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주요 기업의 올해 임금인상률이 20년 만의 최고 수준인 것으로 파악됐다. 일본 경제가 경기 호조에 힘입어 기업의 지급 여력이 늘어나고 노동 수요도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임금이 오르는 ‘선순환 구조’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럽다, 日 직장인들… 기업 임금인상률 20년 만에 '최고'
1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도요타자동차, 소니, 덴소 등 246개 주요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 평균 임금인상률이 2.41%로 1998년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일본의 지난해 물가상승률이 0.5%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 같은 임금인상률은 낮은 수준이 아니다. 지난해 임금인상률(2.06%)에 비해서도 0.35%포인트 더 높다. 월평균 임금인상액도 7527엔(약 7만5400원)으로 20년 만에 처음으로 7500엔을 넘어섰다.

일본 주요 기업의 임금인상률은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1.6~1.7%에 머물렀지만 2012년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총리의 경제정책)가 시행된 이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2013년 1.8%로 뛴 임금인상률은 2014년 이후엔 줄곧 2%대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 기업들의 임금 인상은 경기 개선으로 기업 실적이 좋아진 데다 일손이 부족한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두 번째로 긴 장기 호황 덕에 일본 기업의 실적이 크게 개선되면서 임금 지급 여력도 좋아졌다. 올해 사상 최대 이익을 기대하고 있는 도요타자동차는 임금 3.3% 인상을 결정했고, 최근 부활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 소니는 임금을 5% 올리기로 했다.

일본 주요 기업이 올해 임금을 2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리기로 한 것은 기본적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두 번째로 긴 호황 덕분이다.

일본 내각부에 따르면 올 2월 경기동향지수(2010년=100)는 115.6을 기록하며 2012년 12월 이후 63개월 연속으로 경기가 확장됐다. ‘이자나기 경기(1965년 11월~1970년 7월, 4년9개월)’ 기록을 넘어 사상 최대 장기 호황인 ‘이자나미 경기(2002년 1월~2008년 2월, 73개월)’ 기록도 경신할 조짐이다.

실적 개선에 힘입어 제조업에서도 3년 만에 임금인상률이 전년보다 올랐다. 도요타자동차 소니 등이 큰 폭으로 임금 인상을 결정한 영향이 컸다. 자동차, 자동차부품,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상여금 인상을 주도했다. 올해 일본 주요 기업의 연간 상여금 평균은 전년 대비 3.69% 늘어난 176만3264엔(약 1766만원)으로 집계됐다. 도요타가 전년 대비 5.65%, 소니가 17.54% 상여금 지급액을 늘리기로 하면서 평균 상여금액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호황으로 주요 기업의 실적이 개선되고 있지만 2007년 이후 인구가 감소하면서 산업현장에선 일손을 구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2월 현재 일본의 유효구인배율(구직자 1인당 일자리 수)은 1.58배에 달한다. 근무시간이 길고 작업이 힘든 운송·접객업 등 서비스업 분야에선 유효구인비율이 3.8배 이상이다.

이에 따라 평균임금이 월 30만엔(약 300만원)에 못 미치는 운송, 외식, 기타서비스 업종에 속한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임금 인상에 나서고 있다. 육상운송업은 3.39% 임금인상률로 모든 업종을 통틀어 최고 인상률을 기록했다. 일본 최대 운송업체인 야마토운수는 올 임금 협상에서 노조 요구를 전격 수용해 월 평균임금을 1만1000엔(약 11만원, 3.64%) 올렸다. 후쿠야마통운(3.81%)도 임금을 크게 올렸다. 대형 슈퍼마켓 체인인 라이프코퍼레이션도 3.86%의 높은 임금인상률을 기록했다.

비제조·서비스업 기업들의 적극적인 임금 인상 움직임은 소수의 대형 제조업체들이 주도하던 그동안의 일본 임금 상승 관행도 무너뜨렸다는 평가다. 과거에는 도요타 등 제조업 대기업 임금 인상 수준에 연동돼 다른 산업 및 중견·중소기업의 임금인상률이 결정됐다. 하지만 이제는 인력 확보를 위해 중견·중소기업들도 파격적으로 임금을 올리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비제조업 임금상승률(2.79%)은 1997년 이후 최고를 기록하며 제조업 임금상승률(2.27%)을 웃돌았다.

동종업계 기업들이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던 일본 특유의 연봉체계도 변화하고 있다. 우수 인력 확보를 위해 대졸 초임을 인상하는 등 획일화된 연공서열형 임금체계에도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샤프는 대졸 초임을 노조 요구보다 많은 월 5000엔(약 5만원) 인상했다. 후지필름(5%)과 생활용품 제조업체 라이온(6%)도 대졸 초임을 크게 올려 젊은 인력 확보에 공을 들였다.

만성적인 일손 부족 탓에 노년층 재고용자의 임금도 오르는 추세다. 철도업체 JR서일본은 60세 이상 재고용자도 임금 인상 대상으로 삼았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