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의 종탑·모스크 첨탑의 공존…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진 '神들의 섬'
![서부 크레타의 주도 하니아 구시가지와 베네치아 항구의 전경. 고풍스러운 도시 뒤로 하얀 눈이 쌓인 화이트 마운틴이 펼쳐져 있다.](https://img.hankyung.com/photo/201805/AA.16744045.1.jpg)
하니아(그리스)=글·사진 고아라 여행작가 minstok@naver.com
![](https://img.hankyung.com/photo/201805/AA.16766018.1.jpg)
서부 크레타의 주도 하니아(Chania)는 고대 크레타의 요충지였던 키도니아(Kynodia) 위에 건설된 도시로 무려 60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한다. 미노아 문명의 영광이 저물고 외세의 숱한 침략이 이어지면서, 하니아 또한 크레타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수없는 붕괴와 재건을 겪었다. 비잔틴 시대가 지나고 400년이 넘는 베네치아 점령기를 거치며 하니아는 크게 번영하게 되는데, 현재 구시가지에 남아 있는 대부분 유산이 그때 만들어진 것이다. 이후 오스만제국, 이집트의 지배가 이어지며 도시 곳곳에는 이슬람의 색채가 깊게 스미기 시작했다. 거리를 걷다 보면 유럽과 중동 그리고 크레타 고유의 문화가 섞인 오묘한 느낌을 받게 되는 이유다.
하니아의 매력은 올드타운의 골목들을 걸어봐야 비로소 알 수 있다. 구시가지는 크게 5구역으로 나뉜다. 고대 문명의 잔해가 남겨진 카스텔리(Castelli), 오스만 지배 당시 크리스천 구역이자 중앙 광장 역할을 했던 신트리바니(Sintrivani), 베네치아의 향기가 가득한 토파나스(Topanas), 유대인 구역이었던 에브레키(Evraiki), 그리고 무슬림 구역인 스프란치아(Splantza)다. 가장 먼저 올드타운의 축을 담당하는 신트리바니 구역으로 향한다. 1866 광장부터 베네치아 항구까지 이어지는 할리돈(Halidon)거리는 그야말로 여행자의 길이다. 도시를 대표하는 볼거리는 물론 식당, 카페, 여행사 등의 편의시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미노아부터 로마 시대까지 하니아 전역에서 발견된 유물이 전시돼 있는 하니아 고고학 박물관 내부 전경.](https://img.hankyung.com/photo/201805/AA.16766025.1.jpg)
다채로운 문화 엿볼 수 있는 다양한 거리
![하치미할리 달리아니 골목.](https://img.hankyung.com/photo/201805/AA.16766029.1.jpg)
과거 귀족들이 거주했던 구역답게 베네치아풍의 고급 맨션들이 보석처럼 숨어있다. 마지막으로 무슬림 구역인 스프란치아로 발길을 옮긴다. 하치미할리 달리아니(hatzimihali Daliani)거리에 들어서니 이번에는 터키의 어느 골목에 들어선 기분이다. 상아빛 담벼락과 파스텔 톤으로 채색된 건물들 사이로 이슬람 첨탑 하나가 높게 솟아있다. 아기자기한 카페들로 둘러싸인 1821 광장에는 독특한 건물이 하나 있다. 성당의 종탑과 모스크의 첨탑이 공존하는 아이오스 니콜라스 교회(The Church of Agios Nicholaos)다. 본래 도미니칸 수도원이었지만 오스만제국이 모스크로 바꾸면서 첨탑을 얹었다. 하니아의 복잡한 역사와 다채로운 문화를 잘 보여주는 건물 중 하나로 꼽힌다. 실내 재래시장인 아고라(Agora)에서 할리돈 거리까지 이어지는 스티바나디카(Stivanadika)는 대표적인 쇼핑 구역이다. 크레타 전통 신발을 뜻하는 단어 스티바나디에서 이름을 따왔다. 전통 의복과 장신구를 파는 상점, 세계적인 브랜드 숍과 부티크가 혼재한다. 일명 ‘가죽의 거리’로 불리는 스크리드로프(Skridlof) 거리도 구경해볼 만하다.
