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의뢰 유전자검사(DTC)’를 하는 기관을 전문성에 따라 3등급으로 나눠 인증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이 방안에 따르면 가장 높은 1등급 인증을 받은 업체만 암 치매 등 중대 질환과 관련된 DTC 서비스를 할 수 있다. 유전자 검사 업계가 “DTC 가능 범위를 미용에서 중대 질환으로 확대해달라”고 요구하는 가운데 정부와 의료계가 인증제 도입을 범위 확대의 전제 조건으로 추진하고 있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DTC 기관 1~3등급 차등 인증 추진

30일 서울 수하동 페럼타워에서 열린 ‘DTC 유전자 검사 제도개선 공청회’에서 이같은 내용을 담은 DTC 검사기관 인증제 도입 방안이 발표됐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1월부터 최근까지 운영한 ‘DTC 유전자검사 제도개선 민관협의체’의 논의 결과다. 이 방안에 따르면 현행 DTC 검사 항목은 별도의 인증절차 없이 기관이 신고만 하면 검사가 가능한 현행 방식을 유지한다. 현재 국내에서는 탈모 피부 등 미용과 관계 깊은 12개 항목에 대한 46개 유전자만 DTC 검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민관협의체는 이 검사만 할 수 있는 기관을 ‘3등급’으로 분류하기로 했다.

보다 까다로운 ‘2등급’ 인증을 통과한 기관은 폭넓은 웰니스(신체·정신·사회적으로 건강한 상태) 검사를 할 수 있다. 어떤 종류의 웰니스 검사를 허용할지는 복지부가 의견 수렴을 거쳐 고시를 통해 지정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미정이지만 3등급이 하지 못하는 흡연, 음주, 수면, 스트레스, 운동능력 등에 대한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검사 가능 항목에는 ‘포지티브 방식’(특정 항목만 허용)을 적용하지만 이를 위해 어떤 유전자를 검사할지는 기관이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네거티브 방식’(특정 항목만 빼고 다 허용)을 적용한다.

◆중대 질환은 1등급 기관만 검사 가능

중대 질환에 대한 DTC는 ‘1등급’ 인증을 받은 기관만 할 수 있다. 검사 허용 질환으로는 유전자의 영향이 크고 유전자와 질환 간 인과관계가 비교적 많이 규명된 암, 치매, 파킨슨병, 유전성 희귀질환 등이 주로 거론되고 있다. 폭력성, 우울증 등 사회적 차별이나 특혜의 근거가 될 가능성이 높은 항목은 금지될 가능성이 높다. 구체적인 내용은 2등급과 마찬가지로 의견수렴을 거쳐 복지부가 고시로 정한다. 검사 항목에는 포지티브 방식을, 검사 가능 유전자에는 네거티브 방식을 적용하는 ‘혼합 규제’를 하는 것도 2등급과 같다.

1~2등급 인증을 받기 위한 구체적인 조건은 복지부가 연구용역을 통해 마련할 방침이다. 다만 민관협의체는 인증의 대략적인 요건을 이미 정해놨다. 이 방안에 따르면 상위등급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효과성, 정확성, 윤리 및 안전성, 전달력 등 4가지 항목에서 일정한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정확성, 윤리 및 안전성, 전달력은 1등급과 2등급의 내용이 같지만 효과성에서 1등급이 더 까다롭다. 2등급에서는 ‘특정 유전적 변이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비교 분석해 얻은 결론’만 있으면 조건이 충족된 걸로 보지만 1등급에서는 ‘해당 유전적 변이가 개별 질병의 위험도에 영향을 준다는 명확한 연구 결과’도 있어야 한다.

◆업계 “인증제는 점진적 도입이 바람직”

이날 공청회에서는 DTC 범위 확대에 대한 의견이 활발하게 오고 갔다. 신동직 메디젠휴먼케어 대표는 “고령화사회에서는 단순히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오래 사느냐가 중요하다”며 “DTC는 검사된 질병의 발병위험도 및 발병확률을 누구나 알기 쉽게 설명해 실질적인 건강관리와 향후 질병에 대한 대비를 가능케 한다”고 말했다. 그는 “검사실 인증제는 충분한 준비를 통해 사후 적용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했다. 해외 검사기관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영업을 강화하고 있는데 검사실 인증제 도입으로 시간을 끌게 되면 그동안 국내 업체가 역차별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DTC 범위 확대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강양구 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은 “검사 결과에 따라 사람들이 예방적으로 병원을 찾게 되면서 불필요한 의료 수요만 늘 수 있다”고 말했다. 이종극 서울아산병원 의생명연구소 교수는 “미국과 달리 한국인에 대해서는 연구 데이터 축적이 안 돼 있고 유전자 검사는 다른 인종의 데이터를 가져와서 적용할 수도 없다”며 “지금 국내 산업계의 요구는 과학적 근거 없이 검사를 하게 해달라는 것”이라고 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