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안전한 물 관리, 농어촌 가치 높이는 일
농어촌은 단순히 농업과 어업이 이뤄지는 공간에 머무르지 않는다. 필자가 어린 시절 끝없이 펼쳐진 김제평야의 지평선과 서해를 바라보며 꿈을 키웠듯이, 농어촌은 누군가의 꿈이 영글어 가는 삶터이자 농어업인의 일터이며, 도시민들의 쉼터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농어촌의 식량 생산기능이 중시됐다면, 최근에는 재해 예방과 자연생태계 및 경관 보전 등 다양한 가치가 더 주목받고 있다.

특히 기후변화가 심해지면서 농어촌 공간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평균 기온은 13.1도로 평년보다 0.6도 상승했다고 한다. 지난해 모내기가 한창이던 4~6월 강수량은 기상관측 이래 최저치를 기록한 반면 여름철엔 국지적인 폭우가 잇따랐다. 이렇게 기상이변으로 농산물 수급이 불균형해지면 장바구니 물가가 널뛰는 걸 체감할 수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식량안보’다. 쌀이 남아돈다지만 보리, 밀 등을 포함한 전체 곡물 자급률은 2016년 기준 23.8%에 머물러 있다. 기후변화로 심해진 가뭄, 홍수에도 안정적으로 농사지을 수 있는 환경은 국가 존립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무엇보다 농사짓는 데 중요한 것은 물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농어촌의 수자원 관리에 더 많은 노력이 요구되는 까닭이다. 농어촌 곳곳에 있는 저수지는 농사짓는 데 필요한 물만 공급하는 것이 아니다. 여유 수량은 흘려보내서 하천이 마르는 것을 막고 생태환경을 보전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수변공원은 주민과 관광객에게 사랑받는 쾌적한 친수공간이 되고 있으며, 집중호우가 내리면 물을 가둬 홍수를 예방하기도 한다.

한국농어촌공사는 농업 생산에 필요한 수리시설과 수자원을 관리하는 전문기관으로서 기후변화에도 안전한 농어촌을 만드는 일에 최우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무엇보다 변화된 기후 여건 속에서도 저수지와 수로 등 농업생산 기반시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파악하고 대책을 추진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수립한 ‘농업·농촌 기후변화 실태조사 마스터플랜’에 따라 올해 383개 구역을 대상으로 기후변화가 농어촌용수와 농업생산 기반에 미치는 영향과 취약성을 정밀하게 평가할 계획이다. 아울러 올 상반기까지 주요 농업생산 기반시설에 대한 기후변화 적응 대책을 수립하고 매년 시행해 나가게 된다.

기후변화 대응책의 핵심은 노후 수리시설을 보수·보강하는 한편 기존의 설계 기준을 변화된 환경에 맞게 강화하는 것이다. 극심한 가뭄과 기록적인 폭우에 대응하려면 저수지의 물그릇을 키우고, 수로도 확장해야 한다. 최근 더욱 커진 지진 위험에 대비해 내진 보강 시공을 내실 있게 추진하는 한편 법적으로 의무 대상이 아닌 소규모 수리시설의 안전진단 예산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지역 간 수자원 수급 불균형이 심해진 만큼 여유 수량을 물이 부족한 곳으로 연계하는 사업도 적극 추진 중이다.

모내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절이다. 전국 저수지마다 수문을 열어 물을 흘려보내는 통수식이 열리고 있다. 물을 적신 땅이 비로소 숨을 쉰다. 쏟아지는 물과 함께 풍족한 결실을 꿈꾸는 농업인의 희망도 커져 간다. 나라의 생명산업을 책임지고 있는 농업인들이 편하게 농사지으려면 기후변화에도 안전하고 효율적인 수자원 관리가 기본이다. 이는 재해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길이기도 하며 삶터이자 일터, 쉼터로서 우리 농어촌의 가치를 더욱 높이는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