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왼쪽),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문재인 대통령(왼쪽),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에게 유엔이 북한 핵실험장 폐쇄 현장을 함께 확인하고, 비무장지대(DMZ)의 평화지대화 과정에도 동참해달라고 요청했다. 구테흐스 총장은 이를 수락했다. 향후 북한이 비핵화를 실행에 옮기면 북한에 줄 반대급부로 거론되는 유엔의 대북 제재 완화를 염두에 둔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이날 구테흐스 총장과 한 30여 분간 통화에서 “북한 핵실험장 폐쇄 현장을 유엔도 함께 확인해 줬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어 “(남북한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 가운데 비무장지대의 실질적 평화지대화를 소개하면서 그 과정에 유엔도 참관하고 이행을 검증해달라”면서 “유엔이 총회나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해 남북한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을 합의하고 지지해주는 선언을 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구테흐스 총장은 이에 대해 “기꺼이 협력할 용의가 있다”며 “문 대통령의 요청이 유엔 안보리의 승인이 필요한 사항들이지만 한반도 평화 정착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고 김 대변인은 전했다.

구테흐스 총장은 또 “유엔의 군축담당 책임자를 한국 정부와 협력하도록 하겠다”며 종전선언 후 남북 군축 협상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구테흐스 총장은 지난달 27일 나온 남북 정상회담 판문점 선언에 대해 “남북 지도자의 진정한 역사적 회담에 갈채를 보낸다”며 “세계의 많은 사람이 한반도에서의 화합과 평화를 위해 함께 한 남북 두 지도자의 강력한 이미지에 감동했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이날 문 대통령이 구테흐스 총장에게 유엔의 참여를 요청한 것은 한반도 정세에서 유엔의 역할을 크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가 급물살을 타면 가장 먼저 움직여야 할 곳 중 하나가 유엔으로 꼽힌다.

유엔 안보리는 2016년 이후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탄도미사일 도발에 대응해 강력한 대북제재안을 통과시켜왔다. 지난해 8월 대북제재 2375호를 통해 북한산 광물과 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한 데 이어 한 달 뒤엔 대북 석유 공급을 제한했다. 대북 합작 사업의 신설뿐만 아니라 기존 합작 사업을 폐쇄하고 대규모 현금 유입도 차단해 유엔의 대북제재가 풀리지 않는 한 남북경협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유엔의 대북제재 등이 언급됐느냐’는 질문에 “오늘 통화에서 그런 내용은 없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유엔의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참관과 관련해 “유엔이 핵실험장 폐쇄를 참관하고 검증한다면 그건 유엔 산하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