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美·中 지식재산권 전쟁이 말해 주는 것
최근 전 세계는 미국과 중국 간 통상전쟁의 귀추를 지켜보고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미국이 중국 정부에 의한 미국 기업의 지식재산권 침해 문제를 제기하고, 강력한 보복조치를 예고하며 자국 기업의 지재권 보호를 중국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미국의 무역적자 시정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 지난해 8월에는 ‘통상법 301조’를 근거로 중국의 미국 기업 지재권 침해 혐의에 대한 조사를 명령했고,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즉시 중국의 강제 기술이전 및 지재권 침해 관련 피해 여부 조사를 개시했다.

USTR은 지난달 말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USTR에 의하면, 중국 정부는 미국 기업에 각종 압력을 행사해 중국 기업으로의 기술 및 지재권 이전을 강요했고, 중국 기업과의 라이선스 협상 시 미국 기업의 협상능력을 제한했다. 또 신기술 확보를 위해 중국 기업에 인수합병(M&A)을 지시하고 이를 부당하게 촉진함으로써 시장에 개입했을 뿐만 아니라, 상업적 이익을 목적으로 미국 데이터망에 무단 침입을 지시하거나 지원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후속조치로 1333개의 대중(對中) 제재 품목에 대해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할 예정임을 이달 초 밝혔다. 이에 대해 중국은 128개의 미국산 수입 품목에 대해 15~25%의 추가 관세 부과로 맞설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이 겨냥한 대중 제재 품목은 대부분 중국이 ‘제조 대국’에서 ‘제조 강국’으로 도약하고자 마련한 ‘중국 제조 2025’의 핵심 산업 분야에 속한다. 이를 두고 일부 전문가는 이번 무역 갈등의 본질을 미래 핵심 산업 분야의 기술 선점을 위한 미·중 간 힘겨루기로 바라보며 ‘지재권 전쟁’이라고도 일컫는다.

미국이 자국 통상법을 근거로 외국 정부에 자국 기업의 지재권 보호를 요구하는 협상의 역사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제조업의 경쟁력이 약해지고 있다고 판단한 미국은 자국 기업의 지재권을 보호하는 것이 산업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보고, 외국과의 통상협상에서 미국 기업의 지재권 보호를 최우선 목표의 하나로 추진해왔다.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통상법 301조를 무기로 1986년 한·미 지재권 양해각서 체결을 이룬 바 있다. 미국은 1988년 통상법 개정을 통해 ‘슈퍼 301조’와 ‘스페셜 301조’를 도입, 교역상대국과의 지재권 협상 도구를 더욱 강화했다.

한편 미국은 우리의 무역위원회에 해당하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를 통해서도 지재권 침해 등 불공정한 무역행위로부터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있다. ITC는 피해 기업 요청이나 자체 판단으로 조사를 개시할 수 있으며, 그 결과 지재권 침해물품으로 판정된 수입품의 자국 내 반입을 금지시킬 수 있다. ITC는 5년 전 삼성전자와 애플의 스마트폰 분쟁으로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최근 ITC는 국내 반도체 제조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대상으로 미국 반도체기업 비트마이크로의 특허권 침해 여부를 조사 중이다.

글로벌 기술강국으로 발돋움한 우리나라도 무역과 지재권 보호를 연계한 미국의 제도를 일부 도입해 준사법적인 기관으로 설립한 무역위원회가 지재권을 침해하는 수입품에 관한 불공정 무역행위를 조사하고 시정할 수 있는 제도를 운영 중이다. 무역위원회는 특허, 상표, 디자인, 영업비밀 등 지재권 침해로부터 피해를 입은 국내 기업을 구제하기 위해 판정 결과에 따라 침해 기업에 수출·수입·판매·제조행위 중지 등 시정조치를 명령하고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이런 불공정 무역행위 조사제도는 지재권 침해소송을 다루는 법원과 비교해 판정 기간이 6개월 정도로 짧고 비용도 저렴하다. 뿐만 아니라 무역위원회는 판정 즉시 침해 기업에 시정조치를 취할 수 있어서, 피해 기업은 지재권을 침해한 수입품에 대한 구제를 매우 신속하게 받을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서로 다른 기술이 융합되면서 핵심기술이 빠르게 변모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나라가 기술강국으로서의 면모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한 신속하고도 효과적인 보호에 국가적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제도 개선 또한 절실하다. 미·중 간 지재권을 둘러싼 통상 분쟁의 귀추를 면밀하게 살펴보면서 우리 기업들의 핵심기술을 보호하기 위한 방안을 깊이 있게 논의할 때다.

htshin@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