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과 네온등의 마술… "인권 탄압의 아픈 기억, 빛으로 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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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미술가' 이반 나바로 갤러리 현대 개인전
칠레 독재정권 트라우마를
조명등과 거울 활용해
시청각 등 공감각으로 형상화
정치박해·고문·이주 등
시대상황을 희망으로 응축
근작 설치 작품 14점 출품
칠레 독재정권 트라우마를
조명등과 거울 활용해
시청각 등 공감각으로 형상화
정치박해·고문·이주 등
시대상황을 희망으로 응축
근작 설치 작품 14점 출품
‘조명등과 거울’은 칠레 출신 아티스트 이반 나바로(46)의 예술세계를 설명해주는 키워드다. 1972년 칠레 산티아고에서 태어난 그는 이듬해 쿠데타로 집권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군사독재 정권 아래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야간 통금과 정전으로 시민들을 통제하던 당시, 자유를 갈망하는 시대를 살며 그는 자연스레 민주주의와 역사의 의미를 고민했다.
1997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 뉴욕을 거점으로 활동하던 그는 차이나타운을 걷다가 건물 벽에 매달린 별 모양의 램프에서 별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을 보고 ‘아, 이거다’ 싶었다. 그때부터 거울과 조명, 네온, 백열등을 작품 소재로 활용해 피노체트 정권의 어두운 기억을 빛으로 은유하기 시작했다.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 칠레관 대표작가로 참가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그는 빌바오구겐하임미술과 뉴욕구겐하임미술관을 비롯해 런던 헤이워드갤러리, 워싱턴 허시혼미술관에 잇달아 초대되며 ‘네온 아트의 선구자’로 평가받았다.
‘빛의 미술가’로 불리는 나바로가 지난 20일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개인전을 시작했다. ‘물 속에 비친 달(The Moon in the Water)’을 주제로 4년 만에 여는 이번 전시에는 거울과 조명을 활용해 분열된 건축적 구조를 끊임없이 반복시켜 무한한 공간의 환영을 만들어낸 작품, 시각과 청각을 자극해 사회정치적 비판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 등 최근작 14점을 선보인다. 실험적 현대미술을 탐미한 네온아트 1세대의 조형미를 감상할 수 있다.
22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이번 작품들은 그동안 나 자신이 경험하고 추구한 것 중 하나하나의 에센스들을 담아 표현하려고 했던 것”이라면서도 “관람객들이 이를 이해하기보다는 경험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공감각적인 요소에 집중한 작품들은 ‘절망과 희망’ ‘추락과 비상’ 등을 상징하며 민주주의와 사회구조, 언어가 어떻게 자유와 억압을 만들어내는지를 묻는다.
전시장 지하 1층에 설치된 다양한 크기와 형태를 가진 드럼에 조명과 거울을 결합한 작품은 언어의 모호함과 음악이 지닌 사회적 권력을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드럼은 소리를 내지 않지만 빛과 반사 거울을 이용해 BOMB(폭탄), BEAT(통제) 등 단어들을 무한하게 반복시키며 전쟁과 침략, 저항에 대한 메타포를 끊임없이 던진다.
작가는 드럼을 선택한 이유로 “북이나 드럼은 군대 행진곡 연주에서 많이 쓰인다”며 “군사독재 체제에서 자라났기에 그런 비트를 이용한 음악에 익숙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사각 상자 형태의 또 다른 작품 ‘다음 전쟁은 어디서(Where is The Next War)’는 통제의 수단이 됐던 빛을 역으로 자유와 희망으로 은유한 대표작이다. 옵아트의 대가인 요제프 알베르스의 ‘정사각형에 바치는 경의(Homage to the Square)’에서 영감을 받았다. 무한적으로 증가하는 정사각형들은 깜빡거리며 다양한 문장을 쏟아낸다. 언어는 빛이 가득한 양심이자, 겉모습과 진실 사이의 슬픈 기억들의 틈 같은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미국 조각가 토니 스미스의 작품 ‘죽음’에서 영감을 받은 ‘다이 어게인(Die Again)’, 원과 삼각형 등 기하학적 형태로 제작한 신작 ‘허영(Vanity)’ 등도 피노체트 독재 아래에서 겪었던 심적 트라우마를 이야기 그림처럼 보여준다.
작가는 “칠레 독재 시절 고문과 인권 침해, 사형, 이주 등 사회정치적 상황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이런 관심은 최근 언어와 사회의 상호관계, 커뮤니케이션 등 사회 이슈로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6월3일까지. (02)2287-350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빛의 미술가’로 불리는 나바로가 지난 20일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개인전을 시작했다. ‘물 속에 비친 달(The Moon in the Water)’을 주제로 4년 만에 여는 이번 전시에는 거울과 조명을 활용해 분열된 건축적 구조를 끊임없이 반복시켜 무한한 공간의 환영을 만들어낸 작품, 시각과 청각을 자극해 사회정치적 비판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 등 최근작 14점을 선보인다. 실험적 현대미술을 탐미한 네온아트 1세대의 조형미를 감상할 수 있다.
22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이번 작품들은 그동안 나 자신이 경험하고 추구한 것 중 하나하나의 에센스들을 담아 표현하려고 했던 것”이라면서도 “관람객들이 이를 이해하기보다는 경험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공감각적인 요소에 집중한 작품들은 ‘절망과 희망’ ‘추락과 비상’ 등을 상징하며 민주주의와 사회구조, 언어가 어떻게 자유와 억압을 만들어내는지를 묻는다.
전시장 지하 1층에 설치된 다양한 크기와 형태를 가진 드럼에 조명과 거울을 결합한 작품은 언어의 모호함과 음악이 지닌 사회적 권력을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드럼은 소리를 내지 않지만 빛과 반사 거울을 이용해 BOMB(폭탄), BEAT(통제) 등 단어들을 무한하게 반복시키며 전쟁과 침략, 저항에 대한 메타포를 끊임없이 던진다.
작가는 드럼을 선택한 이유로 “북이나 드럼은 군대 행진곡 연주에서 많이 쓰인다”며 “군사독재 체제에서 자라났기에 그런 비트를 이용한 음악에 익숙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사각 상자 형태의 또 다른 작품 ‘다음 전쟁은 어디서(Where is The Next War)’는 통제의 수단이 됐던 빛을 역으로 자유와 희망으로 은유한 대표작이다. 옵아트의 대가인 요제프 알베르스의 ‘정사각형에 바치는 경의(Homage to the Square)’에서 영감을 받았다. 무한적으로 증가하는 정사각형들은 깜빡거리며 다양한 문장을 쏟아낸다. 언어는 빛이 가득한 양심이자, 겉모습과 진실 사이의 슬픈 기억들의 틈 같은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미국 조각가 토니 스미스의 작품 ‘죽음’에서 영감을 받은 ‘다이 어게인(Die Again)’, 원과 삼각형 등 기하학적 형태로 제작한 신작 ‘허영(Vanity)’ 등도 피노체트 독재 아래에서 겪었던 심적 트라우마를 이야기 그림처럼 보여준다.
작가는 “칠레 독재 시절 고문과 인권 침해, 사형, 이주 등 사회정치적 상황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이런 관심은 최근 언어와 사회의 상호관계, 커뮤니케이션 등 사회 이슈로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6월3일까지. (02)2287-350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