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선진국에서는 기자회견과 집회·시위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있다. 대신 국회나 법원 등 주요 국가기관 청사 주변이라도 사전에 신고된 평화 집회에 대해서는 폭넓게 허용하는 편이다.

미국은 형사법에서 백악관 국회의사당 대법원 등 공공기관 주변 50~500피트(약 15~150m) 이내 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거의 사문화됐다. 백악관 앞에서는 한 해 평균 1000~1500건의 집회·시위가 열리고 있다. 사전 신고가 없는 무허가 집회라고 해도 시위가 과격하게 흐를 우려가 없다면 강제 해산하지 않는다. 국회의사당 인근에서도 피케팅이나 행진 등을 하는 행위가 법적으로 금지돼 있지만 질서 유지의 책임자가 있고 상·하원의장이 의사당을 훼손하지 않도록 할 적절한 수단이 마련됐다고 판단하면 허용하기도 한다. 다만 불법 집회 전력이 있는 단체의 집회는 불허하고 집회가 폭력적으로 변질되면 최대 징역 15년까지 실형을 선고하는 등 엄벌에 처한다.

독일 역시 미국과 마찬가지로 법률로는 원칙적으로 연방의회와 연방헌법재판소 주변에서 집회를 금지하고 있다. 의회, 헌법재판소의 주변 도로나 광장 등 이름을 구체적으로 명시해놨다. 하지만 각 기관의 업무활동, 자유로운 출입이 방해될 우려가 없다면 집회나 행진을 허가한다. 영국은 의회의 회기 중에만 국회의사당 주변 1마일 이내에서 50명 이상의 집회를 금지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법률로 국회의사당과 각 정당의 당사 및 외국공관 주변 지역에서 확성기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사전 신고만 하면 차량 통행을 방해하지 않는 한 집회·시위 장소에 대한 별도 규제가 없다. 자유민주당은 2014년 집회·시위를 규제하는 법안을 만들려고 했지만 야당의 반발로 무산됐다.

국내에서도 청와대 등 특정 장소에 대해 집회·시위를 아예 금지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11조를 개정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6년 주요 기관의 반경 30m 이내에서 원칙적으로 집회를 할 수 없도록 하되, 명백한 위험이 없을 경우 허용하는 집시법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은 모든 주요 기관에 담장이 있는 만큼 건물 훼손을 방지하는 목적의 거리 제한을 둘 필요성이 낮다”며 “전면적인 허용은 어렵더라도 폭력성과 위해성이 없다면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게 타당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