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20년은 外風의 역사"… 임기 채운 수장 12명 중 2명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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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금융감독 체계
(1) '독립 감독기구' 요원한 금감원
정권 바뀔 때마다 '코드인사' 논란 불거져
CEO 좌지우지…금융업계 '정치판' 만들어
"금융社 잘못 있지만 당국 입맛대로 해선 안돼"
(1) '독립 감독기구' 요원한 금감원
정권 바뀔 때마다 '코드인사' 논란 불거져
CEO 좌지우지…금융업계 '정치판' 만들어
"금융社 잘못 있지만 당국 입맛대로 해선 안돼"
‘금융 검찰’로 불리는 금융감독원이 1999년 통합 출범 이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 두 명의 금감원장이 각종 논란에 휘말려 잇달아 물러나면서 금감원의 권위는 곤두박질쳤다. 독립적인 금융감독 업무를 수행해야 할 금감원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풍에 휩쓸렸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외환위기 때 탄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곳곳에 흩어져 있는 금융감독기구를 통합해 금융시장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것을 권고해서다. 1998년 4월 금융감독위원회가 설립됐으며 금감위가 8개월간의 준비 끝에 1999년 1월 기존의 은행감독원, 보험감독원, 증권감독원, 신용관리기금을 통합한 금감원을 출범시켰다. 금감위는 10년 뒤인 2008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로부터 금융정책 업무를 넘겨받아 현재의 금융위로 확대 개편됐다.
금감원이 탄생한 지 20년이 됐지만 여전히 정치권과 정부 눈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오히려 “외풍에 휘둘린 20년이었다”는 게 금감원 내부 직원들의 자조 섞인 목소리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금감원장의 자리는 위태로웠고, 그 결과 20년간 임기 3년을 채운 금감원장은 12명 중 2명에 그쳤다. 평균 재임기간은 15개월에 불과했다. 금감원이 정권에 휘둘리는 모습이 반복되자 금융회사들도 금감원의 감독 방향을 불신하고 있다. 금감원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이유다. ◆정권 바뀔 때마다 수장 교체
역대 12명의 금감원장을 살펴보면 전문성과 도덕성을 두루 갖춘 인물도 많았다. 하지만 정권이 교체되면 지연이나 학연 등을 따져 입맛에 맞는 수장을 새로 내려보내는 일이 많았다. 2003년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자 이근영 당시 금감위원장 겸 금감원장은 사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첫해 때는 김용덕 당시 금감위원장 겸 금감원장(현 손해보험협회장)이 취임 6개월 만에 금융당국 수장 자리를 내놔야 했다. 진웅섭 금감원장은 임기 만료를 단 두 달 남기고 사임했다. 지금까지 3년 임기를 모두 채운 금감원장은 윤증현 금감위원장 겸 금감원장과 김종창 금감원장 두 명에 불과하다.
김기식 금감원장은 국회의원 시절 정치자금을 ‘셀프 기부’해 위법 판정을 받아 사퇴했지만, ‘낙하산’ 논란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첫 정치인 출신 금감원장이었던 그는 문재인 정부에서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는 참여연대 사무처장으로 일했다.
◆정치판이 된 금융업계
금감원장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자리에서 물러나자 그 여파가 금융업계에도 미쳤다. 새로 온 금감원장은 감독·검사권을 정권 입맛에 맞지 않는 인물을 내치는 도구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실제 노무현 정부 때 ‘카드사태’ 해결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괘씸죄’로 김정태 국민은행장이 중징계를 받고 물러났다. 강정원 국민은행장이 2009년 말 KB금융 회장 단독 후보에 올랐지만 취임하지 못하고 물러난 것은 이명박 정부의 눈치를 본 금감원 때문으로 알려졌다. 강 행장을 대신해 KB금융 회장에 오른 최고경영자(CEO)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같은 대학 출신인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이었다.
금감원과 금융회사 CEO가 외풍에 시달린 결과는 금융회사 부실로 돌아왔다. 지난 1월 전직 금감원 임원이 서울고등법원에서 2013년 경남기업의 자금 지원을 위해 은행들을 부당하게 압박했다는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2013년 한 대형은행은 경남기업이 신청한 대출을 거절했다가 해당 임원이 10년치 여신심사자료를 요구한 이후 170억원 대출을 승인해줬다. 이 임원이 은행들을 압박할 당시 경남기업의 대주주는 정무위원회에서 활동한 성완종 의원이었다.
일각에선 금감원과 금융회사의 모든 잘못된 관행을 ‘외풍’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금감원 내부 직원들과 금융회사 임직원들이 외풍에 맞서기보다 오히려 외풍을 역이용해 자신들의 연줄을 만들려는 기회주의에 젖어들었다는 비판이다.
