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위닉스는 2년 만에 다시 일어서는 데 성공했다. 작년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607억원과 173억원. 전성기이던 2013년 수준을 회복했다. 주력 제품을 공기청정기로 바꾼 결과였다. 올해는 사상 처음 매출 3000억원대를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데이터로 찾은 후속 제품”
위닉스는 제습기 개념조차 생소하던 1997년부터 제품을 만들어 팔았다. 2013년 역대 최장 기간인 49일간 장마가 이어지자 제습기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위닉스는 ‘뽀송’이란 브랜드로 배우 조인성을 내세워 제습기를 팔아 대박을 쳤다. 제습기 하나로 생활가전업계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듬해인 2014년부터 3년간 마른장마가 이어졌다.
위기가 시작된 2014년 여름. 윤철민 위닉스 사장은 제습기 뒤를 이을 히트 제품 찾기에 나섰다. 직속 마케팅실에 비밀 팀을 꾸렸다. 이 팀은 국내외 가전 시장과 트렌드 등 온갖 데이터를 뒤졌다. 결론은 공기청정기였다. 윤 사장은 반신반의했다. 아직 국내에 공기청정기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이터 분석 결과를 믿기로 했다.
공기청정기는 제습기와 비슷한 기술이 활용되는 데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시장이 커지고 있었다. 미국은 한국보다 공기가 깨끗하다. 하지만 카펫 문화와 반려동물 등으로 천식 알레르기 질환자가 많아 공기청정기 이용자가 늘고 있었다. 위닉스 관계자는 “미세먼지가 천식 폐렴 폐암 등 호흡기 질환의 원인이란 분석이 많았다”며 “한국도 미국 등 선진국과 같이 건강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 공기청정기 수요가 늘 것으로 전망했다”고 말했다. “땡처리 안 하고 브랜드 지켜”
공기청정기로 방향을 잡았지만 여전히 제습기 재고 문제가 남아 있었다. 사내에서 재고 처리를 놓고 논쟁이 붙었다. 헐값에라도 빨리 팔아치워야 한다는 주장과 ‘땡처리’ 하면 브랜드가 훼손될 것이란 의견이 맞섰다.
윤 사장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헐값에 팔지 않기로 했다. 후속 제품을 위해서라도 브랜드를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위닉스는 소폭 할인한 가격에 제습기를 판매했다. 재고를 털어내는 데 3년이 걸렸지만 브랜드 가치가 추락하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대신 조직 구조조정 등을 통해 비용을 줄이며 버텨냈다.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기로 한 공기청정기 시장에선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내세웠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기업과 경쟁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성능은 대기업 제품과 비슷하고, 브랜드는 생활가전 전문기업 수준의 인지도가 있고, 가격은 상대적으로 싸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형 광고모델을 쓰는 대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비교적 비용이 적게 드는 입소문 마케팅을 활용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샤오미식 마케팅 전략이었다. 위닉스 관계자는 “위닉스 공기청정기 가격은 청정면적이 비슷한 경쟁사 제품보다 20~30%가량 싸다”고 했다.
‘날씨의 저주’를 버텨내는 데 성공하자, 날씨로 일이 풀리기 시작했다. 작년부터 미세먼지가 심해지자 공기청정기 판매가 급증했다. 국내 공기청정기 시장은 2015년 5600억원에서 작년 1조원을 돌파하며 2년 새 두 배 가까이 커졌다. 올해 1조5000억원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015년부터 작년까지 위닉스의 공기청정기 매출은 연평균 200% 이상 증가했다.
윤주호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올해 위닉스의 매출이 3750억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4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작년을 기점으로 위닉스의 주력 제품이 제습기에서 공기청정기로 바뀌었다”며 “위닉스 공기청정기 매출은 시장 성장률보다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