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추진하면서 로펌의 수임전이 달아오르고 있다. 엘리엇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개입해 손해를 봤다며 ISD를 제기할 예정이다.

국제중재 분야는 글로벌 로펌으로서의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로 여겨지기도 해 주요 로펌들은 자존심을 건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정부도 세금과 자존심을 지켜내야 하는 중대 사안으로 인식하고 그 어느 때보다 로펌 선임에 신중한 모습이다.

◆네 번째 ISD… 달아오르는 수임 경쟁

한국 정부는 그동안 세 번의 ISD를 제기당했다. 2012년 11월 론스타가 제기한 5조5000억원대 ISD, 2015년 4월 아랍에미리트 부호 만수르의 회사인 하노칼이 제기한 2400억원대 ISD, 2015년 9월 이란계 엔텍합그룹 대주주 다야니가 제기한 600억원대 ISD 등이다.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된 ISD는 미국 또는 영국 로펌 한 곳과 한국 로펌 한 곳이 짝을 지어 대응해왔다. 론스타 ISD는 아널드앤드포터(미국)와 태평양, 하노칼 ISD는 데비보이스앤드플림프턴(미국)과 김앤장, 다야니 ISD는 프레시필즈 브룩하우스 데링어(영국)와 율촌이 함께 맡았다.

외국 로펌이 주도(리드 카운슬러)해서 ISD를 진행하는 게 일반적이다. 한국 로펌은 한국에서 수집할 수 있는 자료를 모으고 외국 로펌과 한국 정부의 다리 역할을 한다. 중요한 부분에서는 직접 국제중재 법정에 나가 변론하기도 한다. 한국 로펌 선정 기준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사건 내용 이해도’인 이유다. 특히 엘리엇 사건은 한국에 연루된 형사 재판 사건이 많다. 엘리엇도 한국 재판 결과를 언급하며 소송 이유를 댔다. 한국 로펌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얘기다.

정부는 론스타 ISD에 400억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했다. 사건을 맡은 태평양 변호사 일곱 명에게는 시간당 44만원을 지급했다. 다른 송무에 비해 많은 비용을 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ISD라는 상징성이 크다. 국제중재 분야의 전문성은 로컬 로펌과 글로벌 로펌을 가르는 주요 기준이기 때문이다. ISD는 그중의 ‘꽃’으로 꼽힌다.

정부를 대리해 세금을 지켜내는 일이라 명예도 따른다. 사건 수임으로 인한 홍보와 연쇄 수임 효과도 크다.

◆정예 변호사 스카우트전 치열

지난 세 번의 ISD 수임에 실패한 광장은 이번 소송을 맡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임성우 변호사가 정예 멤버들을 이끄는 광장은 김앤장과 세종에서 ISD를 담당하던 주요 인력을 스카우트했다. 임 변호사는 “국내에서 중요한 ISD를 대리한 핵심 인력을 영입했다”며 “국내 최고 전문성을 갖춘 ISD 라인업을 구축했다”고 강조했다.

하노칼 ISD 승소 경험이 있는 김앤장도 팔을 걷어붙였다. 20년가량 국제중재 분야 전문가로 활약한 윤병철 변호사가 최전방에 있다. 김앤장 국제중재팀은 40명으로 구성돼 막강 전력을 자랑한다. 어떤 국제중재 소송도 대응할 수 있는 내공을 갖췄다는 게 김앤장의 설명이다.

세종은 론스타를 대리해 ISD를 해 본 경험이 있다. 국제통상 전문가인 김두식 대표 변호사가 간판이다. 세종은 두 건의 ISD 분쟁 사건 경험을 토대로 엘리엇 사건 수임 경쟁의 다크호스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율촌은 다야니 ISD를 맡았다. 사건에 대한 높은 이해도가 경쟁력이다. 다른 대형 로펌의 한 국제중재 변호사는 “율촌이 다야니 ISD를 수임한 이유도 남다른 사건 이해도 덕분”이라고 말했다.

태평양은 국제상업회의소(ICC) 국제중재법원 부원장을 맡고 있는 김갑유 변호사가 팀을 이끌고 있다. 태평양은 안성주택산업이 중국 지방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ISD를 대리한 경험도 있다. 이 사건은 본안 소송에 들어가기 전 중재재판부가 제척기간을 이유로 각하했다.

화우는 여러 국제중재기관에서 대리인으로 활동한 이준상 변호사를 내세웠다. 외교통상부에서 다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참여한 이성범 변호사 역시 국제 통상 분야 전문가로 꼽힌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