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고통의 역사 유머 버무려 풀어내
지난해 맨부커 인터내셔널 수상작인 《말 한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문학동네)가 국내 번역 출간됐다.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 콩쿠르상 등과 함께 3대 문학상 중 하나로 권위를 인정받는 세계적인 문학상이다.

저자는 이스라엘 현대 문학의 거장 다비드 그로스만(사진). 《땅끝에서》 《시간 밖으로》 등을 통해 이미 노벨문학상 후보에 여러 차례 오른 그로스만은 이번 작품에서 대담한 시도를 했다. 설정이 특이하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주인공 도발레의 쇼가 시작하면서 소설도 시작되고, 공연이 끝나면서 소설도 끝난다. 마치 두 시간짜리 쇼의 녹취록 같다.

저자는 도발레라는 한 인간의 일생을 통해 유대인의 고통스러운 역사, 역사로 인해 고통받은 개인의 비극, 이스라엘 현실에 대한 풍자를 함께 버무려 인생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유대인 고통의 역사 유머 버무려 풀어내
도발레의 쇼가 열리는 곳은 이스라엘 도시 네타니아의 작은 클럽. 쉰일곱 살 생일이 되던 날 주인공 도발레는 무대 위에 오른다. 관객 사이에 앉아있는 건 어린시절 도발레와 잠시 우정을 나눴던 전직 판사 아비샤이. 소설의 화자다. 수십 년간 연락이 없던 도발레의 “내 공연을 봐주고 본 것에 대해 말해달라. 이런 부탁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전화를 받고 공연장을 찾았다.

키 158㎝에 야윈 도발레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내면서 쇼를 이끌어간다. 그는 폭력적인 아버지와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뒤 우울증과 자살 충동에 시달렸던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한다. 왜소한 체구 때문에 어렸을 적 친구 사이에서 심한 괴롭힘을 받았던 기억도 꺼낸다.

“당신들은 이해했지-나에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그래도 나는 당신들한테 다른 누구에게도 준 적 없는 걸 줄 거야. 더럽혀지지 않은 거. 인생 이야기. 그래, 그게 가장 훌륭한 이야기지.”(99쪽)

아비샤이가 느끼는 일말의 죄책감은 도발레가 가진 상처에 대한 공감으로 이어진다. 조그마한 클럽에서 깊이 있는 인생 이야기를 펼친, 정교하면서도 능수능란한 저자의 필력에 감탄하게 되는 소설이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