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이란 제재 부활과 정유·석유화학산업 미래

[뉴스의 맥] 美, 이란 핵협정 탈퇴… 제재 '예외국 인정' 받아내야
2008년 7월3일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원유는 서부텍사스 원유(WTI) 기준 배럴당 145.29달러에 거래돼 최고가를 기록했다. 세계 경제는 거침없는 고유가 행진에 몸살을 앓았고, 전문가들은 석유자원 고갈을 강조하며 암울한 전망을 쏟아냈다. 그러나 계속될 것만 같던 고유가도 미국의 ‘셰일 혁명’ 여파로 2010년 말 이후 맥없이 폭락해 2~3년 전에는 WTI 기준 배럴당 20달러 후반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최근 들어서야 세계 경제의 견조한 성장세와 중동 정세 불안,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의 감산 영향으로 배럴당 70달러를 웃도는 수준으로 반등했다.

이런 상승 추세의 유가 흐름에 큰 영향을 줄 사건이 발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란 핵협정(JCPOA: 포괄적공동행동계획) 탈퇴 선언이다. 그러나 국제 유가가 단기적으로는 오를 것으로 보이지만 그 폭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 OPEC, 미국 에너지청을 포함한 세계 시장 전문기관들의 유가 전망을 종합해 보면 그렇다.

이런 전망의 배경에는 점진적이지만 확실한 방향성의 원유 시장 변화 추세가 자리 잡고 있다. 수요 측면에서는 전기자동차 및 천연가스 자동차 보급 확대, 자동차 연비의 획기적 개선으로 원유 수요가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동시에 가격탄력적으로 변화해 왔다. 공급 측면에서는 미국의 셰일을 포함한 원유 생산량이 꾸준히 늘어 2017년 기준 하루 9350만 배럴에 육박하고 있고 머잖아 사우디아라비아의 2017년 생산량인 1억 배럴에 도달할 전망이다. 또 탐사, 시추, 생산에 사용되는 기술-3D 탄성파 탐사, 수평 굴착, 수압파쇄-에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나 탐사에서 생산에 이르는 기간이 수년에서 수개월로 크게 단축되고 생산비용도 큰 폭으로 하락했다.

콘덴세이트 54% 이란산에 의존

세계 원유시장은 이전보다 훨씬 안정됐다고 할 수 있다. 채굴 및 소비 기술 발달, 그리고 새로운 에너지원인 셰일 자원의 발견으로 수요와 공급이 가격탄력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제재 재개 결정과 같은 수준의 외부 충격이 발생하면 국제 원유시장은 공황 상태에 빠졌을 것이다. 당장 올해와 내년 사이에 이란의 하루 원유 수출 물량 200만 배럴이 반토막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 재무부와 수입국 간 예외국 지정 과정에서 결정될 사안이지만 올해와 내년 사이 적어도 하루 최소 50만 배럴에서 최대 120만 배럴의 이란산 원유 공급이 시장에서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장은 예상외로 평온을 유지할 전망이다.

국제 유가 움직임과는 별개로 2017년 기준 하루 약 30만 배럴의 콘덴세이트(초경질 원유)와 10만 배럴의 원유를 이란에서 수입하고 있는 한국의 몇몇 정유회사와 석유화학회사는 미국의 제재 정도에 따라 대체 유종 물량 확보 및 원료 가격 상승의 이중고로 상당한 영업손실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국내 정유회사와 석유화학회사는 이란산 원유와 콘덴세이트에 최적화된 설비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란에 대한 서방의 경제 제재가 해제된 2016년 이후 전체 콘덴세이트 도입량의 54%를 이란산에 의존해 왔다. 콘덴세이트를 포함한 이란산 원유 도입량은 전체 원유 도입량의 13.2%에 이른다.

