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안이 여야의 ‘뜨거운 감자’로 재부상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차등의결권,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 등 경영권 안정을 위한 제도 신설을 상법에 넣자고 제안(지난 15일 윤상직 의원안)한 게 계기가 됐다. 기업이 경영권을 방어하는 데 수조원을 쏟아붓도록 방치하면 ‘경제 살리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논리다. 정부 여당도 투자 활성화에 골몰하고 있어 소액주주 권리 강화를 핵심으로 한 ‘경제민주화’ 상법 개정안과 ‘빅딜’이 이뤄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협상 카드 내놓은 한국당

여야, 상법 개정안 물밑 협상… '엘리엇 방지법'-'소액주주권 강화' 빅딜하나
이른바 ‘엘리엇 방지법’을 내놓은 윤 의원(전 산업통상부 장관)은 17일 “민간 투자 활성화를 바라는 정부도 기업이 경영권 방어에 돈을 낭비하길 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법안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현대자동차, 삼성 등 국내 굴지 기업들이 엘리엇매니지먼트 같은 글로벌 ‘기업 사냥꾼’의 표적이 돼 있다는 지적이다.

윤 의원이 대표발의한 상법개정안의 핵심은 차등의결권(한 개 주식에 여러 개의 의결권을 인정하는 제도), 포이즌필(기존 주주들이 미리 정해진 가격에 신주를 살 수 있도록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 등 경영권 방어 조항을 넣는 것이다. ‘배임 면제’ 조항을 신설한 것도 눈에 띈다. 경영진이 회사에 최선의 이익이 된다는 선의의 판단 아래 경영상 결정을 내렸다면 회사에 손해를 끼쳤더라도 특별배임죄 판단 시 정상을 참작하도록 하자는 취지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기업 편들기용 법안”이라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물밑에선 “협상 테이블을 꾸려볼 만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작년 11월 한국당 소속 권성동 법제사법위원장이 내놓은 상법개정안에 비해 타협의 여지가 충분하다는 이유에서다. 포이즌필만해도 권 위원장은 이사회 결의로 도입이 가능하도록 했으나 윤 의원은 여기에 주주총회 특별결의 요건을 추가해 경영진의 남용 가능성을 방지하는 문구를 넣었다.

권 위원장이 법안에 황금주(소수 지분으로 회사 주요 결정에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주식)와 임원임명권부주식(이사회 구성 권한이 있는 주식)을 명기한 데 비해 윤 의원은 이를 법안에서 빼고 시행령으로 처리할 수 있게 여지를 뒀다는 것도 차별점이다.

◆경제민주화 시행 급한 여당

집중투표제 등 경제민주화 조항을 담은 상법 개정은 정부 100대 과제 중에서도 핵심으로 꼽힌다. 문재인 정부 출범 1년이 지나도록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정치권 관계자는 “권 위원장이 강원랜드 수사 외압 의혹을 받으면서 ‘방탄국회’ 주범으로 몰린 데다 한 달 넘게 국회가 공전하면서 여야 모두 우선 순위에서 밀어 놨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물밑 협상은 그동안 꾸준히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여야는 법무부가 제안한 경제민주화용 상법 개정 중 전자투표제 의무화와 모회사 주주들이 자회사 경영진의 불법 행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에는 합의를 도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주주총회에서 새로 이사를 선임할 때 소수 주주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집중투표제는 엘리엇 등 해외 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M&A)에 기업을 무방비로 노출시킬 수 있다는 부작용이 큰 데다 한국당도 수용 불가 방침이어서 협상 테이블에서 배제된 상태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혁신팀장은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한다면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제도도 동시에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야 간 상법 개정을 위한 ‘빅딜’ 가능성이 나오는 배경이다.

다만 5월 국회에서 당장 타협점을 찾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상반기 국회가 만료되면 새로 상임위원장과 위원을 선임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임 법사위원장으로는 3선인 여상규 한국당 의원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여당은 금태섭 의원이 간사직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고, 야당은 장제원 한국당 수석대변인이 신임 간사로 거론되고 있다.

박동휘/김우섭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