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명저] "현명한 개인도 군중 속에선 바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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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릿 딘 마틴 《군중행동》
“군중시대는 독특하고 섬세하며 은인자중하는 모든 개인을 질식시켜 버릴 것이다. 이토록 진보한 시대에도 개인은 어디에 살든 비속해질 수밖에 없고, 그런 자신의 비속함을 망각하기 위해서라도 거창한 위안거리들을 찾아 헤맬 것이며, 지배정당의 깃발을 몸에 휘감고 다닐 것이 분명하다. 그는 ‘100% 군중인간’이 되고 말 것이다.”
에버릿 딘 마틴(1880~1941)은 군중의 속성과 행동양식을 연구하는 데 매진한 미국 언론인 겸 교육자다. 그가 1920년 펴낸 《군중행동》은 군중이 왜 분위기에 휩쓸리고 부화뇌동하는지에 대한 원인을 사회학과 심리학에 근거해 조목조목 파고들었다. 그는 “개인은 현명하고 합리적이지만, 군중의 일원이 되는 순간 바보가 된다”며 “군중은 개인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아”라고 규정했다.
마틴에 따르면 군중 속에서 개인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며, 진리를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개인은 군중에 자신을 일체화시킴으로써 다른 인격체로 행동한다. 군중 일원으로 행동함에 따라 책임소재는 불분명해지고 책임성이 결여되면서 감정적으로 흐르기 쉽다.
일부에선 《군중행동》이 보수적인 관점에서 정치 선동에 휘둘리는 군중의 모습을 다소 과장되게 묘사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군중의 비이성적이고 충동적인 사고 및 행동 양상 등을 탁월하게 분석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마틴은 군중의 개념과 관련해 프랑스 역사학자인 귀스타브 르봉의 심리학적 해석을 따른다. 군중 속에서 개인성은 사멸하고 개개인의 특성과 전혀 관계없는 집단심리가 형성되는데, 이것이 르봉이 내세운 ‘군중의 심리적 단일화 법칙’이다.
마틴은 여기에 ‘무의식’ 개념을 추가했다. 군중심리는 무의식에서 억압된 것들이 콤플렉스로 표출된 것이라고 규정했다. 억눌려진 인간의 본성은 무의식을 통해 나타나는데, 특히 군중이 됐을 때 그런 현상이 심화된다는 것이다. 마틴은 “군중의 욕망은 강박관념과 피해의식, 열등감 등과 결부돼 폭동과 집단 소요와 같은 정치 행위는 물론 인종주의와 왕따, 마녀사냥 등 다양한 행태로 나타난다”고 했다.
마틴에 따르면 군중은 심리학적으로 집단 최면에 걸린 상태에 놓여 있다. 개인의 개성을 배제하고 맹목적으로 집단화된 의식을 공유하고 있고, 현명한 개인도 집단의 일원이 되면 획일적 사고에 갇히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마틴은 “군중은 약자들의 손에 들린 보복용 무기이자 탁월한 정신을 똑같이 평범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대다수 사람들은 혐오스런 대상에 처음에는 호기심 때문에 관심을 보이다가 대놓고 놀려댄다. 농담은 모욕으로 바뀌고, 누군가 일격을 날리면 그 순간 집단폭행이 자행되기 시작한다”고 했다. 그런 폭행은 “정의를 위한 일격”이라는 구실로 정당화되며, 급기야 일종의 ‘대의(大義)’가 출현한다. 이 군중행동의 주체가 단순히 이익집단, 종교집단을 넘어서서 사회 불만 계층으로 확대될 때 이른바 ‘군중혁명’이 시도된다.
‘영웅 숭배’는 군중의 중요한 속성이다. 마틴은 “영웅은 군중의 이기적 자의식을 반영한 상징”이라고 했다. 군중은 그런 상징을 이용해 자신의 감정을 고양시킬 수 있다. 마틴은 “군중의 자아감정을 고양하는 것은 군중 대표자가 거둔 승리다. 심지어 경마장에서 한 마리의 경주마도 군중 대표자가 될 수 있는데, 그 말이 다른 경주마들보다 몇 센티미터라도 앞서서 결승선을 통과하면 수많은 관중을 격렬한 기쁨과 환희로 들뜨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데 마틴의 이런 심리 분석을 토대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군중주의를 비판한 이론서가 독재자의 전체주의 체제 확립에 이용당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책 전편에 흐르는 마틴의 문제의식은 ‘어떻게 하면 군중행동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개인이 될 것인가’로 요약된다. 마틴은 군중이 자유·정의 등을 내세우지만 정말로 원하는 것은 ‘군중이 될 자유’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또 “군중 속에서 쌓여가는 것은 지혜가 아니라 어리석음과 광기”라고 했다. 마틴은 군중의 군집 습성이 점점 더 강하게 문명을 압박하는 심각한 위협요소가 돼 가고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정신적 자유를 획득하지 못하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자유인이 되지 못한다는 게 마틴의 결론이다. 군중심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인들이 인문주의에 바탕을 둔 냉철한 이성과 논리로 무장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문주의의 길을 가는 것은 고독하지만, 그 결과는 용감하고 자유로운 개인을 양산해 군중행동에 의해 변질된 민주주의의 가치를 회복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이 책 서평에서 “민주주의가 그토록 쉽사리 군중지배로 전락한 문제를 탁월하게 분석했고, 이웃에게 먼저 일독을 권하기 전 우리 자신부터 읽어야 할 책”이라고 평가했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
에버릿 딘 마틴(1880~1941)은 군중의 속성과 행동양식을 연구하는 데 매진한 미국 언론인 겸 교육자다. 그가 1920년 펴낸 《군중행동》은 군중이 왜 분위기에 휩쓸리고 부화뇌동하는지에 대한 원인을 사회학과 심리학에 근거해 조목조목 파고들었다. 그는 “개인은 현명하고 합리적이지만, 군중의 일원이 되는 순간 바보가 된다”며 “군중은 개인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아”라고 규정했다.
