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바다 위 신사·원폭 기념관… 인류유산의 寶庫, 히로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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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르게 즐기는 일본여행 (9) 히로시마
일본 지도를 펼쳐보면 야마구치현은 히로시마와 이웃해 있다. 야마구치현 이와쿠니시에서 히로시마 미야지마까지 차로 30분 정도면 닿을 정도로 가깝다. 야마구치현 여행을 계획할 때 조금 더 여유를 둬 히로시마까지 둘러보는 것도 좋다. 히로시마는 미야지마 신사와 히로시마 평화기념 공원, 원폭 돔까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바다 위에 그림 같은 풍경, 빨간 도리이
미야지마는 교토 아마노하시다테, 미야기현의 마쓰시마와 함께 일본 3경 중 하나로 꼽힌다. 미야지마는 세토내 해에 떠 있는 섬으로 ‘신의 섬’으로 숭배돼 왔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는 이쓰쿠시마 신사,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풍경을 간직한 미센 등 유서 깊은 신사와 사찰이 있는 낭만적인 섬이다. 미야지마에 가려면 바다를 건너야 한다. 15분에 한 대씩 10분 정도 페리를 타고 가면 미야지마에 도착한다. 섬의 땅을 밟으면 가장 먼저 반갑게 맞아주는 것이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사슴이다. 마치 시골동네를 어슬렁거리는 백구처럼 눈망울이 큰 사슴이 섬 안을 돌아다닌다.
미야지마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풍경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빨간 오도리와 이쓰쿠시마 신사다. 바다 쪽에서 바라보면 미센이 병풍처럼 신사를 두르고, 언덕 위에 있는 오층탑까지 한 장면에 들어온다. 자연과 인간의 창조물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593년 창건된 이쓰쿠시마 신사는 21채의 건물이 붉은 칠을 한 회랑으로 연결돼 있다. 회랑의 길이는 300m에 달한다. 12세기 헤이안 시대에 제 모습을 갖췄다. 신사는 바닷물에 떠 있는 모습이다. 해신(海神)을 섬기는 신사로 용궁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물에 잠기게 했다. 이쓰쿠시마 신사는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숲 안에 들어가 있으면 숲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숲 바깥으로 나와 숲 전체를 바라보면 그 숲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 수 있다. 이쓰쿠시마 신사도 밖으로 나와 전체를 바라봤을 때 풍부한 빛깔을 볼 수 있었다. 미야지마를 상징하는 도리이는 높이 16m, 둘레 10m로 바다 위에 장엄하게 솟아 있다. 거대한 도리이를 미끄러지듯이 통과하는 크루즈의 풍경이 장관을 이룬다. 현세에서 배를 타고 내세로 간다는 정토 신앙의 의미가 담겨 있다. 썰물 때 진흙이 드러나면 도리이까지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 석양이 바다로 내려와 노을이 물들면 이쓰쿠시마 신사는 최고의 절경을 보여준다. 많은 사람이 바닷가 벤치에 걸터앉아 하늘로 솟은 붉은 도리이와 바다로 떨어지는 붉은 해가 교차하는 황홀한 장면을 넋 놓고 바라본다. 미야지마에 내리는 노을 빛 속으로 들어간다. 빛 속에선 빛을 만질 수 없지만 삶의 기쁨과 슬픔을 담은 빛은 가슴속에 스미어 뭉클해진다. 화려하고 웅장한 센조카쿠
미야지마의 골목은 운치 있다. 빛이 새 들어와 그림자가 드리운 골목은 입체적이다. 골목 끝 언덕 위에 솟아 있는 화려한 탑은 빛에 반사돼 눈부시다. 계단을 올라 센조카쿠에 들어서면 넓은 경당이 나온다. 센조카쿠는 158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안코쿠지의 승려 에케이에게 명해 지은 대경당이다. 전쟁에서 죽은 사람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불경을 독송했다. 1000장의 다다미가 깔린 저택은 경이로울 만큼 넓다. 경당 안에는 큰 주걱이 서 있는데, 그 옆에 서서 키를 재보니 주걱의 키가 두 배는 족히 돼 보인다. 주걱의 발상지답게 곳곳에 거대한 주걱이 세워져 있다. 경당 안에는 지붕을 지탱해주는 기둥이 숨바꼭질을 해도 좋을 만큼 많이 세워져 있다. 경당 밖으로 나가면 넓이만큼이나 긴 회랑이 있다. 회랑을 걸으면 미야지마의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넓은 경당은 수평적인 바다와 이어져 무한하다. 센조카쿠에서 나오면 건물 옆에 화려한 5층탑, 고주노토가 세워져 있다. 일본과 중국 당나라의 양식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붉은 탑이다. 1407년에 세워진 고주노토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화려하다. 이쓰쿠시마 신사와 도리이, 고주노토의 붉은색은 섬 안에 펼쳐진 모든 색깔 중에서 가장 깊이 있다. 이 붉은색이 미야지마를 또렷하게 설명한다.
