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회사와 공기업들이 해외 채권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에 잇따라 나서는 가운데 외환당국이 이들 기업에 환전을 자제해달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새 국제보험회계기준(IFRS17) 도입을 앞두고 자본 확충을 위해 대규모 해외 신종자본증권(영구채) 발행을 추진하는 보험사들은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 있다”며 당혹해하고 있다.

"영구채 조달 자금, 원화로 환전 말라니"
15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자본 확충을 위해 3억달러 규모의 영구채 발행을 추진하던 KDB생명에 “조달하는 달러를 원화로 바꾸지 말 고 달러 자산에 곧바로 투자할 것”을 요청했다.

이 탓에 KDB생명은 지난달 예정됐던 영구채 발행 일정을 연기한 데 이어 이달 물량을 2억달러로 줄여 발행작업을 마무리 지었다. 영구채는 만기가 정해져 있지만 발행회사의 결정에 따라 만기 연장이 가능해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되는 채권이다.

해외에서 3억달러 규모 ‘워터본드’ 발행에 성공한 수자원공사도 같은 이유로 발행 일정을 수개월 늦춘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해상 동양생명 한화손해보험 롯데손해보험 등 해외 영구채 발행을 준비 중인 회사들은 고민에 빠졌다. 보험사들은 IFRS17 도입을 앞두고 해외 자금 조달을 통한 자본 확충이 시급하지만 달러로 조달한 자금을 원화로 바꿔 위험을 회피(헤지)하지 않으면 환위험에 그대로 노출돼 손실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보험업감독 규정은 보험사가 환헤지 없이 달러자산에 투자할 때 원화자산에 비해 많은 추가 자본 확보를 요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신용등급 AA인 해외 자산에 5년 만기로 투자할 경우 기존 1.2%에 더해 8%의 요구자본량이 추가된다. 이는 곧바로 재무건전성 척도인 지급여력(RBC) 비율에 악영향을 준다.

환율 변동에 따라 수백억원의 손익 변동이 바로 회계장부에 인식되는 등 변동성 위험에 노출되는 점도 부담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대규모 달러자산을 해외에서 직접 운용할 여력이 안 되는 중소형 보험사는 해외 영구채 발행을 다시 생각해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업계 일각에선 “영구채 발행을 통한 자본 확충을 권장하는 금융당국과 환율 관리에 신경 쓰는 외환당국 간 정책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기재부는 “외화조달 자금을 달러 채권에 재투자해 자연스럽게 환리스크를 없애도록 권고했을 뿐”이라며 “KDB생명은 환오픈에 대한 어려움을 받아들여 환헤지를 허용했다”고 말했다.

이지훈/김일규/김대훈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