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국회 논의' 판 깬 경총… 中企 "양대노총과 야합, 배신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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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가는 최저임금 개편
경총 "국회 대신 최저임금委서 재논의"
"국회안대로 산입범위 확대 땐 임금격차 확대"
전문가 "최저임금委로 되돌리면 아무것도 못해"
"경총 수뇌부, 사회적 대화 코드 맞추기" 지적도
경총 "국회 대신 최저임금委서 재논의"
"국회안대로 산입범위 확대 땐 임금격차 확대"
전문가 "최저임금委로 되돌리면 아무것도 못해"
"경총 수뇌부, 사회적 대화 코드 맞추기" 지적도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도대체 왜?”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편 논의 막바지에 불쑥 튀어나온 ‘경총발(發) 미스터리’에 경제계가 충격에 빠졌다. 국회의 산입범위 확대를 촉구해온 경총이 지난 21일 돌연 입장을 바꿔 ‘국회 논의를 중단하고 다시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논의하자’고 요구하는 양대 노총(한국노동조합총연맹·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가닥이 잡혀가던 산입범위 개편 논의는 한순간 방향이 틀어져버렸다.
경총이 하루아침에 입장을 바꾼 것도 문제지만 최저임금 이슈의 가장 큰 당사자인 중소기업중앙회 등과는 전혀 상의도 하지 않은 채 양대 노총과 슬그머니 합의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경제단체 간 내분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경총의 배신’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경총에 도대체 무슨 일이…
경총은 22일 ‘최저임금 산입범위 입법에 대한 경총 입장’이라는 자료를 내고 뒤늦게 해명에 나섰다. “국회에서 논의하고 있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방안(상여금+현금성 숙식비)은 임금 격차를 확대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안이기 때문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게 경총 논리다. 경총 관계자는 “현재 수준의 산입범위 확대안은 무의미하다고 본다”며 “양대 노총과 원하는 방향은 다르지만 국회에서 논의 중인 방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의견이 같아 합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회가 아니라 최저임금위에서 논의를 다시 시작하면 산입범위 확대 자체가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다른 경제단체 관계자는 “이미 최저임금위에서 태스크포스(TF)까지 꾸려 작년부터 8개월간 논의했지만 한발짝도 양보 못하겠다는 노동계 반발로 무산돼 결국 국회로 공이 넘어간 것 아니냐”며 “이제 와서 다시 최저임금위로 논의 주체를 옮긴다는 것은 아무것도 안 하고 노동계 요구대로 따르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노동경제학자는 “갑작스러운 입장 변화에 대한 해명은 견강부회 그 자체다. 기업 입장을 대변한다는 경영자단체로서 수치스러운 수준이다. 이럴 바엔 경총은 문을 닫는 게 낫다”고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며 비난했다.
일각에서는 경총이 산입범위 확대를 양보하는 대신 최저임금 인상폭을 줄이려는 전략을 세운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경총이 지난해 최저임금 협상 당시 16.4% 인상률에 동의하면서 전제 조건으로 ‘산입범위 확대’를 강하게 주장했다는 점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총의 ‘코드 맞추기’인가?
경총의 ‘돌발 행동’은 손경식 회장과 송영중 상임부회장이 “사회적 대화는 이어가야 한다”고 강하게 밀어붙인 결과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번 입장 변경 과정에서 경총 실무진은 “지금 최저임금위에서 논의를 다시 시작하면 연내 산입범위 확대는 물 건너간다”고 현실론을 들어 반대했지만 송 부회장이 묵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고용노동부 출신인 송 부회장이 사회적 대화를 중시하는 정부와 코드를 맞추기 위해 결정을 주도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된다.
손 회장이 ‘사회적 대화 사수’라는 명분에 매몰돼 안이하게 판단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경총은 6월까지 최저임금 산입범위 논의를 마치겠다는 민주노총의 약속을 믿고 이들의 제안을 수용했다고 한다”며 “이런 공허한 약속을 철석같이 믿은 것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배신당했다” 격앙된 중기중앙회
중기중앙회와 산하 협동조합은 경총과 양대 노총의 합의를 ‘배신’으로 규정하고 거센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기업은 대부분 중소기업인데 경총이 우리와 아무런 상의 없이 양대 노총과 야합을 했다”며 “이번 일로 경총과 중소기업계의 신뢰도 깨졌다”고 말했다.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사업장은 30인 미만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전체의 84.5%를 차지한다.