고주노토는 언덕 위에 우뚝 솟아 있어 미야지마의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이쓰쿠시마 신사와 탑의 조화는 미야지마 풍경의 정수라 할 만하다.
미야지마의 고찰 다이쇼인
이쓰쿠시마 신사에서 다키노코지라 불리는 골목을 걷다 보면 그 끝에 미야지마 제일의 사찰, 다이쇼인이 나온다. 다이쇼인은 이쓰쿠시마 신사만큼 알려지지 않았지만 볼거리가 많다. 정식 명칭은 다키야마 스이쇼지 다이쇼인이다. 806년에 세워진 미야지마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다. 2006년에는 ‘14대 달라이 라마’가 방문하기도 했다.
미센산 기슭에 세워진 사찰을 보려면 촘촘한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계단 중턱에서 발길을 멈추고 돌아보면 미야지마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붉은 신사의 지붕을 건너면 푸른 바다가 있고, 바다를 건너면 또 다른 마을이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풍경은 아득하다.
풍경을 뒤로하고 사찰에 오르는 길 곳곳에 다양한 불상이 숨어 있다. 호빵맨, 울트라맨 같은 캐릭터 불상, 모자를 쓴 불상, 망토를 두르고 있는 불상 등 수많은 불상이 사찰을 지키고 있다. 많은 사찰을 다녔어도 이곳만큼 많은 불상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법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가운데 법문이 새겨진 원통 모양은 티베트의 마니차와 같다. 마니차는 원통형 모양에 반야심경이 새겨져 있다. 마니차를 한 번 돌릴 때마다 경전 한 권을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을 쌓는 것이라고 해 요란한 소리를 내는 원통을 돌리며 계단을 내려왔다.
주걱의 발상지답게 사찰 안 나무판에 소원을 빌어 걸어 놓는 것을 에마라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에마조차 나무주걱 모양이다.
사찰 아래 있는 오모테산도 상점가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주걱이 누워 있다. 수령이 270년이나 된 느티나무를 깎아 만든 길이 7.7m, 무게 2.5t의 거대한 주걱, ‘오샤쿠시’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주걱의 발상지 미야지마를 상징하기 위해 2년10개월에 걸쳐 제작했다고 한다.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미야지마에서 단풍 모양의 만주가 나오는 것은 당연할 터. 팥 앙금이 들어간 촉촉한 만주의 달콤함이 피로를 가시게 한다. 모미지 만주는 미야지마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매년 2월에는 굴 축제가 열릴 만큼 굴이 유명하다. 오모테산도 상점가에는 굴 요리를 파는 음식점이 많다. 상점 앞에서 거리를 바라보며 숯불 위에 직접 굴을 구워준다.
오후 8시가 넘으면 섬 밖으로 나가는 마지막 배가 뜬다. 급하게 떨어지는 해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바쁘게 한다. 해가 진 뒤 사람들이 빠져나간 섬은 고요하다. 상점에는 하나둘 불이 꺼진다. 그 많은 사람이 어디로 가버렸나 싶을 정도로 인적이 사라진 거리에는 외로운 사슴들만 어슬렁거린다. 바람 소리와 벌레 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까만 밤 조명이 켜진 도리이는 잠든 섬을 홀로 비춘다. 밤 11시가 되면 도리이를 비춘 불빛도 잠이 든다. 새벽 동틀 무렵, 신사의 지붕이 점점 밝아지고, 그 위로 푸른빛을 띤 구름이 넓게 퍼진다. 시간마다 다른 빛을 내는 섬.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볼 수 있었던 미야지마의 하룻밤. 잠시 스쳐간 사람들은 이 귀한 풍경을 알 리가 없다.
