장은 “다국적 제약사 제품과 맞서기 위해 전략적으로 가격을 낮췄다”며 “국내에서 연간 발생하는 신규 환자 약 300명에게 슈펙트를 처방할 경우 연간 30억원 정도의 건강보험 재정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슈펙트 처방 실적이 아직 부진하다. 국내 백혈병 환자 수가 많지 않은 데다 기존 환자들이 대부분 노바티스의 글리벡을 복용하고 있어 약을 바꾸기 쉽지 않아서다. “새로 발병하는 백혈병 환자를 대상으로 하다 보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글리벡에 내성이 생겼거나 효과가 없을 때에만 약을 바꿀 수 있어서 시장을 확대하기가 어렵죠. 환자 수가 많은 중국에 눈을 돌린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김 사장은 국산 신약이 국내에서 살아남기 힘든 구조에 대해 지적했다. “슈펙트처럼 처음부터 가격을 낮게 책정한 신약이어도 정부가 약가연동제를 적용해 다시 약값을 깎습니다. 제품 매출이 늘어난 만큼 비례해서 약값을 인하하는 겁니다. 신약은 대개 처음에는 거의 안 팔리다 시간이 지나면서 매출이 늘어납니다. 매출상승률만 높을 뿐 매출 규모는 작은 경우가 많아 약값 인하 타격을 더 심하게 받게 됩니다. 가격경쟁력을 갖춘 국산 신약이 계속 나와야 건강보험 재정도 절감되는데 지금은 신약이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 돼가고 있습니다.”

김 사장은 자금 문제로 신약 임상이 지지부진한 것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토로했다. 슈펙트는 최근 동물실험에서 백혈병 외에 파킨슨병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추가 임상이 필요한 상황이다. 김 사장은 “신약은 적응증을 확대하기 위한 임상이 지속적으로 필요한데 막대한 투자비 때문에 진행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며 “이렇게 되면 새로운 효능을 인정받더라도 시장 진입 시기를 놓쳐 경쟁사에 뒤처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항바이러스제와 백신까지 영역 확장

김 사장은 두번의 성공을 바탕으로 세 번째 신약인 항바이러스물질 ‘IY7640’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일양약품의 초고속 스크리닝 시스템을 통해 짧은 시간 내 도출한 물질이다. 인체를 감염시키는 대부분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광범위한 항바이러스 효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사장은 “기존 항바이러스제인 타미플루의 작용 기전과 전혀 다른 물질”이라며 “동물실험 결과 타미플루보다 약효가 뛰어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중국의 신종 조류인플루엔자 H7N9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이 물질이 국가 안보 차원에서 항바이러스제 주권을 확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독감 백신의 해외 수출 계획도 밝혔다. 일양약품은 충북 음성 공장에서 백신의 원료부터 자체 생산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사전적격성평가(PQ) 인증 실사를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김 사장은 “연내 PQ 승인을 받으면 백신도 글로벌 시장 진출이 차질없이 이뤄질 것”이라며 “내년부터 중남미 등 남반구 국가로 수출해 수익성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