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적 권한, 뽑을 때는 깜깜이…교육감 선거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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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현장에서는 장관보다 권한 세고 영향력 막강
현실은…"기호 몇 번? 학부모 아닌데 뽑아도 돼요?"
교육감선거 특성 알리고 후보 공약소개 기회 줘야
현실은…"기호 몇 번? 학부모 아닌데 뽑아도 돼요?"
교육감선거 특성 알리고 후보 공약소개 기회 줘야
제왕적 대통령, 제왕적 국회 못지않게 문제인 것이 제왕적 교육감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개헌 국면에서 이슈화됐고 제왕적 국회는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킨 ‘방탄 국회’로 인해 후폭풍이 거세지만, 제왕적 교육감 문제는 선거를 20일 앞둔 시점에서도 대중의 관심 밖이다.
교육 관계자와 만난 자리에서 “대학 총장, 장관 지낸 사람들이 출마하는 것 보면 교육감 자리가 좋긴 한가 봐요?” 했더니 당연한 걸 왜 물어보느냐는 반응이 돌아왔다.
교육감은 지역 교원 인사권을 갖는다. 대학 총장? 대학은, 그래서도 곤란하지만, 상명하복 조직이 아니다. 좀 과장되게 말하자면 연구실을 가진 교수 하나 하나가 영주(領主) 같다고 할까. 조직을 이끌어가는 건 교육감이 훨씬 편하다. 예산을 쓰는 데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법에 의해 배분받은 예산의 집행에 집중하면 된다. 눈치도 덜 본다.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다면 임기가 보장된다. 청와대 눈치를 봐야 하고 임기가 대통령 손에 달린 장관과는 차이가 있다.
교육부 장관은 ‘시어머니’가 많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비롯한 여야 정당에 신경 써야 한다. 예산 확보를 위해 타 부처와 줄다리기도 해야 한다. 교육부 관료들 진두지휘 역시 만만찮은 내부 과제다. 무엇보다 주목도가 높다. 교육정책이 잘못되면 여론은 장관 탓으로 여긴다. 정책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경기도교육감 시절 무상급식, 혁신학교 등 뚜렷한 실적을 낸 김상곤 부총리가 장관으로서는 △수능 개편 1년 유예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 철회 △대입제도 개편 국가교육회의 이송 등 오락가락 행보로 비판받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어떤 측면에선 교육감이 장관보다 학교 현장에 대한 강한 권한을 가졌다. 재선, 삼선에 제한이 없고 현직 프리미엄도 붙어 10년 안팎 장기집권까지 가능하다. 주목을 덜 받고 견제가 거의 없어 권한이 막강하며 임기 역시 길다. ‘교육 소통령’이란 별칭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한 마디로 학교와 교육의 미래가 교육감 손에 달려있는 것이다. 시장·도지사 못지않게 교육감 선거가 중요한 이유다.
세간의 인식은 영 떨어진다. “학부모도 아닌데 투표권이 있느냐” 또는 “기호가 몇 번이냐” 같은 질문이 상당수라고 한다. 교육감 선거가 아직 뿌리 내리지 못했다는 방증이다(물론 투표권은 학부모냐 아니냐와 상관 없이 주어지며, 정당과 무관한 정치적 중립을 지향하는 교육감 선거는 후보자의 기호가 없다). 교육감 직선제 도입 10년이 넘었건만 또 한 번 ‘깜깜이 선거’로 치러지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 정책 선거가 될 리 없다. 현직 입장에선 ‘무쟁점 선거’일수록 승산이 크다. 한 교육계 인사는 “지금대로라면 교육감 선거는 인지도 싸움이다. 굳이 변수를 만들 것 없이 조용히 관리하면서 시간만 지나면 이기는 판세”라고 짚었다. 4년 전 서울시교육감 선거가 대표적 반례(反例)다. 당시 여론조사 1위를 달리던 고승덕 후보는 여러 패러디를 낳은 “딸아 미안하다” 사건 이후 3위였던 조희연 후보에게 역전 당했다. 학생부종합전형을 ‘깜깜이 전형’이라며 분노하는 학부모들이 교육감을 뽑는 ‘깜깜이 선거’에는 둔감한 이유가 뭘까. 직접 이해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자녀의 담임을 누가 맡느냐는 학부모에겐 초미의 관심사다. 그렇다면 교육감은 그 지역 학생 모두의 담임교사 아닐까.