도심 속 작은 정원 슈케이엔과 원폭 돔
배를 타고 섬을 나와 히로시마 도심으로 향했다. 히로시마 도심의 작은 정원, 슈케이엔은 1620년 히로시마의 영주 아사노 나가아키라 별장의 정원으로 조성됐다. 강산의 풍경, 당시 수도였던 교토의 모습, 깊은 산의 정취를 표현했다. 중국 항저우 서호를 본떠 ‘슈케이엔’이라고 불린다. 가운데 연못을 두고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풍경을 감상하는 회유식 정원이다. 에도 시대에 유행했던 양식이다. 연못에는 작은 섬이 떠 있고 섬은 다리와 연결된다. 여러 개의 다리 중에서 붉은 아치교가 눈에 띈다. 슈케이엔은 1940년 국가명승지로 지정됐으나 원자폭탄 투하로 파괴됐다. 이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작은 정원이라 돌아보는 데 오래 걸리지 않지만 작은 곳에 광대한 것들을 담았다. 고층 빌딩이 연못에 비치는 풍경마저 미리 계획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스민다. 정원을 한 바퀴 돌아 나가는 길에 매화가 만발했다. 매화꽃 그늘 아래 서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봄처럼 화사하다.
히로시마에서 반드시 봐야 할 곳은 원폭 돔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인류가 만든 강력하고 파괴적인 무기가 떨어진 자리는 참혹했다. 14만 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건물은 모두 파괴됐다. 폭심지 인근에서 유일하게 남겨진 건물은 골조가 앙상하게 드러난 돔 모양의 건물이었다.
1910년 히로시마현의 산업을 장려하기 위해 모토야스 강 동쪽에 체코의 건축가 얀 렛트르가 설계한 상업전시관을 세웠다. 3층짜리 벽돌 건물에 구리로 덮인 철골 돔을 지붕으로 얹었다. 당시 물산장려관(상공회의소) 건물은 원자폭탄이 떨어져 지붕과 마루, 내벽이 무너지고 건물 중심부의 골조만 남게 되자 원폭 돔으로 불렸다. 원폭 돔은 원폭 투하 당시 파괴된 모습 그대로다. 세계 평화의 상징으로 1996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유네스코 선정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단서를 붙였다. ‘인간의 실수와 어리석음을 상징하는 히로시마 원폭 돔은 핵무기를 폐기하고 영원한 인류 평화를 추구한다는 서약의 상징입니다.’
전쟁의 참상을 고한다, 평화기념관
전쟁의 흔적을 따라가는 것은 참으로 복잡한 마음이 든다.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하고 세계 평화를 염원하는 취지를 담아 전쟁의 참상을 보존하고 전시하고 있지만 그 참혹함 앞에서는 어떤 말도 나오지 않는다.
원폭 돔에서 모토야스 다리를 건너면 평화기념공원이 나온다. 평화기념공원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원자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에 세계 평화를 기원하며 조성한 공원이다. 공원 내에는 평화기념 자료관을 비롯해 원폭 희생자 위령비, 원폭 어린이 상, 한국인 피폭자 위령비 등을 세워 원폭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
발길을 멈추게 했던 곳은 소녀가 두 팔을 들어 학을 받치고 있는 동상 앞이었다. 일본에서는 장수와 평화를 상징하는 종이학 1000마리를 접으면 병이 낫는다고 한다. 원폭 피해를 입은 소녀는 이런 이야기를 믿고 종이학을 접었다. 그러나 소녀는 종이학 1000마리를 다 접지 못하고 964마리의 종이학을 접은 뒤 사망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일본 각지의 어린이들이 종이학을 접어 보내기 시작했다. 지금도 여전히 공원에는 학이 배달된다.