중기중앙회는 산입범위 확대 없이는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사회적 합의(최저임금위)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중소기업계가 이처럼 반발하는 것은 국회에서 산입범위 매듭이 지어지지 않은 채 다시 최저임금위로 공이 넘어가면 산입범위 확대는커녕 내년에도 인상률만 더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한 협동조합 이사장은 “아무것도 안 되는 최악의 경우보다 차라리 차악이지만 국회에서 산입범위 조정이 어느 정도 이뤄진 뒤 인상폭을 낮추는 식으로 가는 게 낫다”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 등 다른 경제단체들도 한결같이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경총의 움직임과 관련해 ‘상황 파악’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승현/도병욱/문혜정/좌동욱 기자 argos@hankyung.com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편 논의 막바지에 불쑥 튀어나온 ‘경총발(發) 미스터리’에 경제계가 충격에 빠졌다. 국회의 산입범위 확대를 촉구해온 경총이 지난 21일 돌연 입장을 바꿔 ‘국회 논의를 중단하고 다시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논의하자’고 요구하는 양대 노총(한국노동조합총연맹·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가닥이 잡혀가던 산입범위 개편 논의는 한순간 방향이 틀어져버렸다.
경총이 하루아침에 입장을 바꾼 것도 문제지만 최저임금 이슈의 가장 큰 당사자인 중소기업중앙회 등과는 전혀 상의도 하지 않은 채 양대 노총과 슬그머니 합의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경제단체 간 내분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경총의 배신’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경총에 도대체 무슨 일이…
경총은 22일 ‘최저임금 산입범위 입법에 대한 경총 입장’이라는 자료를 내고 뒤늦게 해명에 나섰다. “국회에서 논의하고 있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방안(상여금+현금성 숙식비)은 임금 격차를 확대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안이기 때문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게 경총 논리다. 경총 관계자는 “현재 수준의 산입범위 확대안은 무의미하다고 본다”며 “양대 노총과 원하는 방향은 다르지만 국회에서 논의 중인 방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의견이 같아 합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회가 아니라 최저임금위에서 논의를 다시 시작하면 산입범위 확대 자체가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다른 경제단체 관계자는 “이미 최저임금위에서 태스크포스(TF)까지 꾸려 작년부터 8개월간 논의했지만 한발짝도 양보 못하겠다는 노동계 반발로 무산돼 결국 국회로 공이 넘어간 것 아니냐”며 “이제 와서 다시 최저임금위로 논의 주체를 옮긴다는 것은 아무것도 안 하고 노동계 요구대로 따르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노동경제학자는 “갑작스러운 입장 변화에 대한 해명은 견강부회 그 자체다. 기업 입장을 대변한다는 경영자단체로서 수치스러운 수준이다. 이럴 바엔 경총은 문을 닫는 게 낫다”고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며 비난했다.
일각에서는 경총이 산입범위 확대를 양보하는 대신 최저임금 인상폭을 줄이려는 전략을 세운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경총이 지난해 최저임금 협상 당시 16.4% 인상률에 동의하면서 전제 조건으로 ‘산입범위 확대’를 강하게 주장했다는 점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총의 ‘코드 맞추기’인가?
경총의 ‘돌발 행동’은 손경식 회장과 송영중 상임부회장이 “사회적 대화는 이어가야 한다”고 강하게 밀어붙인 결과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번 입장 변경 과정에서 경총 실무진은 “지금 최저임금위에서 논의를 다시 시작하면 연내 산입범위 확대는 물 건너간다”고 현실론을 들어 반대했지만 송 부회장이 묵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고용노동부 출신인 송 부회장이 사회적 대화를 중시하는 정부와 코드를 맞추기 위해 결정을 주도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된다.
손 회장이 ‘사회적 대화 사수’라는 명분에 매몰돼 안이하게 판단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경총은 6월까지 최저임금 산입범위 논의를 마치겠다는 민주노총의 약속을 믿고 이들의 제안을 수용했다고 한다”며 “이런 공허한 약속을 철석같이 믿은 것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배신당했다” 격앙된 중기중앙회
중기중앙회와 산하 협동조합은 경총과 양대 노총의 합의를 ‘배신’으로 규정하고 거센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기업은 대부분 중소기업인데 경총이 우리와 아무런 상의 없이 양대 노총과 야합을 했다”며 “이번 일로 경총과 중소기업계의 신뢰도 깨졌다”고 말했다.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사업장은 30인 미만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전체의 84.5%를 차지한다.
중기중앙회는 산입범위 확대 없이는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사회적 합의(최저임금위)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중소기업계가 이처럼 반발하는 것은 국회에서 산입범위 매듭이 지어지지 않은 채 다시 최저임금위로 공이 넘어가면 산입범위 확대는커녕 내년에도 인상률만 더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한 협동조합 이사장은 “아무것도 안 되는 최악의 경우보다 차라리 차악이지만 국회에서 산입범위 조정이 어느 정도 이뤄진 뒤 인상폭을 낮추는 식으로 가는 게 낫다”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 등 다른 경제단체들도 한결같이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경총의 움직임과 관련해 ‘상황 파악’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승현/도병욱/문혜정/좌동욱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