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복용하면 운동 효과를 내는 약은 없을까. 바쁜 일상 때문에 운동 부족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이 한 번쯤 해봤음직한 상상이다. 하지만 이런 상상이 현실로 점점 다가오고 있다.

고려대 의료기술지주회사 자회사인 바이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셀버틱스가 운동 효과를 내는 약물을 찾아내 2~3년 안에 드링크제로 출시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연구 중이다. 이 회사의 대표를 맡고 있는 서홍석 고려대 구로병원 순환기내과 교수(사진)는 “운동 부족은 각종 질환을 유발하고 조기 사망 위험을 높인다”며 “운동을 하면 근육에서 ‘마이오카인’이란 물질이 분비돼 모든 기관의 기능이 좋아진다는 것이 입증됐다”고 했다.

서 교수는 자율신경조절제의 일종인 특정 약물을 체내에 주입하면 몸속 장기에 있는 ‘A 수용체’를 자극해 ATP(세포가 사용하는 에너지원)를 생산하는 세포 내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를 활성화하는 메커니즘을 찾아냈다. 그는 “해당 약물을 주입했더니 실제 운동을 한 뒤 인체가 겪는 변화와 동일한 결과가 나타났다”고 했다.

서 교수는 2010년부터 해당 연구를 해오다가 지난해 창업했다. 현재 동물실험 단계다. 서 교수는 “운동 부족으로 생기는 질환을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만병통치약으로 보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드링크제 출시 후에는 에너지 대사가 많이 필요한 심장질환 치료제와 인슐린 내성 환자를 위한 당뇨 병용제제를 개발해 3년 안에 임상시험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관련 연구가 활발하다. 미국 세인트루이스대 연구진은 지난해부터 근육 신진대사를 조절하는 세포핵의 특정 단백질을 자극해 지방을 태울 수 있는 약물을 개발하고 있다. 대사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단백질을 활성화해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을 개선하고 지방 생성을 억제하는 방식이다.

최근 다이어트 보조제 등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엘카르니틴’도 운동과 관련된 약물로 주목받고 있다. 엘카르니틴은 체내 지방산을 미토콘드리아로 들여보내는 운반체 역할을 하는 아미노산의 일종이다. 체지방 감소 효과는 있지만 운동 효과는 없다.

임유 기자 free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