공원 가운데 원폭 희생자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둥글게 솟은 아치형 위령비 사이로 강 건너 원폭 돔이 보인다. 위령비가 원폭 돔을 감싸고 있는 모습인데, 원폭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처럼 보인다. 입구에는 평화의 시계탑이 뒤틀린 모습으로 세워져 있다. 원폭이 투하된 시각인 오전 8시14분마다 시계탑의 종이 울린다.
공원 내에 지어진 평화기념 자료관을 찾았다. 자료관 안에는 원폭이 떨어졌을 때의 사진, 불에 그을린 채로 바늘이 8시14분에 멈춘 아날로그 시계, 불에 녹아버린 어린이 자전거, 피폭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사진 등 그날의 참상을 알리는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피폭된 수많은 사람은 평범한 시민이었다. 돌아보는 내내 저절로 숙연한 마음이 드는 것은 그런 이유였다. 그러나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 참상을 낱낱이 고하며 피해자가 된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것에 묘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여행메모
에어서울이 인천~히로시마 노선을 운항한다. 수요일과 금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운항하며 1시간20분 걸린다. 오코노미야키는 ‘좋아하는’의 오코노미와 ‘굽다’의 야키를 합성한 말이다. 좋아하는 재료를 선택해서 철판에 구워 먹는 요리다. 일본에는 오사카 스타일과 히로시마 스타일의 오코노미야키가 있다. 오사카는 밀가루 반죽에 양배추와 해산물 등을 섞어 우리나라의 빈대떡처럼 익히지만 히로시마는 얇게 핀 반죽 위에 양배추, 숙주, 소바, 돼지고기 등을 차례차례 얹어 익힌다. 모양과 맛에서 확실한 차이를 보이는 오사카 오코노미야키와 히로시마 오코노미야키는 자기들이 원조라고 자존심 대결을 벌인다. 우리나라에서 맛볼 수 있는 오코노미야키는 대부분 오사카 풍이라 오사카 스타일에 더 익숙하겠지만 히로시마 사람들에게 오사카 오코노미야키를 논하면 열변을 토한다. 그들에게 오코노미야키는 자부심이 대단한 음식이다. 히로시마에 오코노미야키 거리와 빌딩이 있을 정도다. 빌딩 전체가 오코노미야키만 판매한다.
히로시마=글·사진 이솔 여행작가 leesoltour@naver.com
바다 위에 그림 같은 풍경, 빨간 도리이
미야지마는 교토 아마노하시다테, 미야기현의 마쓰시마와 함께 일본 3경 중 하나로 꼽힌다. 미야지마는 세토내 해에 떠 있는 섬으로 ‘신의 섬’으로 숭배돼 왔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는 이쓰쿠시마 신사,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풍경을 간직한 미센 등 유서 깊은 신사와 사찰이 있는 낭만적인 섬이다. 미야지마에 가려면 바다를 건너야 한다. 15분에 한 대씩 10분 정도 페리를 타고 가면 미야지마에 도착한다. 섬의 땅을 밟으면 가장 먼저 반갑게 맞아주는 것이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사슴이다. 마치 시골동네를 어슬렁거리는 백구처럼 눈망울이 큰 사슴이 섬 안을 돌아다닌다.
