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최근 들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논란 등 삼성그룹 관련 주요 현안에 대해 기존 방침과 180도 다른 정책을 내놓고 있다. 금융권에선 금융당국의 이 같은 원칙 없는 대응의 배경엔 참여연대로 대표되는 시민단체가 자리잡고 있다고 보고 있다. 참여연대 출신들이 현 정부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참여연대가 삼성 관련 현안에 대해 논평 및 의견서를 발표하면 금융당국이 뒤따라 기존 방침을 뒤집어가며 관련 대책을 내놓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감원 지속 압박한 참여연대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방침이다. 당초 금감원은 지난해 2월 “회계기준 위반 사항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금감원은 입장을 바꿔 지난 1일 고의적인 분식회계가 인정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5년 자회사이던 삼성바이오에피스를 관계사로 회계처리를 변경해 1조9049억원의 순익을 낸 것을 ‘고의적 분식’으로 판단한 것이다.
참여연대의 '삼성 때리기'… 뒤늦게 보조 맞추는 금융당국
분식회계 의혹을 가장 먼저 제기한 건 참여연대였다. 참여연대는 2016년 4월 삼성바이오로직스 순익이 급증하자 같은 해 12월 금감원에 분식회계 의혹을 제기하는 질의서를 보냈다. 금감원이 이 질의서에 ‘문제없음’이라고 회신하자 이듬해 2월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함께 금융당국에 특별감리를 요구했다. 지난해 12월엔 감리 진행 현황을 질의하는 등 금감원을 지속적으로 압박했다.

참여연대는 3일 성명을 통해 “특별감리에 대한 금감원의 결론은 늦었지만 당연한 결과”라며 “금융위원회도 조속히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판단을 내릴 것을 촉구한다”며 금융위를 압박하고 나섰다. 금융위 증권선물위원회는 이달 중 징계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참여연대 압박에 금융위도 입장 바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명계좌를 둘러싼 논란도 마찬가지다. 금융위는 이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해 현행법상 과징금을 부과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지난해 12월21일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금융행정혁신위원회 권고에 불가능하다는 뜻을 밝혔다. 최 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이 있은 지 불과 몇 시간 뒤에 참여연대는 ‘하루 만에 혁신위 권고안 뒤집은 최종구’라는 비판 논평을 냈다. 그러자 금융위는 2주 후 법제처에 과징금 징수 관련 법령 해석을 요청했고, 법제처는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해석을 내렸다. 금융위는 지난달 12일 이 회장 차명계좌를 보유한 미래에셋대우 등 4개사에 33억99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매각도 태도가 바뀌었다. 금융위는 지난해 말까지도 삼성생명의 계열사 주식 매각과 관련해선 당국 지침보다 국회의 보험업법 개정이 우선이라고 밝혀왔다. 하지만 최 위원장은 지난달 20일 ‘법 개정 전이라도 금융사가 계열사 주식을 매각할 방안을 적극 찾아야 한다’며 사실상 삼성을 겨냥했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매각은 참여연대가 그동안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문제다. 참여연대는 지난 2일에도 금융위에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 처분계획 관련 질의서를 보내는 등 금융위를 압박했다.

금융당국 참여연대에 왜 휘둘리나

참여연대는 현 정부 출범 이후 금융위와 최 위원장에 대한 비판 논평을 자주 내놓고 있다. 금융당국이 삼성 현안 등에 대한 금융개혁 의지가 없다는 것이 참여연대의 주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인식도 참여연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청와대 일각에선 금융당국이 추진하는 금융개혁 속도가 지나치게 더디다고 보는 분위기도 있다”고 전했다. 최 위원장과 금융당국이 올 들어 기존 방침을 잇따라 바꾼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김기식 전 금감원장 사퇴 논란이 한창 불거지던 지난달 13일 “금융은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분야”라고 언급했다. 지난 1월 신년사에서도 “금융적폐를 없애겠다”고 강조했다.

금융분야에 대한 현 정부 핵심 관계자들과 참여연대의 인식이 상당 부분 일치하는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참여연대의 잇단 비판과 논평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수장이 불과 몇 달 만에 자신의 발언을 뒤집을 정도로 금융당국이 시민단체에 휘둘리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