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정상회담 준비를 주도할 ‘키맨’인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내정자의 인준안이 26일(현지시간) 미 상원을 통과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곧바로 취임해 업무를 시작하면서 북한 비핵화를 위한 ‘세기의 담판’이 될 북·미 정상회담 준비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3월31일~4월1일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방북해 김정일 북한 국무위원장과 면담한 만큼 비핵화 등 회담 의제에 대해서도 큰 틀에서 공감대가 있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이날 상원 본회의에서 찬성 57표, 반대 42표로 인준을 받자 곧바로 대법원에서 취임 선서를 한 뒤 유럽·중동 4개국 출장길에 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성명을 내고 “폼페이오 장관의 엄청난 재능과 에너지, 그리고 국무부를 이끄는 지성은 역사적으로 이런 결정적인 시기에 우리에게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이런 결정적인 시기’는 남북한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등 동북아 정치 지형도를 바꿀 중차대한 외교 일정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됐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낸 폼페이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불린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거의 매일 40분씩 보고하며 신임을 쌓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을 결정한 뒤 “나와 사이클이 완벽하게 맞는다”며 폼페이오를 국무장관으로 기용했다.

미 언론들은 폼페이오 장관의 당면 현안을 다음달 12일로 다가온 이란 핵합의 파기 여부 결정과 6월 중순 전에 열릴 예정인 북·미 정상회담 준비라고 지적했다. 워싱턴 소식통은 “북한과 미국 실무자들이 제3국에서 상시 접촉하며 준비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 폭스TV의 뉴스 프로그램인 폭스앤드프렌즈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정상회담 실무가 상당 수준으로 진전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는 “무엇보다 우리는 북한과 매우 잘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중단 및 핵실험장 폐기 발표와 관련해서는 “내가 요구하기도 전에 북한이 핵실험과 연구를 포기했다”며 “우리는 (풍계리 외) 다른 핵시설도 닫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 협상에서 미국이 양보를 많이 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그 반대이며 나는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나는 정중하게 빨리 (북·미 정상회담장을) 걸어 나올 수도 있고, 회담은 아예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 누가 알겠나”고 말했다. 핵무기 폐기라는 비핵화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회담 자체가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 의미를 묻는 질문에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를 모두 없애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도 “나는 지금 여러분에게 그들이 만나고 싶어한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폼페이오 장관을 통해 지난 부활절 때 미국 정부의 의중을 전했고,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답변을 들었다는 추정이 가능한 대목이다.

외신들은 미국 정부가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우위를 차지할 수 있도록 김정은의 프로필을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은둔의 북한 지도자를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폼페이오 장관이 방북했을 때 김정은과 면담한 뒷얘기도 이날 일부 공개했다. 그는 “폼페이오 장관이 방북했을 때만 해도 김정은과의 면담이 따로 잡혀 있지 않았으나 갑자기 ‘인사 차원’에서 일정이 잡혔고 1시간 동안 둘은 훌륭한 만남을 가졌다”고 전했다. 그는 “두 사람 간 대화 내용이 인사 차원을 넘어섰다”고 말해 회담 준비와 관련해 상당한 토의가 있었음을 시사했다. 미 행정부는 폼페이오 장관이 복귀한 뒤 “북측으로부터 직접 비핵화 의지를 전달받은 바 있다”고 확인했다.

로이터통신은 폼페이오 장관이 김정은을 만나고 난 뒤 “김정은은 정상회담을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하는 똑똑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