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남북한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 화해 및 협력 분위기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그중에서도 러시아에서 북한을 거쳐 우리나라까지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는 프로젝트가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 3월 외교부가 주최한 ‘동북아 가스파이프라인·전력그리드 협력 포럼’에 참석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한반도 안보 여건이 개선된다면 남·북·러 PNG(파이프라인 천연가스) 사업도 검토해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며 정부의 의지를 나타냈다.

이 사업은 20여 년 전부터 논의됐던 사업이다. 특히 필자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999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해 보리스 옐친 대통령과 가졌던 한·러 정상회담이다. 당시 대통령을 수행하는 경제인단의 일원으로 모스크바를 방문했는데, 러시아는 옛 소련 시절 제공받은 경협차관 반환 문제로 정상회담 개최를 껄끄러워했다. 이에 한국은 러시아가 추진하던 이르쿠츠크 가스전 개발사업에 참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제안은 가스전 개발과 한·중·러를 연결하는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까지 포함한 야심찬 계획이었다. 이 프로젝트에 대해 당시 경제 재건이 초미의 관심사였던 러시아도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후 남·북·러 가스 파이프라인 사업은 국제 정세에 따라 추진과 중단이 반복됐다. 2000년대 초 러시아가 극동 및 동시베리아 자원 개발을 모색하며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2006년에는 정부 간 가스분야 협력 협정 및 한국가스공사와 러시아 가즈프롬이 협력 의정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그 이후에도 이 사업을 추진하려는 흐름이 이어졌으나 통과국인 북한의 핵 이슈로 인한 남북관계 악화로 사업은 중단되고 말았다. 그러나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부터 시작된 해빙무드로 남·북·러 PNG 사업이 재개될 수 있다는 새로운 기대가 무르익고 있다.

러시아 천연가스가 북한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올 경우 여러 가지 경제적·외교적 이익이 발생한다. PNG는 배로 들여오는 액화천연가스(LNG)보다 가격이 저렴하다. 주로 중동산 가스를 비싸게 들여오는 우리로서는 수입처 다변화를 통한 에너지 안보와 경제성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 정치적 리스크가 많은 북한 대신 중국을 거치는 해저 파이프라인을 구축하자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북한을 경유하는 파이프라인은 남북 모두에 매우 중요한 에너지 공급 라인이자, 통일 이후 균형 잡힌 국토발전에도 기여할 국가적 자산이라는 측면에서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

북한이 파이프라인을 정치도구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고 국제 기준에 따라 북한에 지급하게 될 연간 수억달러 규모의 통과료(전체 통과액의 5~10% 정도)가 핵무기 개발 등에 악용될 수 있다는 문제도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이런 리스크를 회피할 방법이 없지 않다. 통과료를 현금이 아니라 천연가스로 지급하는 방법이다. 천연가스는 원료의 특성상 발전, 난방, 취사용으로 주로 사용되며 항공기나 탱크 등 무기체계의 연료로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 협력 방안의 하나로 가스발전소나 도시가스 인프라 등 평화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설을 지어주는 방안도 가능하리라 본다. 만에 하나 북한에 의해 가스관이 차단되면 북한에 제공하는 가스 공급도 중단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효과적인 제재 방안이 더해지도록 한다면 극심한 에너지난을 겪는 북한이 가스관을 쉽게 잠글 수 없을 것이다.

세계 3대 천연가스 시장 중 동북아 시장에서 유독 가스 가격이 높게 형성돼 있다. 이를 ‘아시안 프리미엄’이라고 부른다. 남·북·러, 나아가 일본까지 포함하는 파이프라인은 북한에 가로막혀 사실상 에너지 섬나라나 마찬가지인 한국을 유라시아 에너지 시장과 연결해 주는 통로다. 최근 불어오는 남북 관계의 훈풍이 신뢰회복으로 이어져 막혀있는 동북아 PNG 사업을 풀어낼 최상의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