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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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들어 국내에도 번진 ‘미투(Me Too·나도 당했다)’의 가해자들과 갑질로 지탄받고 있는 한 대기업 오너 일가의 행위에는 공통점이 있다. 권력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는 점이다. 성폭력이든 갑질이든 가해자가 각자의 분야에서 권력자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모두 권력에 대한 오해가 초래한 비극이다. 권력의 본질을 잘못 알고 잘못 사용한 나머지 한순간에 신뢰와 존경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졌다.

대커 켈트너 미국 UC버클리 심리학 교수는 이런 현상을 ‘권력의 역설(The Power Paradox)’이라고 명명했다. 그는 신간 《선한 권력의 탄생》에서 남을 복종시키고 지배할 수 있는 힘이라는 권력의 사전적 의미나, 무력·무자비·기만·전략적 폭력을 요체로 꼽은 마키아벨리식 권력 개념이 오히려 권력의 몰락을 가져왔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오랜 기간에 걸친 사례 조사와 임상시험을 토대로 권력의 본질과 속성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 기존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관점을 ‘권력의 20가지 원리’로 제시한다.

[책마을] 나누면 더 커진다… 권력의 역설
그에 따르면 권력이란 지배와 복종의 관계를 결정하는 힘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영향력이다. 특히 다양한 사회연결망(소셜네트워크서비스) 속 타인에게 선한 영향을 미침으로써 세상에 기여하는 것이 권력이다. 권력이 이런 속성을 지니는 것은 원래 그렇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저자는 “권모술수와 피비린내 나는 암투의 산물로 권력을 규정하는 것은 과거의 유물이거나 허구에 가깝다”고 단언한다. 권력이란 ‘초사회적(hypersocial) 종’으로 진화한 인류가 공공의 선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 공동체의 이름으로 부여한 것이며, 개인의 이기심을 위해 권력을 오남용하면 권력자의 평판이 나빠져 결국 권력을 잃고 마는 역설적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다.

“공동체는 최대의 선을 증진시키는 사람에게 권력을 부여하고, 영향력을 좌우할 평판을 조성하며, 최대 선을 증진시키는 사람을 위상과 명예로 보상한다. 반면 최대 선을 저해한 사람에겐 뒷말(평판)로 벌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여기서 최대 선을 좌우하는 다섯 가지 요인이 열정, 너그러움, 집중력, 평정심, 열린 마음이다. 이는 공동체가 국가, 사회, 학교, 스포츠팀 어떤 유형이라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침팬지 무리에서 우두머리가 되는 것은 단지 힘이 세서가 아니라 서로의 털을 고르고 이를 잡는 그루밍을 잘해주고 잘 어울린 결과라고 설명한다. 권력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선한 영향력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권력을 잡은 사람은 대부분 “초심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권력의 맛을 보고 나면 달라지기 십상이다. 권력을 경험한다는 것은 대체 뭘까. 저자는 “권력은 생명력과 같다”며 “갑자기 온몸을 휘감으며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우리를 몰아붙이는 활력”이라고 규정한다. 문제는 이 활력을 어떻게 쓰느냐다. 저자는 “권력은 타인에 대한 관심으로 유지된다”며 공감과 나눔, 고마움의 표현, 모두를 하나로 묶는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저자에 따르면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읽고 헤아리는 것이 공감능력이다. 공감능력이 뛰어난 이들은 직업 만족도가 높고, 업무에서도 탁월하다. 살가운 스킨십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오래된 나눔의 수단이다. 스킨십은 신경생리학 측면에서 코르티솔이 많이 분비되고 혈압이 오르는 스트레스 반응을 완화한다. 저자가 2008년 시즌에 미국 프로농구(NBA) 선수들의 스킨십을 확인한 결과 그 종류가 하이파이브부터 주먹인사, 가벼온 포옹, 껴안기 등 25가지나 됐다. 중요한 것은 시즌 초반에 스킨십이 많을수록 시즌 후반에 훨씬 더 좋은 경기를 보여줬다는 사실. 공격권은 잘 지키고 수비에서는 서로 잘 도왔다고 한다.

권력의 맛에 취해 타인을 향한 관심은 줄고 금세 권력 남용의 단계로 들어서면 비극이 시작된다. 저자는 “권력 남용은 공감의 결여와 도덕적 해이를 야기하고, 제 잇속만 차리려는 충동을 일으키며, 무례와 안하무인을 촉발하고, 우리를 ‘내로남불’에 빠지게 한다”고 꼬집는다. 정권의 부패는 물론 지금까지 드러난 온갖 갑질 사례만 봐도 그렇다. 저자가 “권력의 역설은 때를 가리지 않고 누구의 사회적 삶이든 흔들어놓을 수 있다”고 경고하는 이유다. “권력과 특권을 인식한다는 것은 뇌가 외상을 입는 것과 같다. 제 잇속만 차리는 충동적 행위로 이어지기 때문”이라는 말도 귀담아둘 만하다.

저자는 “권력을 가졌다는 느낌은 세상에 기여할 수 있다는 벅찬 감정을 갖게 해준다”며 “그 느낌을 잘 살펴서 권력을 쓰되 겸손한 사람이 더 오래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려면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나누며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덧붙인다. 코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 출마자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의 권력자가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