마틴에 따르면 군중 속에서 개인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며, 진리를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개인은 군중에 자신을 일체화시킴으로써 다른 인격체로 행동한다. 군중 일원으로 행동함에 따라 책임소재는 불분명해지고 책임성이 결여되면서 감정적으로 흐르기 쉽다.
일부에선 《군중행동》이 보수적인 관점에서 정치 선동에 휘둘리는 군중의 모습을 다소 과장되게 묘사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군중의 비이성적이고 충동적인 사고 및 행동 양상 등을 탁월하게 분석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마틴은 군중의 개념과 관련해 프랑스 역사학자인 귀스타브 르봉의 심리학적 해석을 따른다. 군중 속에서 개인성은 사멸하고 개개인의 특성과 전혀 관계없는 집단심리가 형성되는데, 이것이 르봉이 내세운 ‘군중의 심리적 단일화 법칙’이다.
마틴은 여기에 ‘무의식’ 개념을 추가했다. 군중심리는 무의식에서 억압된 것들이 콤플렉스로 표출된 것이라고 규정했다. 억눌려진 인간의 본성은 무의식을 통해 나타나는데, 특히 군중이 됐을 때 그런 현상이 심화된다는 것이다. 마틴은 “군중의 욕망은 강박관념과 피해의식, 열등감 등과 결부돼 폭동과 집단 소요와 같은 정치 행위는 물론 인종주의와 왕따, 마녀사냥 등 다양한 행태로 나타난다”고 했다.
마틴에 따르면 군중은 심리학적으로 집단 최면에 걸린 상태에 놓여 있다. 개인의 개성을 배제하고 맹목적으로 집단화된 의식을 공유하고 있고, 현명한 개인도 집단의 일원이 되면 획일적 사고에 갇히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마틴은 “군중은 약자들의 손에 들린 보복용 무기이자 탁월한 정신을 똑같이 평범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대다수 사람들은 혐오스런 대상에 처음에는 호기심 때문에 관심을 보이다가 대놓고 놀려댄다. 농담은 모욕으로 바뀌고, 누군가 일격을 날리면 그 순간 집단폭행이 자행되기 시작한다”고 했다. 그런 폭행은 “정의를 위한 일격”이라는 구실로 정당화되며, 급기야 일종의 ‘대의(大義)’가 출현한다. 이 군중행동의 주체가 단순히 이익집단, 종교집단을 넘어서서 사회 불만 계층으로 확대될 때 이른바 ‘군중혁명’이 시도된다.
‘영웅 숭배’는 군중의 중요한 속성이다. 마틴은 “영웅은 군중의 이기적 자의식을 반영한 상징”이라고 했다. 군중은 그런 상징을 이용해 자신의 감정을 고양시킬 수 있다. 마틴은 “군중의 자아감정을 고양하는 것은 군중 대표자가 거둔 승리다. 심지어 경마장에서 한 마리의 경주마도 군중 대표자가 될 수 있는데, 그 말이 다른 경주마들보다 몇 센티미터라도 앞서서 결승선을 통과하면 수많은 관중을 격렬한 기쁨과 환희로 들뜨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데 마틴의 이런 심리 분석을 토대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군중주의를 비판한 이론서가 독재자의 전체주의 체제 확립에 이용당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책 전편에 흐르는 마틴의 문제의식은 ‘어떻게 하면 군중행동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개인이 될 것인가’로 요약된다. 마틴은 군중이 자유·정의 등을 내세우지만 정말로 원하는 것은 ‘군중이 될 자유’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또 “군중 속에서 쌓여가는 것은 지혜가 아니라 어리석음과 광기”라고 했다. 마틴은 군중의 군집 습성이 점점 더 강하게 문명을 압박하는 심각한 위협요소가 돼 가고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정신적 자유를 획득하지 못하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자유인이 되지 못한다는 게 마틴의 결론이다. 군중심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인들이 인문주의에 바탕을 둔 냉철한 이성과 논리로 무장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문주의의 길을 가는 것은 고독하지만, 그 결과는 용감하고 자유로운 개인을 양산해 군중행동에 의해 변질된 민주주의의 가치를 회복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이 책 서평에서 “민주주의가 그토록 쉽사리 군중지배로 전락한 문제를 탁월하게 분석했고, 이웃에게 먼저 일독을 권하기 전 우리 자신부터 읽어야 할 책”이라고 평가했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