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천국 만들거냐" 우려 나와
경찰개혁위 권고안 수용
"손배 청구 기준 까다로워
집회 시위 한층 늘어날 듯"
마포대교 점거 주도자 등
진행 중인 소송에도 영향

경찰개혁위는 지난 11일 26차 전체회의를 열어 ‘집회·시위 관련 손해 발생 시 국가 원고소송 제기 기준’ 및 ‘현재 진행 중인 소송에 대한 필요조치 사항’ 등을 권고했다고 18일 발표했다.
권고안에 따르면 앞으로 경찰이 집회·시위에서 입은 피해로 인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최소한 세 단계를 거쳐야 한다. 먼저 해당 피해가 집회·시위 과정에서 공무수행 중 통상적으로 발생하는 수준인지 판단해야 한다. 통상적인 수준의 피해는 원칙적으로 국가 예산으로 처리하도록 했다. 지금까지는 이 같은 기준이 없었다.
피해가 통상적인 범위를 넘어서더라도 곧바로 소송할 수 없다. 경찰개혁위는 권고안에서 예외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더라도 폭력행위 등을 통해 경찰관의 신체 또는 경찰장비에 고의적으로 손해를 가한 경우에 한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경찰개혁위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해당 피해가 소극적 저항에 따른 것인지, 가해 행위와 손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지 등 여덟 가지 항목으로 구성된 체크리스트를 모두 통과하도록 했다. 집회 주최자가 일반 시위 참가자의 불법행위 책임을 공동으로 지도록 한 규정도 지나치게 넓게 해석한 건 아닌지 까다롭게 검증하도록 했다.
◆지금도 매 맞는 경찰관 수두룩한데…
경찰이 집회·시위를 바라보는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게 경찰개혁위 측 주장이다. 경찰개혁위는 “우리가 자의적으로 권고안을 만든 게 아니라 독일 등 해외 사례를 참고해 국내 사정에 맞춰 수정한 것”이라며 “집회·시위는 감시·감독이 아닌 오히려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할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경찰 안팎에서는 권고안이 시행되면 질서 유지를 위한 공권력 행사에 상당한 제약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지금도 집회·시위 과정에서 매 맞는 경찰관이 수두룩한데 이렇게 되면 주최 측에 사후 책임조차 제대로 물을 수 없게 돼 사실상 공권력이 무력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찰개혁위는 이 같은 방안을 가능한 한 현재 진행 중인 국가 원고소송에도 소급 적용할 것을 권고했다. 단순 집회·시위 참가자, 단순 집시법 위반 또는 교통방해 행위자, 불법 행위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는 자 등에 대해 민사상 책임을 묻지 말라는 지침이 대표적이다. 집회 주최자 및 단체(단체 대표)에 대해서도 손해 발생에 대한 고의와 직접적 인과관계를 특정할 수 있는지 여부를 살핀 뒤 ‘전향적인’ 조치를 취하라고 했다. 권고안에 따르면 작년 시위대의 서울 마포대교 점거를 주도한 혐의로 지난 9일 구속된 장옥기 전국건설노조위원장에게 민사상 손해배상을 요구하기 어렵게 된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