한 폭의 그림 같은, 베네치아 항구
어느 골목을 걷든 발걸음의 종착역은 하니아의 상징, 베네치아 항구다. 에게해를 한아름 끌어안은 듯한 모습의 항구와 그 중심에 우뚝 서 있는 등대의 풍경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도 가득하다. 비잔틴박물관, 해양박물관, 베네치아조선소, 이슬람 회교당을 비롯해 크레타의 그리스 반환이 선언된 피르카스 요새까지 하니아를 거쳐 간 모든 역사가 항구 안에 정박해 있다. 등대까지 이어지는 방파제는 하니아 최고의 산책로 겸 전망대다. 중간 지점에 있는 아이오스 니콜라스(Agios Nicholas) 요새 터에 올라서면 한쪽으론 도시의 파노라마 전경을, 또 다른 쪽에선 짙푸른 크레타해를 담을 수 있다. 해가 질 때쯤이면 항구를 따라 늘어선 타베르나(Taverna) 혹은 카페 테라스로 향하자. 물에 물감이 번지듯 퍼져 나가는 분홍빛 석양은 하니아가 선사하는 최고의 선물이다. 땅거미가 짙어지고 등대에 불이 켜지면 도시는 더욱 활기를 띤다. 그리스식 주점인 메제(Meze)에는 크레타 전통술인 라키(Raki)를 홀짝이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신명나는 크레타 전통 음악이 흘러나오자 사람들은 하나둘 일어나 어깨동무춤을 춘다. 아득하게 펼쳐진 에게해 위로 크레타와 꼭 닮은 밤이 저문다.
![베네치아 항구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석양.](https://img.hankyung.com/photo/201805/AA.16766028.1.jpg)
크레타는 꾸밈없는 섬이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사람은 사는 그대로, 시간이 흐르는 대로 그저 그렇게 두는 섬. 투박하지만 진솔하고, 거칠지만 자유로운 섬이다. 이런 크레타의 매력을 온몸으로 느낄 수 방법이 있다. 바로 사마리아 협곡(Samaria Gorge)을 걷는 일이다. 일명 화이트 마운틴이라고 불리는 레프카 오리(Lefka Ori) 산맥에 있는 이 협곡의 길이는 장장 16㎞, 산의 몸통을 가로질러 남쪽 땅끝까지 내려가는 여정이다. 유럽에서 가장 긴 협곡 트레킹 중 하나로 연간 20만 명에 가까운 여행자들이 사마리아를 걷기 위해 크레타를 찾는다. 아침 일찍 하니아를 떠나 사마리아 국립공원의 입구가 있는 오말로스(Omalos)로 향한다. 소박하게 지어진 매표소에서 표를 산 뒤 협곡에 진입한다. 시작부터 만만치 않다.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꼬박 한 시간을 내려가야 한다. 협곡 바닥에 도달하면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된다.
![크레타 사마리아 협곡 트레킹.](https://img.hankyung.com/photo/201805/AA.16766027.1.jpg)
![크레타 사마리아 협곡 트레킹.](https://img.hankyung.com/photo/201805/AA.16766091.1.jpg)
글·사진 고아라 여행작가 minstok@naver.com
▶여행메모
한국과 크레타를 잇는 직항은 없다. 아테네에서 비행기 혹은 페리를 통해 들어가야 한다. 하니아 국제공항은 시내에서 약 14㎞, 페리가 들어오는 수다 항구(Port of Souda)는 약 7㎞ 떨어져 있다. 하니아 고고학박물관의 입장시간은 하절기(4~10월)는 오전 8시~오후 8시(월요일 오후 1~8시), 동절기(11~3월)는 오전 8시~오후 3시(월요일 휴무)다. 입장료는 4유로이며 비잔틴 박물관을 비롯해 4개의 박물관과 유적을 함께 둘러볼 수 있는 통합권은 6유로다. 사마리아 국립공원의 개장 시기는 보통 5~10월까지며 정확한 개·폐장 날짜는 날씨나 협곡의 상황에 따라 매년 달라지므로 방문 전 확인해야 한다. 입장료는 5유로, 트레킹 허용 시간은 일출(약 오전 6시)부터 일몰 전(약 오후 4시)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