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리더' 위상 높이려는 마크롱
공동예산 도입해 재정통합 추진
경제규모 큰 독일 재정부담 커져
反EU 여론 의식한 메르켈 '난색'
美 관세폭탄·시리아 공습 등
통상·안보 문제 놓고도 충돌
◆유럽 경제통합 온도 차
마크롱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유럽의회 연설에서 “유로존 은행 통합과 재정 통합을 위한 단계적인 로드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EU 회원국이 공동 예산을 도입하고 공동 재무장관을 두는 방안까지 구상하고 있다.
EU가 단일 통화인 유로 사용에 이어 공동 예산까지 도입하면 완전한 경제 통합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마크롱 대통령은 EU의 경쟁력을 높이고 재정위기 발생 위험을 줄이려면 공동 예산을 운용하는 등 재정을 통합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메르켈 총리는 이 같은 방안에 난색을 나타내고 있다. 공동 예산을 도입하면 EU에서 경제 규모가 가장 큰 독일이 가장 많은 돈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독일은 2016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가 68.3%로 유로존 평균(88.9%)보다 낮다. 반면 그리스는 179%, 이탈리아는 131.8%, 포르투갈은 125.7%에 달한다. 독일에선 EU 재정이 통합되면 재정을 방만하게 운용하는 나라에 독일 국민의 세금이 지원되는 꼴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메르켈 총리는 “단기적으론 공동 예산·공동 재무장관은 안 된다”며 ‘유로존 경제장관회의’ 신설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유로존 19개 국가의 재무장관 회의체인 ‘유로그룹’을 경제 관련 장관들이 모두 참여하는 체제로 확대하는 방안이다.
◆“마크롱, 실망할 것”
금융위기를 맞은 회원국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유럽통화기금(EMF) 설치를 놓고도 두 정상 간 이견이 있다. 메르켈 총리는 17일 기독민주당과 기독사회당(CSU, 연립여당) 의원들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EMF를 설치하려면 EU 조약을 변경해야 한다”고 말했다. EU 조약 변경은 모든 회원국이 동의해야 가능하다는 점에서 메르켈 총리 발언은 EMF 설치에 속도를 내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는 EU의 의사결정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마크롱 대통령의 생각과는 차이가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회원국 만장일치를 기본으로 하는 EU의 의사결정 방식에 대해 “길게 자란 풀숲에서 공을 차는 것과 같다(문제를 내버려 두겠다는 것과 같다)”며 “EU가 마비된 거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메르켈 총리는 또 “EMF가 국가 간 기구로 남아야 한다”고 말했다. EMF를 유럽집행위원회(EC) 산하에 둬선 안 된다는 뜻으로 독일 의사와 무관하게 자금을 집행하도록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메르켈 총리의 발언이 베를린을 방문할 예정인 마크롱 대통령을 실망시킬 것”이라고 평가했다. 두 정상은 19일 회담을 앞두고 있다.
두 정상이 주요 현안마다 의견 차를 보이는 배경에는 독일의 국내 정치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해 9월 총선에서 승리했지만 지난달에야 새 정부를 출범시켰다. 극우 성향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지난 총선에서 12.6%를 얻는 등 반EU 여론도 만만치 않다. EU 개혁을 통해 유럽의 지도자로 위상을 높이려는 마크롱 대통령과 독일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메르켈 총리가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통상·안보도 이견
통상과 안보 이슈에도 두 정상은 다르게 대응하고 있다. 미국이 지난달 EU산 수입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관세 부과를 한시적으로 유예키로 하자 마크롱 대통령은 “우리 머리에 총을 겨누는 국가와는 협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메르켈 총리는 “미국과 관세 면제 협상을 원한다”며 “모두가 패배하는 무역전쟁의 소용돌이로 빠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지난 14일 미국·영국과 함께 시리아 정부의 화학무기 시설을 공습했다. 메르켈 총리는 “군사 개입은 필요하고 적절했다”고 밝혔지만 공습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이 역시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천연가스관 때문에 러시아를 의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