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뱅커의 무한도전
‘은행원’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 ‘꼼꼼하고 믿음직하다’, ‘융통성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아직도 많을 것 같다. 필자가 입사한 1980년대 중반에는 돈 잘 세고 주판을 능숙하게 놓는 사람이 인정받았다. 은행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완벽한 일 처리를 강조하고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보수적인 직장이었다.

시대가 변하면서 ‘완벽함’이라는 은행원의 미덕도 바뀌고 있다. 사람이 아무리 꼼꼼하게 업무를 처리한다고 해도 기계를 이길 수 없다. 정확성이 필요한 일들은 대부분 기계가 대신하고 있고, 통장 없는 계좌나 종이 없는 계약서도 보편화하는 추세다.

과거의 은행업은 다른 은행만을 경쟁자로 생각했기 때문에 상대방이 어떤 전략을 세울지 잘 예측하고 대응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전문은행, 핀테크업체, 전자상거래기업 등이 속도를 앞세워 금융업무를 취급하면서 은행과 충돌하고 있다. 이제 은행은 확대되고 있는 경쟁환경에 빠르게 대응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속자생존(速子生存)’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리타 맥그래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그의 저서 《경쟁우위의 종말》에서 “오늘날 시장에서는 빠르고 대략 옳은 결정이 정교하지만 느린 의사결정을 이긴다”고 말했다.

필자도 직원들이 수십 쪽의 보고서를 들고 오는 순간이 가장 두렵다. 완벽하게 검토하고 작성하려다 보니 분량이 많아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중요한 의사결정을 위한 타이밍을 놓칠 수도 있다. 핵심 내용 한두 장으로 서로 방향을 논의하고, 도중에 잘못됐다고 판단되면 다시 그 방향에 맞춰 구체적으로 전략을 설계하는 것이 지금 시대에 더 맞는 방법이다.

지나친 안정성과 완벽함은 오래된 관성으로 이어져 오히려 조직의 역동성을 방해한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불안감은 누구에게나 있다. 실패할 가능성이 높더라도 도전하는 과정을 격려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도전하지 않는 것이다.

은행은 지금 변신 중이다. 필자는 ‘은행이 이런 것도 하나?’라고 생각할 만큼 색다른 시도를 많이 해보고 싶다. 얼마 전 무모한 도전을 통해 국민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었던 TV 프로그램 ‘무한도전’은 막을 내렸지만 ‘뱅커(banker)의 무한도전’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