채용비리 문제가 대표적이다. 금감원은 2014년 전직 국회의원의 아들인 변호사 특혜 채용으로 물의를 빚었다. 지난해엔 금감원이 2015년 특정인의 청탁을 받고 당초 채용계획까지 바꿔가며 점수가 낮은 지원자를 부당 선발한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 채용비리가 가능했던 것은 청탁을 들어주는 대신 승진 기회를 잡으려는 분위기도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금융감독원은 외환위기 때 탄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곳곳에 흩어져 있는 금융감독기구를 통합해 금융시장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것을 권고해서다. 1998년 4월 금융감독위원회가 설립됐으며 금감위가 8개월간의 준비 끝에 1999년 1월 기존의 은행감독원, 보험감독원, 증권감독원, 신용관리기금을 통합한 금감원을 출범시켰다. 금감위는 10년 뒤인 2008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로부터 금융정책 업무를 넘겨받아 현재의 금융위로 확대 개편됐다.
금감원이 탄생한 지 20년이 됐지만 여전히 정치권과 정부 눈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오히려 “외풍에 휘둘린 20년이었다”는 게 금감원 내부 직원들의 자조 섞인 목소리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금감원장의 자리는 위태로웠고, 그 결과 20년간 임기 3년을 채운 금감원장은 12명 중 2명에 그쳤다. 평균 재임기간은 15개월에 불과했다. 금감원이 정권에 휘둘리는 모습이 반복되자 금융회사들도 금감원의 감독 방향을 불신하고 있다. 금감원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이유다. ◆정권 바뀔 때마다 수장 교체
역대 12명의 금감원장을 살펴보면 전문성과 도덕성을 두루 갖춘 인물도 많았다. 하지만 정권이 교체되면 지연이나 학연 등을 따져 입맛에 맞는 수장을 새로 내려보내는 일이 많았다. 2003년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자 이근영 당시 금감위원장 겸 금감원장은 사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첫해 때는 김용덕 당시 금감위원장 겸 금감원장(현 손해보험협회장)이 취임 6개월 만에 금융당국 수장 자리를 내놔야 했다. 진웅섭 금감원장은 임기 만료를 단 두 달 남기고 사임했다. 지금까지 3년 임기를 모두 채운 금감원장은 윤증현 금감위원장 겸 금감원장과 김종창 금감원장 두 명에 불과하다.
김기식 금감원장은 국회의원 시절 정치자금을 ‘셀프 기부’해 위법 판정을 받아 사퇴했지만, ‘낙하산’ 논란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첫 정치인 출신 금감원장이었던 그는 문재인 정부에서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는 참여연대 사무처장으로 일했다.
◆정치판이 된 금융업계
금감원장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자리에서 물러나자 그 여파가 금융업계에도 미쳤다. 새로 온 금감원장은 감독·검사권을 정권 입맛에 맞지 않는 인물을 내치는 도구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실제 노무현 정부 때 ‘카드사태’ 해결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괘씸죄’로 김정태 국민은행장이 중징계를 받고 물러났다. 강정원 국민은행장이 2009년 말 KB금융 회장 단독 후보에 올랐지만 취임하지 못하고 물러난 것은 이명박 정부의 눈치를 본 금감원 때문으로 알려졌다. 강 행장을 대신해 KB금융 회장에 오른 최고경영자(CEO)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같은 대학 출신인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이었다.
금감원과 금융회사 CEO가 외풍에 시달린 결과는 금융회사 부실로 돌아왔다. 지난 1월 전직 금감원 임원이 서울고등법원에서 2013년 경남기업의 자금 지원을 위해 은행들을 부당하게 압박했다는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2013년 한 대형은행은 경남기업이 신청한 대출을 거절했다가 해당 임원이 10년치 여신심사자료를 요구한 이후 170억원 대출을 승인해줬다. 이 임원이 은행들을 압박할 당시 경남기업의 대주주는 정무위원회에서 활동한 성완종 의원이었다.
일각에선 금감원과 금융회사의 모든 잘못된 관행을 ‘외풍’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금감원 내부 직원들과 금융회사 임직원들이 외풍에 맞서기보다 오히려 외풍을 역이용해 자신들의 연줄을 만들려는 기회주의에 젖어들었다는 비판이다.
채용비리 문제가 대표적이다. 금감원은 2014년 전직 국회의원의 아들인 변호사 특혜 채용으로 물의를 빚었다. 지난해엔 금감원이 2015년 특정인의 청탁을 받고 당초 채용계획까지 바꿔가며 점수가 낮은 지원자를 부당 선발한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 채용비리가 가능했던 것은 청탁을 들어주는 대신 승진 기회를 잡으려는 분위기도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