미야지마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풍경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빨간 오도리와 이쓰쿠시마 신사다. 바다 쪽에서 바라보면 미센이 병풍처럼 신사를 두르고, 언덕 위에 있는 오층탑까지 한 장면에 들어온다. 자연과 인간의 창조물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593년 창건된 이쓰쿠시마 신사는 21채의 건물이 붉은 칠을 한 회랑으로 연결돼 있다. 회랑의 길이는 300m에 달한다. 12세기 헤이안 시대에 제 모습을 갖췄다. 신사는 바닷물에 떠 있는 모습이다. 해신(海神)을 섬기는 신사로 용궁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물에 잠기게 했다. 이쓰쿠시마 신사는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숲 안에 들어가 있으면 숲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숲 바깥으로 나와 숲 전체를 바라보면 그 숲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 수 있다. 이쓰쿠시마 신사도 밖으로 나와 전체를 바라봤을 때 풍부한 빛깔을 볼 수 있었다. 미야지마를 상징하는 도리이는 높이 16m, 둘레 10m로 바다 위에 장엄하게 솟아 있다. 거대한 도리이를 미끄러지듯이 통과하는 크루즈의 풍경이 장관을 이룬다. 현세에서 배를 타고 내세로 간다는 정토 신앙의 의미가 담겨 있다. 썰물 때 진흙이 드러나면 도리이까지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 석양이 바다로 내려와 노을이 물들면 이쓰쿠시마 신사는 최고의 절경을 보여준다. 많은 사람이 바닷가 벤치에 걸터앉아 하늘로 솟은 붉은 도리이와 바다로 떨어지는 붉은 해가 교차하는 황홀한 장면을 넋 놓고 바라본다. 미야지마에 내리는 노을 빛 속으로 들어간다. 빛 속에선 빛을 만질 수 없지만 삶의 기쁨과 슬픔을 담은 빛은 가슴속에 스미어 뭉클해진다. 화려하고 웅장한 센조카쿠
미야지마의 골목은 운치 있다. 빛이 새 들어와 그림자가 드리운 골목은 입체적이다. 골목 끝 언덕 위에 솟아 있는 화려한 탑은 빛에 반사돼 눈부시다. 계단을 올라 센조카쿠에 들어서면 넓은 경당이 나온다. 센조카쿠는 158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안코쿠지의 승려 에케이에게 명해 지은 대경당이다. 전쟁에서 죽은 사람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불경을 독송했다. 1000장의 다다미가 깔린 저택은 경이로울 만큼 넓다. 경당 안에는 큰 주걱이 서 있는데, 그 옆에 서서 키를 재보니 주걱의 키가 두 배는 족히 돼 보인다. 주걱의 발상지답게 곳곳에 거대한 주걱이 세워져 있다. 경당 안에는 지붕을 지탱해주는 기둥이 숨바꼭질을 해도 좋을 만큼 많이 세워져 있다. 경당 밖으로 나가면 넓이만큼이나 긴 회랑이 있다. 회랑을 걸으면 미야지마의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넓은 경당은 수평적인 바다와 이어져 무한하다. 센조카쿠에서 나오면 건물 옆에 화려한 5층탑, 고주노토가 세워져 있다. 일본과 중국 당나라의 양식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붉은 탑이다. 1407년에 세워진 고주노토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화려하다. 이쓰쿠시마 신사와 도리이, 고주노토의 붉은색은 섬 안에 펼쳐진 모든 색깔 중에서 가장 깊이 있다. 이 붉은색이 미야지마를 또렷하게 설명한다.
고주노토는 언덕 위에 우뚝 솟아 있어 미야지마의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이쓰쿠시마 신사와 탑의 조화는 미야지마 풍경의 정수라 할 만하다.
미야지마의 고찰 다이쇼인
이쓰쿠시마 신사에서 다키노코지라 불리는 골목을 걷다 보면 그 끝에 미야지마 제일의 사찰, 다이쇼인이 나온다. 다이쇼인은 이쓰쿠시마 신사만큼 알려지지 않았지만 볼거리가 많다. 정식 명칭은 다키야마 스이쇼지 다이쇼인이다. 806년에 세워진 미야지마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다. 2006년에는 ‘14대 달라이 라마’가 방문하기도 했다.
미센산 기슭에 세워진 사찰을 보려면 촘촘한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계단 중턱에서 발길을 멈추고 돌아보면 미야지마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붉은 신사의 지붕을 건너면 푸른 바다가 있고, 바다를 건너면 또 다른 마을이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풍경은 아득하다.
풍경을 뒤로하고 사찰에 오르는 길 곳곳에 다양한 불상이 숨어 있다. 호빵맨, 울트라맨 같은 캐릭터 불상, 모자를 쓴 불상, 망토를 두르고 있는 불상 등 수많은 불상이 사찰을 지키고 있다. 많은 사찰을 다녔어도 이곳만큼 많은 불상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법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가운데 법문이 새겨진 원통 모양은 티베트의 마니차와 같다. 마니차는 원통형 모양에 반야심경이 새겨져 있다. 마니차를 한 번 돌릴 때마다 경전 한 권을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을 쌓는 것이라고 해 요란한 소리를 내는 원통을 돌리며 계단을 내려왔다.
