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일쌤의 서양철학 여행] (39) 칸트의 철학(상) - 칸트의 인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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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모두가 경험에서 나오지는 않는다"는 칸트 철학
"인간은 감성과 오성을 통해 인식한다"고 주장했죠
"인간은 감성과 오성을 통해 인식한다"고 주장했죠
아리스토텔레스나 루소와 같이 유명한 철학자들이 산책을 즐긴 것을 보면 산책은 사 색하는 데 좋은 기회와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 같다. 칸트 또한 매일 일정한 시간에 쾨 니히스베르크 철학자의 길을 따라 산책을 하였는데, 그것이 너무 규칙적이어서 사람 들이 그를 보고 시계를 맞추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와 같은 산책을 통하여 칸트 는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발전시켰을 것이다.
사색을 즐겼던 칸트
칸트 이전에 대부분 사람들은 우리의 감각과 이성이 우리들에게 우리 밖에 있는 세계에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고 가정하였다. 전자는 경험론자이고 후자는 합리론자이다. 이런 관점에서 사람들은 이성과 과학의 도구를 사용해서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순수이성비판》이라는 책에서, 칸트는 이런 가정들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칸트의 말을 들어보자. 인간이 알 수 있는 데는 많은 한계와 제한이 있다. 우리가 이성을 사용해서 이성의 한계점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성이 어떤 주장들을 판결할 수 있는가를 조사하지 않고 이성에 근거해서 주장하는 것이 매우 독단적이다. 합리적이기 위해서, 이성은 그 자신의 영역을 검사해야 한다. 칸트는 인식 내용의 참과 거짓을 문제 삼기에 앞서 자신의 인식 능력 자체, 즉 이성을 비판적으로 검토해보고자 한 것이다. 이는 예컨대 한 사람이 안경을 끼고 주변을 살펴보면서 자신에게 보여진 것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다가 문득 자신이 안경을 끼고 있음을 의식하고서 안경을 주제로 그 안경 자체를 탐구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인간의 타고난 정신형식
《순수이성비판》에서 칸트가 어떻게 하면 인간이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이 보편성과 필연성을 갖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모든 지식은 경험과 함께 출발하지만, 지식 모두가 경험에서 나오지는 않는다”라는 주장은 칸트 철학의 출발점이자 과제를 명확히 밝혀준다. 이를 위해 칸트는 합리론과 경험론에 대한 비판에서 자신의 인식론적 논의를 시작한다. 칸트는 합리론과 경험론이 공통적으로 범하는 인식론적 오류를 발견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이제까지 사람들은 우리의 인식이 대상과 일치해야 한다고 가정했다. 그러나 우리의 지식 범위를 넓히려는 모든 시도가 도리어 이 가정으로 인해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니 이제 대상들이 우리의 인식과 일치해야 한다고 가정해 보자.”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사물에 대한 인식이 그 사물을 따라가야 한다고 가정했다. 그런데 칸트는 이런 가정을 뒤집어 보기를 요청한다. 가령 호두과자 굽는 것을 보자. 호두과자 장수는 준비해온 반죽을 호두과자 틀에 넣고 열을 가한 후 빼내면, 반죽은 호두과자로 변신해 나온다. 아무런 형체가 없던 반죽이 호두과자의 모습이 되는 이유는 호두과자 틀 때문이다.
《순수이성비판》에서 칸트는 인간의 인식을 감성과 오성이라는 두 개념으로 설명한다. 감성이란 우리의 정신이 감각을 통해서 대상들을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오성이란 감성을 통해 받아들인 내용들을 정리하여 개념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다. 감성과 오성은 경험에 의하여 후천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고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능력이며 감성과 오성은 각각 고유의 형식을 가지고 있으며, 칸트는 이것들을 선천적으로 타고난 정신의 형식이라는 뜻으로 ‘본유형식’이라고 불렀다.
감성과 오성이 손잡고 대상을 인식
칸트에 의하면 감성과 오성, 이 두 정신이 손을 잡음으로써 인간은 대상을 인식한다. 우선 감성이 감각기관에 의한 경험을 통해 대상을 받아들인다. 그 다음 받아들인 내용에 오성이 사고를 통해 개념을 적용시킨다. 칸트는 감성이 없으면 어떠한 대상도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이며, 오성이 없으면 어떠한 대상도 사유되지 않을 것이다. 이를 일컬어 칸트는 “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이다”라는 명언을 했는데 이 말은 경험이 없는 사고는 텅 비었고, 사고 없는 경험은 눈멀었다는 뜻이다. 칸트는 인식론에서 인간을 주체로 만들었다. 인간 바깥의 도움 없이 인간 안에서 인식주체를 구했다는 점에서 칸트의 시도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고 할만하다. 신의 절대적 영역을 규명하려는 노력에 대하여 이성의 한계를 그은 사람이 칸트였다. 이로써 칸트의 철학은 절대적인 진리를 구할 수 없다는 회의에서 벗어나는 하나의 기점이 되었다.
