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근 전 검사장(사진=연합뉴스)
안태근 전 검사장(사진=연합뉴스)
안태근 전 검사장이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한 게 사실이라는 검찰의 수사 결과가 나왔다. 성추행 의혹 확산을 막고자 서 검사에게 인사보복을 가했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전 사회적으로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을 촉발한 이번 사건이 성범죄 가해자인 상급자가 피해자에게 인사상 불이익 등 '2차 피해'를 가하는 전형적인 권력형 비위라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검찰 성추행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은 26일 오전 서울동부지검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직무권한(직권)을 남용해 서 검사의 인사에 부당 개입한 혐의로 안 전 검사장을 불구속 기소하는 등 전·현직 검찰 관계자 7명을 재판에 넘겼다고 밝혔다.

조사단은 우선 "안 전 검사장의 성추행 의혹이 사실"이라고 파악했다. 다만 고소 기간이 지나 입건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조사단은 대신 성추행 피해자에게 오히려 인사보복을 한 정황이 규명됐다며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했다.

조사단 관계자는 "2010년도 성추행 사건 발생 후 5년이 지났지만, 성추행 사실이 조직 내에서 확인되는 것을 은폐하려는 과정에서 부당인사에 대한 지시를 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설명했다.

성추행 의혹 소문이 검찰 내에 돌자 안 전 검사장이 피해자인 서검사를 검찰 조직에서 내쫓기 위해 당시 인사담당 검사들이 기존 인사기준에 반하는 인사안을 만들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수사과정에서 안 전 검사장이 부당인사 지시를 했다는 구체적 진술은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기존 인사기준에서 이례적으로 벗어난 인사가 이뤄졌고, 이를 안 전 검사장이 지시한 점을 입증할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조사단은 경력 10년 이상인 검사를 지방검찰청 산하 지청에 발령한 것은 서 검사 사례가 유일하다는 사실도 파악했다고 밝혔다.

안 전 검사장 외에도 성추행 혐의를 받는 검사 출신 대기업 전직 임원 진모씨, 전직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 현직 검찰 수사관 3명이 불구속 기소됐다. 또 강제추행 혐의를 받은 김모 부장검사는 이미 구속기소 돼 11일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아울러 조사단은 서 검사의 인사자료를 법무부 밖으로 빼돌리고 내용을 누설한 것으로 조사된 현직 부장검사와 검사 등 2명을 징계할 것을 대검에 건의했다.

다만 SNS상에 서 검사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을 올린 의혹을 받는 현직 부장검사는 증거불충분으로 입건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당시 이 부장검사는 SNS에 서 검사를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곧바로 삭제했다.

지난 1월31일 공식 활동에 들어간 조사단은 전·현직 검찰 관계자 7명을 기소하고 현직 검사 2명의 징계를 건의하는 것을 끝으로 3개월 가까운 활동을 마치고 해단 수순을 밟는다.

조사단은 성범죄 수사 외에도 성비위 관련 제도 개선책도 건의했다.

조사단은 성범죄 피해자의 진술권과 2차 피해 방지 의무 규정을 두는 등 대검의 성희롱·성폭력 예방지침을 개정하고 검찰 공무원의 성 비위 사건에서 입건 기준을 마련할 것 등을 대책으로 내놨다.

검사 인사에서 구체적 기준이 비공개돼 있고 평가를 받는 검사에게도 이를 알려주지 않은 채 인사가 이뤄지는 점을 개선하기 위해 검사들과 인사 관련 의견을 소통할 수 있도록 제도를 수립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제도 개선 업무는 신설된 대검 '성 평등·인권담당관'인 유현정 부장검사가 맡는다.

조사단은 검찰 내 성범죄만을 규명 대상으로 삼았지만, 국민적 관심을 끌며 활동을 이어 왔다. 출범 계기가 된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피해 폭로는 사회 전반으로 확산한 '미투' 운동을 촉발한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