깜깜이 선거는, 조직표에 교육감 당선 여부가 갈리는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하게끔 만든다. 여기에 문제의식을 갖고 교육이 진보·보수의 정치적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던 박융수 인천교육감 예비후보가 “무관심에 의지가 약해졌다”며 최근 사퇴했다. 조영달 서울교육감 예비후보 역시 깜깜이 선거를 막아달라는 호소문을 냈다.
각 후보의 공약을 잘 모르는 유권자를 위해 간략히 정리하자면 서울교육감 선거에서 조희연 예비후보는 자율형사립고·외국어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고 혁신학교도 확대키로 했다. 조영달 예비후보는 자사고·외고를 폐지하지는 않되 추첨식 선발로 바꾸며 혁신학교 확대에 제동을 걸겠다고 공약했다. 박선영 예비후보는 자사고·외고 존속, 혁신학교 축소 방침을 나타냈다. 고2~3 때 다양한 진로를 탐색하는 조영달 후보의 ‘드림캠퍼스’ 공약은 고교학점제 구현과 그가 입안했던 5·5·2 학제 개편의 서울 버전 격이다. 박 후보는 ‘전교조 적폐청산’을 가장 앞세웠다. 조희연 후보는 재선에 성공해 문재인 정부 교육개혁에 힘을 보탠다는 입장. 박 후보의 경우 보수진영 단일화기구 경선을 통해 선출됐으나 그 과정에서 잡음이 일어 여타 보수 후보들이 반발한 탓에 ‘보수 단일후보’ 자리를 굳히지는 못했다. 반면 조희연 후보는 ‘진보 단일후보’로 뽑혔다. 중도 성향 조영달 후보는 ‘탈정치 교육혁명’을 내걸고 완주 의사를 밝혔다.
이제라도 교육감 선거가 바뀌어야 한다. 선거관리위원회도 꼭 광역단체장 선거와 기계적 형평을 맞출 일이 아니다. 교육감 선거의 낮은 대중적 인지도를 감안해 후보 간 TV토론 횟수를 보다 늘린다든지, 정당 선거와 다른 교육감 선거의 특성을 집중 홍보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유권자가 교육감 후보의 정책을 살펴볼 기회는 줘야 하지 않겠는가.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
교육 관계자와 만난 자리에서 “대학 총장, 장관 지낸 사람들이 출마하는 것 보면 교육감 자리가 좋긴 한가 봐요?” 했더니 당연한 걸 왜 물어보느냐는 반응이 돌아왔다.
교육감은 지역 교원 인사권을 갖는다. 대학 총장? 대학은, 그래서도 곤란하지만, 상명하복 조직이 아니다. 좀 과장되게 말하자면 연구실을 가진 교수 하나 하나가 영주(領主) 같다고 할까. 조직을 이끌어가는 건 교육감이 훨씬 편하다. 예산을 쓰는 데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법에 의해 배분받은 예산의 집행에 집중하면 된다. 눈치도 덜 본다.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다면 임기가 보장된다. 청와대 눈치를 봐야 하고 임기가 대통령 손에 달린 장관과는 차이가 있다.
교육부 장관은 ‘시어머니’가 많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비롯한 여야 정당에 신경 써야 한다. 예산 확보를 위해 타 부처와 줄다리기도 해야 한다. 교육부 관료들 진두지휘 역시 만만찮은 내부 과제다. 무엇보다 주목도가 높다. 교육정책이 잘못되면 여론은 장관 탓으로 여긴다. 정책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경기도교육감 시절 무상급식, 혁신학교 등 뚜렷한 실적을 낸 김상곤 부총리가 장관으로서는 △수능 개편 1년 유예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 철회 △대입제도 개편 국가교육회의 이송 등 오락가락 행보로 비판받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어떤 측면에선 교육감이 장관보다 학교 현장에 대한 강한 권한을 가졌다. 재선, 삼선에 제한이 없고 현직 프리미엄도 붙어 10년 안팎 장기집권까지 가능하다. 주목을 덜 받고 견제가 거의 없어 권한이 막강하며 임기 역시 길다. ‘교육 소통령’이란 별칭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한 마디로 학교와 교육의 미래가 교육감 손에 달려있는 것이다. 시장·도지사 못지않게 교육감 선거가 중요한 이유다.