이란산 원유의 주종인 ‘이라니안 헤비(Iranian Heavy)’는 쿠웨이트산 엑스포트(Export)나 이라크산 바스라 라이트 유종으로 일부 대체할 수 있지만 이들 유종은 유통 물량이 적고, 대체하더라도 성상의 차이로 제품 수율 감소를 초래할 것이다. 콘덴세이트는 대체 유종으로 카타르산 DFC 등이 있는데 이란산에 비해 많이 비싼 편이며 잉여 물량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뉴스의 맥] 美, 이란 핵협정 탈퇴… 제재 '예외국 인정' 받아내야
對中 가격 경쟁력 약화 우려

기업들이 자구노력을 하고는 있으나 세계적으로 콘덴세이트 물량이 많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미국산 콘덴세이트는 물량 확보는 가능하나 파이프라인 및 수출 터미널 등 인프라가 미비해 당장 한국이 수입을 늘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더군다나 중국의 행보가 국내 산업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미국의 제재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천명한 중국은 하루 약 70만 배럴 이상을 이란에서 수입하고 있는데 제재가 이행되면 오히려 값싼 이란산 원유 구매를 더 늘릴 수 있다. 그러면 중국의 정유 및 석유화학사들이 국내 석유화학회사에 비해 원료값에서 약 8~15%의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볼 때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제재가 그 끝을 알 수 없다는 게 더 큰 위험이다. 이란 사태가 파국적 결과를 맞는다면 국내 정유 및 석유화학산업은 장기 불황에 접어들 수도 있다. 그 이유는 첫째, 국제 유가 상승은 석유화학산업의 주 원료인 나프타 가격을 상승시켜 범용제품 경쟁력을 크게 약화시킬 것이다. 둘째, 석유화학산업 특화상품의 가격 경쟁력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수지 제품인 스티렌 모노머(SM)는 에틸렌 80%와 벤젠 20%를 혼합해 생산해 범용제품 가격이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셋째, 미국의 ‘국방수권법’이 부여한 미 대통령의 재량권 범위다. 미국 국방수권법 1245조 D항의 (4)(b)는 미국의 제재에 대해 예외국 인정을 받으려면 원유 수입량을 상당한 수준으로 감축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나 해석에 따라서는 전면적 차단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 법에 따르면 한국은 앞으로 약 6개월 후인 11월4일까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미 국방수권법상 협상의 주체는 정부이기 때문에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첫째, 정부는 미 국방수권법을 숙지하고 적절한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방수권법상 미 행정부는 이란 원유 수입국이 받을 경제적 충격을 완화해주려는 목적으로 이란 수출품의 대체 가능성-가격과 공급잠재량-을 평가하게 돼 있으며 이 평가가 ‘상당한 감축’에 대한 기준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점을 적극 활용하는 동시에 경제 여건, 중국 및 일본과의 경쟁 관계를 잘 부각시켜 미 재무부로부터 예외국 인정과 함께 더 많은 양의 수입 쿼터를 확보해야 한다.

공급과잉 상황에도 대비해야

둘째, 이란과 미국 관계의 정상화가 요원한 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란과의 거래는 현물 및 단기 거래 중심으로 전환하고, 이란산 원유와 콘덴세이트에 최적화된 정유 및 석유화학 설비를 다양한 유종을 처리할 수 있는 신축 설비로 전환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셋째, 세계적으로 정유 및 석유화학산업은 설비 과잉에 따라 공급 과잉 상황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정유 및 석유화학산업은 값싼 원료의 확보를 넘어서 제품의 다변화, 다양화 및 고부가가치화를 추진하고 세계 시장에서 수요 확보에 힘써야 할 것이다.

정유와 석유화학산업은 거의 모든 제조업에 연료를 공급하고 플라스틱, 섬유, 고무 등의 원료를 제공하는 뿌리산업이다.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이 뿌리가 튼튼하게 유지되고 성장하지 않으면 우리 경제 전반의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 이번 이란 제재 재개를 정유 및 석유화학산업의 체질 개선 기회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