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그룹 구원투수된 관료출신 원로들
신명호 전 아시아개발은행(ADB) 부총재(74)가 18일 부영그룹 회장 직무대행으로 취임하면서 관료출신 금융계 원로들이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원로 인사를 ‘구원투수’로 내세워 위기를 타파하려는 기업들이 적지 않아서다. 이들은 모두 재무부 관료 출신으로 금융회사를 경영한 경험도 있어 조직 안정과 당국과의 협업 측면에서 장점이 많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부영그룹은 지난 2월 이중근 회장의 구속으로 경영 공백 상태가 3개월 넘게 이어지자 그룹 산하 우정교육문화재단 이사였던 신 전 부총재를 회장 직무대행으로 선임했다. 신 회장 직무대행이 조직을 안정시키고 떨어진 그룹의 신뢰를 회복할 최적임자라고 판단해서다. 그는 국제협상력과 통찰력이 뛰어난 재무통이다. 전남 고흥 출신으로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68년 행정고시 6회에 합격해 재무부 관세국장, 국제금융국장을 거쳐 재정경제원 제2차관보를 지냈다. 주택은행장과 ADB 부총재, HSBC 서울지점 회장 등을 역임했다.

DB그룹도 지난해 9월 DB손보 고문을 맡고 있던 이근영 전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81)을 그룹 회장으로 선임했다. 이 회장도 ‘대책반장’으로 투입됐다. 김준기 전 DB그룹 회장이 여비서를 성추행한 혐의로 갑작스레 사임하면서 조직이 흔들리는 상황이었다. 행시 6회 출신인 이 회장은 재무부 직접세과장을 거쳐 광주지방국세청장, 산업은행 총재,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감원장 등 요직을 거쳤다.

정건용 전 산은 총재(71)도 오랜 기간 기업을 안정적으로 이끌고 있는 관료 출신 인물로 꼽힌다. 정 전 총재는 2011년부터 나이스그룹 금융 부문 회장을 맡고 있다. 정 회장은 행시 14회로 재무부에서 공직을 시작해 금융정책과장, 재정경제원 금융정책국장,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지냈다.

업계에선 이들 관료 출신 인사들이 정부와 금융시장을 오가며 다양한 경험과 냉철한 판단력을 겸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직전 경영진의 잘못으로 회사가 여론과 당국의 집중 견제를 받고 있을 때 조직을 잘 정비할 능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원만한 성품으로 기존 경영진과 원활하게 소통하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한 기업 관계자는 “관료 출신들은 특유의 신중함으로 무리하게 사업을 벌이기보다 내실을 다지는 성향을 보인다”며 “기업 오너로선 회사를 믿고 맡길 만하다는 신뢰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