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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거일 칼럼] 국군의 위상을 높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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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군사적 위협 쏙 뺀 예비군 교육교재
    뜬금없는 먼나라 얘기에 정신전력만 약화
    軍은 정치권 압박 딛고 스스로 위신 지켜야

    복거일 < 사회평론가·소설가 >
    [복거일 칼럼] 국군의 위상을 높이는 길
    최근 국방부가 새로 만든 ‘예비군 정신전력 교육용 교재’가 논란에 휩싸였다. 예비군 창설 50주년을 맞아, 국방부가 만들어 국회 국방위원회에 미리 공개한 교재다.

    종전 교재에선 북한의 위협을 알리는 정보들이 핵심이었다. 특히 북한이 핵무기의 위력을 늘리고 투발계통을 개량해온 과정을 담아서, 부쩍 커진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잘 소개했다. 새 교재에선 이런 내용이 빠졌다. 대신 스위스가 히틀러의 침공을 막아낸 일이 들어갔다. 군사훈련을 받는 스위스 시민들, 독일군을 사열하는 히틀러 및 독일군의 폭격에 관한 영상들로 채워졌다. 해설자는 “히틀러가 스위스에 프랑스로 가는 길을 내달라고 위협했다가 예비군이 두려워 우회를 택했다”고 설명한다. 야당 국회의원들은 “우리 예비군의 적이 북한이 아니라 히틀러라는 말이냐?” 하고 탄식했다고 한다. 북한이 대량파괴무기들을 갖추고 점점 거칠게 도발해오는 터에 80년 전 스위스 얘기를 하는 것은 좋게 보아 한가롭다. 솔직히 얘기하면 예비군 정신전력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약화시킨다.

    무엇보다 해설이 문제적이다. “독일이 스위스에 프랑스로 가는 길을 내달라고 위협했다”는 얘기엔 말문이 막힌다. 독일은 으레 방어가 약한 벨기에를 경유해서 침공하곤 했다. 전격작전을 편 독일군이 험준한 알프스 산맥을 지나 프랑스로 가겠다고 길을 내놓으라 했다니, 무슨 얘기인가?

    스위스 침공은 독일군이 프랑스를 점령한 뒤에야 비로소 논의됐다. 그것도 길을 빌리는 차원이 아니라 스위스를 분할해서 독일계 주민들을 독일 제국 안으로 받아들이려는 뜻이었다. 이탈리아계 주민과 프랑스계 주민들은 각기 이탈리아와 비시 프랑스로 넘길 생각이었고 이탈리아군이 스위스 침공에 가담하기로 돼 있었다.

    “예비군이 두려워서 스위스를 침공하지 못했다”는 얘기는 상식 이하다. ‘전나무 작전’이라 불린 독일군의 스위스 점령 작전은 애초엔 21개 사단이 참가하도록 돼 있었으나 스위스군의 약한 전력을 감안해서 11개 사단이 참가하도록 수정됐다. 실제로 독일군 참모부는 일단 독일군이 국경을 넘으면 군사적 열세와 정치적 상황 때문에 스위스는 싸우지 않고 항복하리라 판단했다.

    힘이 워낙 비대칭적이었으므로 스위스는 평지의 주민들을 독일군 점령 아래 둔 채 군대만 고지로 올라가서 저항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아울러 동원 연령 상한을 48세에서 60세로 올려서 10만 명을 예비 병력으로 삼기로 했다. 독일군 전차군단을 떨게 만들었다는 예비군이 바로 이 노인들로 이뤄져 소총으로 무장할 부대였다. 그러나 독일군은 끝내 스위스를 침공하지 않았다. 스웨덴의 경우처럼, 스위스를 중립국으로 남겨두는 편이 낫다고 히틀러가 판단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처럼 상식 이하의 낭설이 버젓이 국방부의 교재에 수록된 과정은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심각한 문제의 징후임은 분명하다. 국방부가 정치권의 눈치를 보느라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교재에서 뺀 일과 이런 낭설이 국방부의 공식 견해가 된 일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문제적인가 판단하기 쉽지 않을 정도다. 어느 쪽이든, 국군의 위상이 다시 한 단계 내려앉았다.

    근자에 국군의 위상은 걷잡을 수 없이 추락했다. 북한군의 해킹에 작전 계획이 송두리째 털렸어도 태연하다. 합동훈련에서 전략자산을 들여오겠다는 미군 사령관의 발언을 우리 국방부 장관이 황급히 막는 모습은 슬픈 소극(笑劇)이었다. 정치권의 압박이 심하겠지만, 그래도 “국군이 강해야 남북협상에서 우리 대통령의 협상력이 커진다”는 얘기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은가?

    북한군이 천안함 사건을 남한의 자작극이라고 뻔뻔스럽게 주장해도 국방부는 말이 없다. 보다 못해 미국 국무부가 “북한의 어뢰 공격이 분명하다”고 대신 반박했다. 이런 굴욕적 태도가 역효과를 낸다고 판단했는지 뒤늦게 대통령이 나서서 대응을 주문했다.

    히틀러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히틀러가 독일 사회를 완전히 장악했을 때 그래도 일체성과 위신을 지킨 집단은 독일군이다. 독일군 지휘관들은 나치의 압력에 휘둘리지 않으려 애썼고 나치의 악행들에 저항했다. 히틀러가 부당한 명령을 내리면 야전 지휘관들은 이치를 따지다 무더기로 해임되곤 했다. “사람이 스스로 업신여긴 뒤에야 다른 사람들의 업신여김을 받는다”는 옛 말씀을 국군 지휘부는 아프게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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