주걱의 발상지답게 사찰 안 나무판에 소원을 빌어 걸어 놓는 것을 에마라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에마조차 나무주걱 모양이다.
사찰 아래 있는 오모테산도 상점가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주걱이 누워 있다. 수령이 270년이나 된 느티나무를 깎아 만든 길이 7.7m, 무게 2.5t의 거대한 주걱, ‘오샤쿠시’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주걱의 발상지 미야지마를 상징하기 위해 2년10개월에 걸쳐 제작했다고 한다.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미야지마에서 단풍 모양의 만주가 나오는 것은 당연할 터. 팥 앙금이 들어간 촉촉한 만주의 달콤함이 피로를 가시게 한다. 모미지 만주는 미야지마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매년 2월에는 굴 축제가 열릴 만큼 굴이 유명하다. 오모테산도 상점가에는 굴 요리를 파는 음식점이 많다. 상점 앞에서 거리를 바라보며 숯불 위에 직접 굴을 구워준다.
오후 8시가 넘으면 섬 밖으로 나가는 마지막 배가 뜬다. 급하게 떨어지는 해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바쁘게 한다. 해가 진 뒤 사람들이 빠져나간 섬은 고요하다. 상점에는 하나둘 불이 꺼진다. 그 많은 사람이 어디로 가버렸나 싶을 정도로 인적이 사라진 거리에는 외로운 사슴들만 어슬렁거린다. 바람 소리와 벌레 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까만 밤 조명이 켜진 도리이는 잠든 섬을 홀로 비춘다. 밤 11시가 되면 도리이를 비춘 불빛도 잠이 든다. 새벽 동틀 무렵, 신사의 지붕이 점점 밝아지고, 그 위로 푸른빛을 띤 구름이 넓게 퍼진다. 시간마다 다른 빛을 내는 섬.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볼 수 있었던 미야지마의 하룻밤. 잠시 스쳐간 사람들은 이 귀한 풍경을 알 리가 없다.
도심 속 작은 정원 슈케이엔과 원폭 돔
배를 타고 섬을 나와 히로시마 도심으로 향했다. 히로시마 도심의 작은 정원, 슈케이엔은 1620년 히로시마의 영주 아사노 나가아키라 별장의 정원으로 조성됐다. 강산의 풍경, 당시 수도였던 교토의 모습, 깊은 산의 정취를 표현했다. 중국 항저우 서호를 본떠 ‘슈케이엔’이라고 불린다. 가운데 연못을 두고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풍경을 감상하는 회유식 정원이다. 에도 시대에 유행했던 양식이다. 연못에는 작은 섬이 떠 있고 섬은 다리와 연결된다. 여러 개의 다리 중에서 붉은 아치교가 눈에 띈다. 슈케이엔은 1940년 국가명승지로 지정됐으나 원자폭탄 투하로 파괴됐다. 이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작은 정원이라 돌아보는 데 오래 걸리지 않지만 작은 곳에 광대한 것들을 담았다. 고층 빌딩이 연못에 비치는 풍경마저 미리 계획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스민다. 정원을 한 바퀴 돌아 나가는 길에 매화가 만발했다. 매화꽃 그늘 아래 서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봄처럼 화사하다.
히로시마에서 반드시 봐야 할 곳은 원폭 돔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인류가 만든 강력하고 파괴적인 무기가 떨어진 자리는 참혹했다. 14만 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건물은 모두 파괴됐다. 폭심지 인근에서 유일하게 남겨진 건물은 골조가 앙상하게 드러난 돔 모양의 건물이었다.
