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대기업 옥죄면 청년 일자리 어떡하나
졸업생 제자로부터 결혼을 알리는 전화가 왔다. 사귀는 쪽이 취직을 못해 결혼이 늦어진다는 걱정을 들은 터라 너무 반가워 좋은 직장을 구했냐고 물었다. 머뭇거리던 제자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파트너가 바뀌었음을 털어놨다.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별말 못하고 끊었다. 청년실업이 연인들의 사랑마저 갈라놓는 불행한 시대다.

취업준비생은 대기업으로 몰리는데 정부 대책은 공무원과 공공기관 채용 늘리기와 중소기업 취업자에게 돈 얹어주기가 전부다. 대기업으로 몰리는 이유는 초봉이 훨씬 높고 장래 전망도 밝기 때문이다. 업종별로 차이는 있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급여와 근무환경 차이는 엄청나다. 대기업·중소기업 협력체계와 직업교육 강화를 위한 교육제도 개편을 서둘러야 한다. 대기업의 고용 의지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단기적 처방도 시급하다. 미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세계 각국 정치 지도자가 자국 기업의 경쟁력을 띄우기에 광분하는데 우리 정치권은 대기업 들볶기 경쟁뿐이다. 법인세율도 다른 나라와는 거꾸로 홀로 인상했다.

대기업 규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년 넘게 이어진다. 김대중 정부의 ‘부채비율 200%’에서부터 금산분리, 지주회사, 순환출자, 동반성장 등 온갖 규제가 등장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규제 강도는 줄지 않았다. ‘경제민주화’ 구호를 대선 막판에 빌려 쓴 원죄 때문에 박근혜 정부 법무부는 2013년 7월 집중투표 의무화, 감사위원인 사외이사 분리 선임, 다중대표소송 등을 포함한 상법개정안을 내놨다. 당시엔 별로 관심을 얻지 못하고 뒷전으로 밀려난 개정안이 최근 법무부의 찬동 의견이 제시됨에 따라 재론 단계에 들어섰는데, 그대로 통과되면 대기업 이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결정타가 될 것이다.

2003년에 취약한 지분구조의 SK(주) 주식 15%를 매집해 대박을 터뜨린 소버린이 2005년에는 대주주 지분율이 높은 (주)LG 주식 7%를 사들였다. 감사위원 선출에는 대주주 의결권이 3%로 제약되기 때문에 다수의 펀드로 분산시켜 7% 의결권을 모두 행사하면 감사위원을 꿰찰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모양이다. 그러나 선임된 사외이사 중에서 감사위원을 뽑기 때문에 사외이사 단계에서는 의결권 제한이 적용될 여지가 없음을 알아채고 손해를 감수하며 주식을 팔아치웠다.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를 분리선임하는 상법개정안이 그때의 법규였더라면 LG그룹 의결권은 3%로 제한되고 소버린이 사외이사와 감사위원 다수를 차지했을 것이다. 감사위원 선임의 의결권 제한은 선진국에는 없는 제도인데, 이를 사외이사 선임에도 적용하려는 개정안은 명백한 대주주 역차별이다.

감사위원회가 상근감사를 대체하는 기구임을 감안하면 비전문적 인사로 채워 무력화시키는 행태도 문제다. 감사위원회의 전문성 확보를 위해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는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중 최소 1인은 3% 의결권 제한을 적용해 분리선임하도록 규정돼 있는데, 상법개정에서도 이를 전향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 집중투표제는 경영 참여 목적으로 상당한 지분을 장기적으로 보유하는 2대 또는 3대 주주가 있는 경우에는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경영권 흔들기로 주가를 띄워 단기적 매각 차익을 얻으려는 헤지펀드의 투기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소송 남발이 우려되는 다중대표소송도 수많은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에는 과중한 부담이다.

제조업 가동률이 최저 수준인 위축경영 상황에서 대기업이 보유 자금을 순환출자 해소에 몽땅 투입하면 턴어라운드의 발판이 사라진다. 그렇다고 중소기업이 대기업 투자 영역을 대신할 수도 없다. 국가재난 수준의 청년실업 악화를 막으려면 대기업 출자규제를 현재 수준으로 동결해야 한다. 노동법과 교육제도 및 대·중소기업 협력체계를 과감히 개혁하고 취업 한 번 못하고 청년시대를 넘길 위기의 취업준비생을 위한 한시적 규제프리 채용특례를 도입해야 한다. 급여의 절반을 세액공제로 지원하고 교육훈련을 강화한 특례기간 종료 후에는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계약하는 구조로 대기업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취업 적령기를 넘긴 청년의 미래를 살릴 대책이 다급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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