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급은 적고, 일은 많죠. 그래도 국가를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은 있었는데…. 요즘엔 잠재적 범죄자 취급까지 당하네요.”

지난 17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공무원 행동강령’을 놓고 세종시 공무원들 사이에서 논란이 뜨겁다. 국민권익위원회가 개정한 행동강령은 불법청탁을 받지도, 하지도 못하도록 하는 윤리 규정이다. 부정청탁을 없애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에 맞춰 규정이 대폭 강화됐다. 한 중앙부처 공무원은 “퇴직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모든 공무원을 부정청탁을 일삼는 무리로 매도하는 것 같아 서글픈 마음이 든다”고 했다. 반면 “이번 기회에 전관예우 관행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나도 곧 퇴직할 텐데… 후배 공무원 만나면 범죄?"
◆“일단 사적인 약속은 취소”

가장 뜨거운 논란은 ‘직무 관련자가 퇴직 2년 이내인 해당 기관의 퇴직자와 사적인 만남을 가질 때 기관장에게 보고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공무원들은 일단 퇴직 선배와의 사적인 약속은 모조리 취소하는 분위기다. 직무 관련성을 따지기에 앞서 장관에게 보고하는 것 자체가 부담되기 때문이다. 한 경제부처 국장은 “행동강령을 보고 퇴직 선배와의 저녁 약속을 취소했다”며 “시행 초기라서 모호한 부분이 많은데 괜히 만났다가 서로에게 부담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퇴직 공무원들도 “후배와의 관계가 어색해졌다”고 토로했다. 공무원 출신인 한 공공기관 임원은 “공무원은 민간인과의 골프, 여행 등 사적 업무가 예전부터 금지됐다”며 “굳이 행동강령까지 개정하면서 ‘2년 이내 퇴직 공무원’이라고 콕 집어넣은 것은 퇴직 후엔 인간관계를 끊으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일부 부처는 산하기관장으로 퇴직 공무원이 자리잡은 사례가 많아 업무 차질이 우려된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 경제부처 과장은 “최근 산하기관장이 한꺼번에 바뀌는 과정에서 부처 1급 출신 여럿이 기관장 또는 협회 고위직으로 갔다”며 “이들은 수시로 소관 부처와 업무협의를 해야 하는데 어느 만남까지 보고 대상인지 구체적인 지침이 나오지 않아 만남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도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경직된 분위기는 공직사회에도 마이너스라는 지적이다. 사회부처 한 국장은 “퇴직한 선배들을 만나면 공무원으로 있을 때는 느끼지 못한 얘기를 해줄 때가 많다”며 “안 그래도 공무원들이 현장과 괴리돼 있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현장 정보가 차단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했다.

◆“이번에 청탁 뿌리 뽑자”

일각에선 이번 공무원 행동강령 개정으로 부정청탁 문화가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에 이어 공무원 행동강령도 강화된 만큼 이번 기회에 전관예우 관행을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다. 퇴직 공무원들이 대형 로펌 등으로 자리를 옮겨 ‘친정’을 상대로 공공연히 로비하던 문화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중앙부처 한 공무원은 “연구개발 지원, 용역 등을 맡은 부서에서 일하다 보면 부정청탁 여부가 모호한 경우가 많다”며 “퇴직한 선후배가 오랜만에 밥이나 먹자고 해서 나가보면 친한 지인이라면서 민간업체 사람을 소개해주는 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간적으로 매몰차게 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데 법적으로 아예 막으면 서로 어색한 일이 줄어들 것 같다”고 했다.

심은지/조재길/성수영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