세간의 인식은 영 떨어진다. “학부모도 아닌데 투표권이 있느냐” 또는 “기호가 몇 번이냐” 같은 질문이 상당수라고 한다. 교육감 선거가 아직 뿌리 내리지 못했다는 방증이다(물론 투표권은 학부모냐 아니냐와 상관 없이 주어지며, 정당과 무관한 정치적 중립을 지향하는 교육감 선거는 후보자의 기호가 없다). 교육감 직선제 도입 10년이 넘었건만 또 한 번 ‘깜깜이 선거’로 치러지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 정책 선거가 될 리 없다. 현직 입장에선 ‘무쟁점 선거’일수록 승산이 크다. 한 교육계 인사는 “지금대로라면 교육감 선거는 인지도 싸움이다. 굳이 변수를 만들 것 없이 조용히 관리하면서 시간만 지나면 이기는 판세”라고 짚었다. 4년 전 서울시교육감 선거가 대표적 반례(反例)다. 당시 여론조사 1위를 달리던 고승덕 후보는 여러 패러디를 낳은 “딸아 미안하다” 사건 이후 3위였던 조희연 후보에게 역전 당했다. 학생부종합전형을 ‘깜깜이 전형’이라며 분노하는 학부모들이 교육감을 뽑는 ‘깜깜이 선거’에는 둔감한 이유가 뭘까. 직접 이해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자녀의 담임을 누가 맡느냐는 학부모에겐 초미의 관심사다. 그렇다면 교육감은 그 지역 학생 모두의 담임교사 아닐까.
깜깜이 선거는, 조직표에 교육감 당선 여부가 갈리는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하게끔 만든다. 여기에 문제의식을 갖고 교육이 진보·보수의 정치적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던 박융수 인천교육감 예비후보가 “무관심에 의지가 약해졌다”며 최근 사퇴했다. 조영달 서울교육감 예비후보 역시 깜깜이 선거를 막아달라는 호소문을 냈다.
각 후보의 공약을 잘 모르는 유권자를 위해 간략히 정리하자면 서울교육감 선거에서 조희연 예비후보는 자율형사립고·외국어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고 혁신학교도 확대키로 했다. 조영달 예비후보는 자사고·외고를 폐지하지는 않되 추첨식 선발로 바꾸며 혁신학교 확대에 제동을 걸겠다고 공약했다. 박선영 예비후보는 자사고·외고 존속, 혁신학교 축소 방침을 나타냈다. 고2~3 때 다양한 진로를 탐색하는 조영달 후보의 ‘드림캠퍼스’ 공약은 고교학점제 구현과 그가 입안했던 5·5·2 학제 개편의 서울 버전 격이다. 박 후보는 ‘전교조 적폐청산’을 가장 앞세웠다. 조희연 후보는 재선에 성공해 문재인 정부 교육개혁에 힘을 보탠다는 입장. 박 후보의 경우 보수진영 단일화기구 경선을 통해 선출됐으나 그 과정에서 잡음이 일어 여타 보수 후보들이 반발한 탓에 ‘보수 단일후보’ 자리를 굳히지는 못했다. 반면 조희연 후보는 ‘진보 단일후보’로 뽑혔다. 중도 성향 조영달 후보는 ‘탈정치 교육혁명’을 내걸고 완주 의사를 밝혔다.
이제라도 교육감 선거가 바뀌어야 한다. 선거관리위원회도 꼭 광역단체장 선거와 기계적 형평을 맞출 일이 아니다. 교육감 선거의 낮은 대중적 인지도를 감안해 후보 간 TV토론 횟수를 보다 늘린다든지, 정당 선거와 다른 교육감 선거의 특성을 집중 홍보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유권자가 교육감 후보의 정책을 살펴볼 기회는 줘야 하지 않겠는가.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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