1910년 히로시마현의 산업을 장려하기 위해 모토야스 강 동쪽에 체코의 건축가 얀 렛트르가 설계한 상업전시관을 세웠다. 3층짜리 벽돌 건물에 구리로 덮인 철골 돔을 지붕으로 얹었다. 당시 물산장려관(상공회의소) 건물은 원자폭탄이 떨어져 지붕과 마루, 내벽이 무너지고 건물 중심부의 골조만 남게 되자 원폭 돔으로 불렸다. 원폭 돔은 원폭 투하 당시 파괴된 모습 그대로다. 세계 평화의 상징으로 1996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유네스코 선정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단서를 붙였다. ‘인간의 실수와 어리석음을 상징하는 히로시마 원폭 돔은 핵무기를 폐기하고 영원한 인류 평화를 추구한다는 서약의 상징입니다.’
전쟁의 참상을 고한다, 평화기념관
전쟁의 흔적을 따라가는 것은 참으로 복잡한 마음이 든다.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하고 세계 평화를 염원하는 취지를 담아 전쟁의 참상을 보존하고 전시하고 있지만 그 참혹함 앞에서는 어떤 말도 나오지 않는다.
원폭 돔에서 모토야스 다리를 건너면 평화기념공원이 나온다. 평화기념공원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원자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에 세계 평화를 기원하며 조성한 공원이다. 공원 내에는 평화기념 자료관을 비롯해 원폭 희생자 위령비, 원폭 어린이 상, 한국인 피폭자 위령비 등을 세워 원폭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
발길을 멈추게 했던 곳은 소녀가 두 팔을 들어 학을 받치고 있는 동상 앞이었다. 일본에서는 장수와 평화를 상징하는 종이학 1000마리를 접으면 병이 낫는다고 한다. 원폭 피해를 입은 소녀는 이런 이야기를 믿고 종이학을 접었다. 그러나 소녀는 종이학 1000마리를 다 접지 못하고 964마리의 종이학을 접은 뒤 사망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일본 각지의 어린이들이 종이학을 접어 보내기 시작했다. 지금도 여전히 공원에는 학이 배달된다.
공원 가운데 원폭 희생자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둥글게 솟은 아치형 위령비 사이로 강 건너 원폭 돔이 보인다. 위령비가 원폭 돔을 감싸고 있는 모습인데, 원폭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처럼 보인다. 입구에는 평화의 시계탑이 뒤틀린 모습으로 세워져 있다. 원폭이 투하된 시각인 오전 8시14분마다 시계탑의 종이 울린다.
공원 내에 지어진 평화기념 자료관을 찾았다. 자료관 안에는 원폭이 떨어졌을 때의 사진, 불에 그을린 채로 바늘이 8시14분에 멈춘 아날로그 시계, 불에 녹아버린 어린이 자전거, 피폭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사진 등 그날의 참상을 알리는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피폭된 수많은 사람은 평범한 시민이었다. 돌아보는 내내 저절로 숙연한 마음이 드는 것은 그런 이유였다. 그러나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 참상을 낱낱이 고하며 피해자가 된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것에 묘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여행메모
에어서울이 인천~히로시마 노선을 운항한다. 수요일과 금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운항하며 1시간20분 걸린다. 오코노미야키는 ‘좋아하는’의 오코노미와 ‘굽다’의 야키를 합성한 말이다. 좋아하는 재료를 선택해서 철판에 구워 먹는 요리다. 일본에는 오사카 스타일과 히로시마 스타일의 오코노미야키가 있다. 오사카는 밀가루 반죽에 양배추와 해산물 등을 섞어 우리나라의 빈대떡처럼 익히지만 히로시마는 얇게 핀 반죽 위에 양배추, 숙주, 소바, 돼지고기 등을 차례차례 얹어 익힌다. 모양과 맛에서 확실한 차이를 보이는 오사카 오코노미야키와 히로시마 오코노미야키는 자기들이 원조라고 자존심 대결을 벌인다. 우리나라에서 맛볼 수 있는 오코노미야키는 대부분 오사카 풍이라 오사카 스타일에 더 익숙하겠지만 히로시마 사람들에게 오사카 오코노미야키를 논하면 열변을 토한다. 그들에게 오코노미야키는 자부심이 대단한 음식이다. 히로시마에 오코노미야키 거리와 빌딩이 있을 정도다. 빌딩 전체가 오코노미야키만 판매한다.
히로시마=글·사진 이솔 여행작가 leesoltou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