◆기억해주세요
칸트는 인식론에서 인간을 주체 로 만들었다. 인간 바깥의 도움 없이 인간 안에서 인식 주체를 구했다는 점에서 칸트의 시도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고 할 만하다.
김홍일 < 서울과학고 교사 >
사색을 즐겼던 칸트
칸트 이전에 대부분 사람들은 우리의 감각과 이성이 우리들에게 우리 밖에 있는 세계에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고 가정하였다. 전자는 경험론자이고 후자는 합리론자이다. 이런 관점에서 사람들은 이성과 과학의 도구를 사용해서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순수이성비판》이라는 책에서, 칸트는 이런 가정들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칸트의 말을 들어보자. 인간이 알 수 있는 데는 많은 한계와 제한이 있다. 우리가 이성을 사용해서 이성의 한계점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성이 어떤 주장들을 판결할 수 있는가를 조사하지 않고 이성에 근거해서 주장하는 것이 매우 독단적이다. 합리적이기 위해서, 이성은 그 자신의 영역을 검사해야 한다. 칸트는 인식 내용의 참과 거짓을 문제 삼기에 앞서 자신의 인식 능력 자체, 즉 이성을 비판적으로 검토해보고자 한 것이다. 이는 예컨대 한 사람이 안경을 끼고 주변을 살펴보면서 자신에게 보여진 것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다가 문득 자신이 안경을 끼고 있음을 의식하고서 안경을 주제로 그 안경 자체를 탐구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인간의 타고난 정신형식
《순수이성비판》에서 칸트가 어떻게 하면 인간이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이 보편성과 필연성을 갖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모든 지식은 경험과 함께 출발하지만, 지식 모두가 경험에서 나오지는 않는다”라는 주장은 칸트 철학의 출발점이자 과제를 명확히 밝혀준다. 이를 위해 칸트는 합리론과 경험론에 대한 비판에서 자신의 인식론적 논의를 시작한다. 칸트는 합리론과 경험론이 공통적으로 범하는 인식론적 오류를 발견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이제까지 사람들은 우리의 인식이 대상과 일치해야 한다고 가정했다. 그러나 우리의 지식 범위를 넓히려는 모든 시도가 도리어 이 가정으로 인해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니 이제 대상들이 우리의 인식과 일치해야 한다고 가정해 보자.”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사물에 대한 인식이 그 사물을 따라가야 한다고 가정했다. 그런데 칸트는 이런 가정을 뒤집어 보기를 요청한다. 가령 호두과자 굽는 것을 보자. 호두과자 장수는 준비해온 반죽을 호두과자 틀에 넣고 열을 가한 후 빼내면, 반죽은 호두과자로 변신해 나온다. 아무런 형체가 없던 반죽이 호두과자의 모습이 되는 이유는 호두과자 틀 때문이다.
《순수이성비판》에서 칸트는 인간의 인식을 감성과 오성이라는 두 개념으로 설명한다. 감성이란 우리의 정신이 감각을 통해서 대상들을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오성이란 감성을 통해 받아들인 내용들을 정리하여 개념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다. 감성과 오성은 경험에 의하여 후천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고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능력이며 감성과 오성은 각각 고유의 형식을 가지고 있으며, 칸트는 이것들을 선천적으로 타고난 정신의 형식이라는 뜻으로 ‘본유형식’이라고 불렀다.
감성과 오성이 손잡고 대상을 인식
칸트에 의하면 감성과 오성, 이 두 정신이 손을 잡음으로써 인간은 대상을 인식한다. 우선 감성이 감각기관에 의한 경험을 통해 대상을 받아들인다. 그 다음 받아들인 내용에 오성이 사고를 통해 개념을 적용시킨다. 칸트는 감성이 없으면 어떠한 대상도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이며, 오성이 없으면 어떠한 대상도 사유되지 않을 것이다. 이를 일컬어 칸트는 “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이다”라는 명언을 했는데 이 말은 경험이 없는 사고는 텅 비었고, 사고 없는 경험은 눈멀었다는 뜻이다. 칸트는 인식론에서 인간을 주체로 만들었다. 인간 바깥의 도움 없이 인간 안에서 인식주체를 구했다는 점에서 칸트의 시도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고 할만하다. 신의 절대적 영역을 규명하려는 노력에 대하여 이성의 한계를 그은 사람이 칸트였다. 이로써 칸트의 철학은 절대적인 진리를 구할 수 없다는 회의에서 벗어나는 하나의 기점이 되었다.
◆기억해주세요
칸트는 인식론에서 인간을 주체 로 만들었다. 인간 바깥의 도움 없이 인간 안에서 인식 주체를 구했다는 점에서 칸트의 시도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고 할 만하다.
김홍일 < 서울과학고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