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새 금감원장은 3년 임기 보장해야
지난달 9일 오후 금융감독원은 예정에 없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삼성생명은 만기환급형 즉시연금에 가입한 강모씨에게 연금을 더 지급하라는 게 골자였다. 삼성생명이 만기에 원금을 돌려주기 위해 운영 수익금 중 일부를 다달이 떼어 놓고 돈을 주는 것은 잘못이라는 취지였다. 이 같은 결정은 금융분쟁조정위원회에서 지난 연말 이미 나왔고, 삼성생명이 기한 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2월에 종료된 사안이었다. 당시 김기식 금감원장에 대한 의혹이 잇따라 불거진 시점이어서 외부로 관심을 돌려보려는 의도라는 의혹도 받았다.

금감원은 조정위의 결정을 전 생명보험사에 통보하고 강씨와 비슷한 상품에 가입한 사람들에게도 덜 준 연금액과 이자를 지급하도록 했다. 업계 전체적으로 추가로 지급할 금액은 5000억원을 넘었다. 업계 관계자는 “업계로선 부당하고 억울한 측면이 있지만 감독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때 입을 피해가 더 크다고 생각해 수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면책 대상인 자연재해도 감독원 지침에 따라 보상하는데…”라고 덧붙였다.

금감원의 권한은 막강하다. 은행 증권 보험 등 전 금융회사의 업무 및 자산 상황을 검사하고 위반사항이 있는 경우에는 제재한다. 이런 금감원의 위상이 요즘 말이 아니다. 금융회사와의 마찰에다 채용비리에 이어 수장까지 연이어 낙마해서다. 김 전 금감원장은 18일간의 ‘최단기 재임 원장’이란 불명예를 안고 자진 사퇴했다.

김 전 원장의 중도 낙마는 금감원장 인사청문회 도입과 임기 보장이라는 오래된 논의 과제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다. 최근 국회 헌법 개정 논의 과정에서 전문가들은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바로잡을 것을 주문하고 있다.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 국세청 등 4대 권력기관장은 인사청문회라는 국회 검증 절차를 거친다. 이들과 비교해 권한이 작지 않은 ‘금융의 검찰’ 금감원의 수장이 예외가 될 수 없다. 그 어느 기관장보다 전문성과 도덕성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어렵게 뽑은 만큼 금감원장의 임기는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1999년 통합 금감원 출범 후 역대 12명의 원장(금융감독위원장 포함) 중 임기를 채운 경우는 단 두 명뿐이다. 평균 재임기간은 1년3개월에 불과했다. 1934년 설립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를 거쳐간 위원장 30명의 평균 임기는 2년8개월이다. 우리의 두 배다.

청와대는 조만간 금감원장을 임명할 것이라고 한다. 이번에 또다시 인사 문제가 불거지면 ‘끝장’이라는 부담감에 청와대는 ‘현미경’ 검증을 하고 있다.

하지만 걱정되는 게 있다. 임명 후 신임 금감원장은 또다시 언론과 여론의 인사 검증이라는 ‘칼날’ 위에 서야 한다. 취임 후에도 당분간 제대로 된 임무 수행은 사실상 힘들다. 거꾸로 임명된 최적임자가 업무를 계속한다고 가정하면 금감원장 인사 제도 개선은 유야무야 뒷전으로 밀릴 공산이 크다. 노무현 정부 때 8개월간 금융감독위원장을 지낸 김용덕 손보협회장은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나라 경제가 무너진다. 금감원장에게는 위기를 예방할 막중한 책임이 있다”고 했다. 소를 두 번 연거푸 잃어버렸으면 외양간이라도 제대로 고쳐야 하지 않을까. 임명한다고 제도 개선을 미룰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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