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비핵화의 대가로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중단하고 단계적으로 보상조치를 이행해주길 희망하고 있다고 북한 전문 웹사이트 38노스 운영자인 조엘 위트 스팀슨센터 수석연구원이 20일(현지시한) 밝혔다.
국무부 한반도 담당관 출신인 위트 연구원은 이날 시사지 '애틀랜틱'에 기고한 '북한이 내게 말해준 계획' 제하의 글에서 2013년 북한 당국 관계자들과 여러 차례 접촉했을 때 받은 인상을 회고하면서 이같이 제언했다.
이에 따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제시한 일괄타결식 '리비아 모델'보다는 수전 손튼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이 제시한 다단계적 접근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고 위트 연구원은 강조했다. 북미 당국자간 회동에 참석했던 위트 연구원은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병진노선'(핵과 경제 동시 발전)을 선언했지만, 정작 회담에 참석한 북한 관리들은 북미관계가 개선되면 이 같은 노선이 바뀔 수 있음을 시사했다고 밝혔다.
2013년 북한 국방위원회가 비핵화 대화 가능성을 시사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는게 위트 연구원의 해석이다.
특히 북한 당국자들은 이같은 대화 시사가 김정은 위원장의 의사로서, 미국과의 관계개선 의지를 담고 있다고 강조했다고 위트 연구원은 전했다.
가장 주목할 대목은 북한 당국자들이 비핵화 문제를 북미 양자회담이나 2008년 이후 중단된 6자회담의 의제로 다시 올릴 수 있다고 한 점이다.
당시 북한 측이 제시한 비핵화 논의의 유일한 조건은 미국이 협상 전제로 핵·미사일 시험중단을 내세우지 않는 것이었다는 후문이다.
특히 비핵화 대가의 핵심으로 미국의 적대시 정책 중단을 요구했다고 위트 연구원은 설명했다.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정치·안보·경제적 대립을 중단해달라는 것이었다.
이는 정치적으로는 북한을 주권 국가로 인정하고 외교 관계를 수립하는 것을 의미하며, 안보적으로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고, 경제적으로는 대북제재를 해제해달라는 요구를 뜻한다고 위트 연구원은 풀이했다.
북한은 이같은 단계적 접근을 통해 결과적으로 북미간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비핵화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낼 것을 기대했다.
북한은 그러면서 핵 프로그램 동결과 주요 핵시설 불능화, 최종적으로 핵시설 및 핵무기 폐기로 나아가는 '3단계 비핵화'를 제안했다고 위트 연구원은 강조했다.
그러나 2012년 2월 북한이 미국과 맺은 핵·미사일 시험 유예 합의, 즉 '윤달합의'(Leap Day Deal)를 깨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자 이에 학을 뗀 미국이 이러한 북한의 협상 제안을 수용하기란 어려웠다.
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북한을 둘러싼 상황이 바뀌었지만 북한의 당시 제안은 다가올 협상에서 북한이 요구할 사항에 대한 선명한 그림을 제공한다고 위트 연구원은 지적했다.
북한은 각 단계에서 미국의 조치가 수반되는 단계적 비핵화 절차를 제시한 셈인데 이는 볼턴 보좌관이 언급한 핵 프로그램을 먼저 포기하면 이후 그 대가를 제공하는 '리비아 모델'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위트 연구원은 그러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꼭 볼턴의 시각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라고 지적했다.
북미정상회담을 실질적으로 지휘하는 손턴 차관보 대행이 최근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 단계별 보상 방식을 밟아나갈 수 있다는 발언을 했다는 점에서다.
위트 연구원은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비핵화에 대한 의견차를 어떻게 해결하고, 북한과 어떻게 공통의 기반을 찾아 나갈지의 문제가 결국 한반도의 미래를 결정짓는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손턴식 접근법'은 장기적으로 북한의 무장 해제라는 기회를 살릴 수 있겠지만 '볼턴식 접근법'은 이를 실패로 이끌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