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희 인벤티지랩 대표 "생화학에 기계공학 접목…약효 지속시간 크게 늘렸다"
"발상의 전환 덕에 대량생산이 가능했죠. 제약회사는 보통 생화학이나 화학적 연구만 하는데 저희 회사는 기계공학을 접목해 새로운 제조 방법을 만들었거든요."

김주희 인벤티지랩 대표(사진)는 마이크로스피어 대량생산 기술 'IVL-PPFM'을 만든 비결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마이크로스피어는 생분해성 고분자로 만들어진 초소형 구(球)를 일컫는 말로 일반적으로 지름이 100㎛ 이하(1㎛=0.001㎜)다. 이 안에 약물을 넣고 정해진 시간 동안 서서히 밖으로 흘러나오도록 할 수 있다. 약물이 든 마이크로스피어를 몸 속에 넣어두면 투약을 자주 하지 않아도 오랜 기간 약효를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이 기술과 관련해 현재 국내외에서 1개의 특허를 등록했고 11개를 출원한 상태"라며 "양질의 마이크로스피어를 대량 생산하는 건 세계적으로 선례를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1996년 경북대 생화학과(학사), 2005년 한양대 의대 대학원(석사)을 졸업한 뒤 광동제약, 씨젠 등에서 일했다. 2015년 인벤티지랩을 창업했다. '장기지속형 약물전달기술(DDS)'을 발전시켜 잦은 투약의 번거로움을 해결하는 혁신적 의료 서비스를 만드는 게 목표였다. 기존에도 효과가 수개월 이상 지속되는 약은 있었지만 특정 분야에 국한되거나 양산이 안 돼 가격이 비쌌다.

김 대표는 "처음에는 다른 제약회사처럼 화학적 연구만 했는데 금방 난관에 부딪쳤다"며 "유체의 흐름을 제어하는 기계공학적 기술을 활용하자 양질의 마이크로스피어를 대량생산하는 게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이 기술력 덕분에 지금까지 45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마이크로스피어는 '서방형(徐放形·서서히 방출된다는 뜻) 기술'의 일종이다. 주사제에 적용할 수 있는 서방형 기술이 기존에도 있긴 했다. 그러나 다른 기술은 주사제 성분 자체를 변형시켜야 하기 때문에 이 형태의 약을 개발하는데 신약 개발 수준의 리스크가 따랐다. 개발에 성공할 가능성이 낮았다는 얘기다.

마이크로스피어 기술은 기존 성분을 그대로 두고 그 주위를 막으로 둘러싸는 것이기 때문에 개발하기가 그만큼 쉽다. 쓰던 원료물질을 그대로 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김 대표는 "약효 지속 기간도 기존 기술에 비해 더 길다"고 말했다.

인벤티지랩은 이 기술을 적용한 미용 시술용 필러(특정 신체 부위에 주입해 볼륨감을 주는 물질) 'IVL-MD-F001'를 개발 중이다. 안에 어떤 약물을 넣는지에 따라 마이크로스피어를 만드는 방법이 달라진다. 이 때문에 필러용 마이크로스피어를 따로 개발해야 한다. 일단 개발되면 IVL-PPFM로 대량생산할 수 있다.

김 대표는 "현재 가장 널리 활용되는 히알루론산 필러는 3~6개월 뒤 인체에 흡수돼 볼륨감이 사라지기 때문에 이후 재시술을 받아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며 "필러를 마이크로스피어 안에 넣어 흡수 시기를 2년으로 늦춘 상품을 내년께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벤티지랩은 지난 2월 식품의약안전처에서 이 필러에 대한 임상시험 계획을 승인받았다.

인벤티지랩은 앞서 해당 기술을 적용한 반려동물 심장사상충 약 'IVL-VP-PH001'을 개발했다. 이에 대해 국내 시판 허가 절차를 진행중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의 난치성·만성 질환 의약품에 이 기술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들 질환을 가진 환자는 잦은 투약으로 고통을 겪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당뇨병 환자는 혈당 조절을 위해 하루에도 수차례 배에 스스로 주사를 놔야 한다.

김 대표는 "IVL-PPFM를 활용해 약을 마이크로스피어 안에 넣으면 투약 주기를 기존보다 훨씬 길게 할 수 있다"며 "치매 노인 같이 잦은 투약을 해야하는 환자가 이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