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전 국정원장. 연합뉴스
원세훈 전 국정원장. 연합뉴스
나라를 뒤흔들었던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이 5년 동안 다섯 번의 재판 끝에 ‘불법 선거운동이 맞다’는 결론을 내며 마무리됐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67)은 징역 4년에 자격정지 4년이 확정됐다. 2013년 6월 기소된 지 4년10개월 만의 일이다. 국가 권력의 사이버 정치활동에 사법부가 경각심을 울렸다는 평가다. 동시에 특수한 안보상황을 고려하지 않아 현존하는 위협인 북의 사이버전에 대한 대응이 원천 봉쇄됐다는 우려도 나온다.

◆5차례 재판 끝에 “선거운동 맞다” 결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9일 공직선거법 위반 및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 전 원장의 재상고심에서 원심을 확정했다. 함께 기소된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과 민병주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에게는 각각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2년6개월이 확정됐다.

이들은 2012년 제18대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 직원들을 동원해 인터넷 댓글과 트위터 게재를 통해 당시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돕는 등 선거에 개입하고 정치활동을 한 혐의로 2013년 기소됐다.
"국정원 댓글=정치개입" 원세훈 4년 확정… 5년 만의 결론
1심은 원 전 원장이 정치에 관여해 국정원법을 위반한 혐의를 인정했다. 하지만 특정 후보를 낙선시킬 목적으로 선거운동을 한 것은 아니라고 봤다. ‘425 지논 파일’과 ‘시큐리티 파일’이 핵심 증거였지만 증거 능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파일 작성자가 작성 여부를 확인해주지 않아서다.

지논 파일에는 광우병, 자유무역협정(FTA), 제주해군기지, 북한 미사일 발사 등 정치 이슈에 대한 원 전 원장의 논지가 요약돼 있다. 시큐리티 파일은 심리전단 직원들의 이름 앞 두 글자와 269개의 트위터 계정, 비밀번호가 적혀 있었다. 검찰 수사의 시발점이었다.

2심 재판부는 공직선거법 위반도 유죄로 판단했다. 두 파일의 증거 능력을 인정한 결과다. 하지만 대법원은 파일의 증거 능력을 불인정하며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그런 이유로 형량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지만 파기환송심에서 검찰이 국정원 부서장 회의 녹취록 등을 증거로 추가 제출하면서 형량이 오히려 늘었다.

결국 다섯 번째 선고인 이날 대법원 재판도 파기환송심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원심이 정치활동 관여라고 인정한 사이버 활동 부분은 국정원법이 금지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또 공무원의 정치 중립을 어겼다고 판단했다.

◆일각에선 “北과 사이버전 말라는 거냐”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는 대법관 간 엇갈린 판결도 나왔다. 김창석·조희대 대법관은 이번에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공모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재차 파기환송을 결정했다. 이들 대법관은 “18대 대선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의 업무 지시 및 보고가 이뤄졌는지 알 객관적 자료가 없고 선거운동 관련 공모를 증명할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법원이 정치 개입을 확장 해석했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사이버사령부 대원이 ‘정치 관여’를 했다고 공소장에 적시된 트위터 78만6698건 중 정치 관련 댓글은 1%대인 8800여 건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조금이라도 관련 언급을 하면 모두 정치 개입이라고 확장 해석한 결과”라고 말했다. 국가안보 분야 전문가인 한 대학교수는 “북한 심리전 요원들이 국내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건 기정사실”이라며 “판결대로라면 북한이 공작하더라도 지켜만 봐야 한다”고 우려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